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 담가먹는 이야기(6)
지난 이야기: [안으로 여행] 이 여름을 나는 방법, 누룩 빚기
5일 차
전날까지 보였던 하얀색 곰팡이 외에 노란색 곰팡이가 군데군데 올라왔다. 하얀색 곰팡이가 반죽의 가운데에서 주로 시작한 반면, 노란색 곰팡이는 테두리를 타고 빙 둘러 피어 있다. 색을 봐서는 황국균이라는 곰팡이인 듯하다. 황국균은 일본식 누룩인 '입국'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는 곰팡이로 알고 있다. 슬슬 반죽에서 누룩으로 진화하는 것 같다. 종이 박스 주변에 풍기는 냄새는 조금 강해졌지만, 반죽 자체는 그 향 그대로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그렇게 안 것을 실제 경험하는 것 또한 큰 기쁨을 준다. 책에서 읽은 역사는 재미를 주지만, 그 일이 실제 벌어졌던 유적지에서는 설렘을 준다. 살면서 포기하는 것들이 참 많은 것이 인생이지만, 이렇게 새로 알아가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 또한 참 많음을 느낀다. 난 살면서 황국균이란 걸 처음 봤다. 아니, 황국균임을 알고 본 것이 처음이랄까.
반죽을 뒤집어 줬다. 매일 해줘야 한다.
6일 차
어머니께서 건강하실 적, 주기적으로 시루떡을 찌셨다. 아마도 '돼지날'이 되면 그리 하셨던 것 같다. 떡이 다 되면 그 위에 맑은 물 한 그릇을 올리고 초를 꽂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비셨다.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의 건강을 빌고, 궁색한 살림이 조금만 더 펴지길 바라셨을 것이다. 부엌에서 이루어지는 그 일들은 우리 집안의 종교의식이었다. 어머니는 정성을 다하셨다.
한 번은 떡을 찌는 동안 불청객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전전긍긍하셨다. '부정'타는 것을 두려워하셨다. 눈에 띄게 불안해하셨고 그 불청객이 어서 가기만을 바라셨다. 