- 막걸리 담가먹는 이야기(4) -
[2025년 봄]
지난해 11월부터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막걸리라 칭했지만, 정확히는 우리네 전통술이다. 전통술의 명칭을 무엇이라 할지는 법과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 술 빚는 방식은 곡물, 누룩, 물을 기본 뼈대로 한다. 여기에 누룩의 종류나 첨가물의 차이 등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다. 최종 결과물은 효모가 만들어 낸 알코올과 발효된 곡물 앙금이 물에 섞인 탁한 액체다. 이를 일정 기간 숙성과 침전과정을 거치게 하면, 청주(법적으로는 약주로 정해져 있다.)와 탁주로 분리할 수 있다.
- 맑은 술을 우리는 청주로 알고 있다. 허나, 현행 법상으로 청주라 네이밍 할 수 있는 것은 일본식 사케 주조방식에 의한 술뿐이다. 우리 전통방식에 의해 만들어진 맑은 술은 청주라 하지 못하고 약주라 해야 한다. 약주라 하면 술에 한약재 등 첨가물을 넣은 형태를 상상하겠지만, 아무런 첨가물 없는 맑은 술도 약주라 해야 한다. 물론, 마시면 약이 되는 술이라 해서 약주라 할 수 있으나, 원 의미에 맞지 않는다. 이런 부조리함은 고쳐져야 마땅하지만, 일제강점기 법을 계승한 현행 법은 요지부동이다. -
막걸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탁한 액체, 원주를 1) 숙성 전 탁한 술에 물을 추가해 마시거나, 2) 숙성 후 청주와 분리된 앙금에 물을 섞어 마시는 것을 말한다. 일제 강점기 이후 우리 술은 대부분 막걸리 형태로 유통됐기 때문에, 지금껏 우리네 전통술을 막걸리로만 알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중에 유통되는 대부분의 막걸리는 전통 양조방식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식재된 일본식 술 빚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시판 막걸리는 발효 과정을 한 번에 마무리하는 단양주로 빚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각 가정에서 개인이 빚는 술은 발효 과정을 두 번 혹은 세 번 거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빚는 술을 각각 이양주, 삼양주라 한다. 곡물과 누룩을 계속 추가해 사양주, 오양주 이상을 만들 수 있으나, 대부분의 개인은 삼양주에서 멈추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동안 이양주와 삼양주 위주로 빚었고, 결국 삼양주를 주 종목으로 하게 되었다. 이양주 이하는 의외로 원하는 술맛을 내기 무척 어려웠다. 그동안 빚었던 술 중 내 입맛에 제일 맞았던 것은 이양주 방식의 석탄주였다. 하지만, 처음 빚은 술의 맛을 재현하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삼양주는 대부분 안정적인 결과를 내주었다. 삼양주는 두 번의 밑술 작업과 한 번의 덧술과정을 거쳐 빚는다.
밑술을 만들기 위해 멥쌀가루 500그램에 끓는 물 1.5리터(곡물과 물의 비율 1:3)를 나눠 넣는다. 3~4번으로 나눠 넣을 때마다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쌀가루가 익도록 열심히 섞어 준다. 마지막 물을 붓고 나서도 당분간 주걱질을 계속하면, 됨직한 반죽(이를 범벅이라 한다.)이 된다. 범벅은 상온에 방치하거나, 차가운 물에 용기를 담아 식힌다. 범벅의 표면은 물론 속까지도 차게 식었을 때, 누룩 300그램을 넣고 치댄다. 시간상으로는 30분 이상, 느낌상으로는 무척 뻑뻑했던 범벅이 거의 물처럼 될 때까지 치댄다. 누룩 속 당화효소가 범벅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면서 유동성이 증가해 물처럼 된다. (총 곡물량 = 총 물량, 누룩은 총 곡물량 기준 10%. 이 글은 쌀 3킬로그램, 물 3리터, 누룩 300그램 기준이다.)
치대기가 끝나면 소독한 용기에 담는다. 용기에 묻은 잔여물은 알코올을 묻힌 키친타월 등으로 깨끗이 닦아낸 다. 내용물을 채우면 용기 입구를 공기는 통하되, 외부 먼지는 들어가지 않도록 천으로 덮는다. 너무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즉 20도에서 25도 사이의 장소에 용기를 비치한다. 이후 48시간 정도, 하루 두 번 소독한 주걱으로 저어준다. 보통 이틀 정도면 완전히 액화되며, 알코올 향이 풍기고, 맛을 보면 시금털털하다. 외형적으로는 하루정도는 범벅 전체가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고, 이틀 째는 작은 기포만 올라오는 안정된 상태가 된다. 첫 번째 밑술 만들기가 끝난다.
두 번째 밑술에 쓰일 범벅 만드는 방식은 첫 번째와 동일하다. 반죽이 완성되면, 우선 면포 등을 이용해 첫 번째 밑술을 걸려 누룩 지게미를 제거한다. 이를 새로 만든 범벅에 붓고, 조물조물 치대기를 시작한다. 이때 밑술을 한 번에 부으면 작은 덩어리들이 생긴다. 이를 방지하려면 역시 3~4번에 나누어 붓고, 조금씩 풀어주면서 하면 잘 섞인다. 치대는 시간은 첫 밑술보다는 짧아도 된다. 범벅이 거의 풀렸다고 생각되면 멈춘다. 역시 소독한 용기에 담고 주변을 정리한다. 범벅이 부풀어 오르는 현상이 생각보다 강하게 나타나므로, 아주 넉넉한 용기에 담아야 한다. 입구는 천으로 덮어 먼지를 막고, 공기가 통하게 한다. 2차 밑술의 발효에는 하루 정도가 소요되며, 처음 맹렬히 부풀던 반죽이 가라앉고 옅은 기포만 올라오면 완성이다.
덧술용 고두밥을 만들기 위해, 2차 밑술 작업이 끝나자마자 쌀을 씻기 시작한다. 찹쌀 2킬로그램을 큰 대야에 넣고, 물을 갈아가며 어느 정도 맑게 될 때까지 씻는다. 너무 힘을 주면 쌀알이 깨지니 주의해야 한다. 다 씻은 쌀에 넉넉히 물을 채워 넣고 12시간 정도 불린다. 불린 쌀은 체에 밭쳐 1시간 정도 물을 뺀 뒤, 끓기 시작한 찜기에 올려 40분 찌고 20분 뜸을 들인다. 완성된 고두밥은 깨끗한 쟁반 등에 얇고 넓게 펼쳐 빠르게 식힌다. 겨울이면 창가에 두면 되고, 주변 온도가 높다면 선풍기 등을 활용한다. 식는 과정에서 바닥에 물기가 생기므로 주기적으로 뒤집어주는 것이 좋다. 이때 사용하는 주걱 등 용기는 철저히 소독해야 한다.
차게 식은 고두밥을 대야에 담아 밑술과 섞는다. 쌀알 표면에 당화효소와 효모가 잘 붙을 수 있도록 손으로 조물조물 치댄다. 뭉쳐 있는 쌀알이 밑술에 모두 풀리도록 해줘야 하는데, 쌀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힘 조절이 중요하다. 20분 정도 치대다 보면 쌀알이 밑술을 많이 흡수하게 되며, 이때 용기에 옮겨 담는다. 이후 입구를 어떻게 막을지 선택해야 한다. 3~4일간 공기를 통하게 해 효모를 더 증식시킬지, 아니면 처음부터 밀폐하여 즉각적인 알코올 발효를 꾀할지는 빚는 사람의 선택이다.
내 경우, 바로 밀폐해도 하루나 이틀 뒤, 참지 못하고 열어보게 될 것을 알기에, 2일 정도는 천으로만 입구를 덮었다가 이후 비닐을 이용해 밀폐시키는 방법을 쓴다. 온도가 안정된 장소에 용기를 두고 일주일, 이주일, 한 달, 그 이상을 기다린다. 상당 기간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를 볼 수 있고, 소리도 들린다. 이 주 정도 지나면 기포는 잦아들고, 황갈색의 맑은 층이 뜨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가 진짜 기다림의 시간이다. 내 경우 최장 50일 정도 기다린 적이 있다. 맑은 층이 더 이상 두꺼워지지 않을 무렵, 면포 주머니 등을 이용해 술을 거른다. 원주와 술지게미를 분리하는 과정이다. 원주를 적당한 용기에 담고 냉장고에 넣어 숙성을 시작한다. 숙성 과정에서 앙금은 아래로 침전하고, 다시 맑은 층이 위로 고인다. 앞서 살폈듯, 이렇게 고인 맑은 층만 따로 떠내면 청주다. 숙성은 아주 장기간 할 수 있는데, 내 경우 더 이상 앙금이 내려가지 않는 것으로 판단되면 끝낸다.
두세 달 숙성한 뒤, 청주는 떠내 다시 냉장고로 보내고, 앙금은 원액으로 마시거나 물에 타서 막걸리로 마시면 된다. 청주는 냉장고에 있는 한 아주 오랜 기간 마실 수 있지만, 하루 한 잔씩 마시다 보면 금세 사라진다. 원주 대비 많아야 5분지 2 정도만 청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빚은 청주는 단맛이 강하다. 여기에 신맛이 조금 있고 쓴맛도 엷게 느껴진다. 숙성을 오래 할수록 알코올의 쏘는 듯한 느낌은 줄어든다. 그렇다고 도수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고 맛이 부드럽게 편해진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단맛만 있는 술은 첫 잔은 맛있지만, 곧 물리게 되고 너무 달면 머리까지 아파지기 때문에 적당한 신맛과 쓴맛이 필요하다. 솔직히 술빚기의 성패는 단맛에 더해 시고 쓴맛이 적당하게 올라와 주느냐에 달려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술을 빚다 보면, 마치 생명체를 기르는 듯하다. 술을 만들어내는 존재 자체가 곰팡이와 효모이니, 생명을 기른다는 표현이 상징적인 것만은 아니다. 미생물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잘 자라길 기다리며, 일정한 역할을 수행토록 돌봐주는 모든 행위는 반려 동물이나 식물을 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술빚기에 실패해 곰팡이나 효모가 죽었다고 슬퍼하진 않지만,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 그 소리, 맑은 층이 생기고 밥알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살아 있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실패했을 때는 많이 속상하다. 그렇다고 빚은 술을 마실 때 이상한(?) 감정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작은 생명체들이 김치냉장고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술빚기는 아마도 최고의 반려 취미가 아닐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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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술빚기를 하고 있지 않다. 여름은 적합한 계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긴 할까 싶은 더위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면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삼양주를 기본으로, 또 여러 방식에 의한 술빚기를 시도할 것이다. 그리고 내년 봄에 맑게 거른 나만의 청주 몇 병 들고 가서 친구들과 한 잔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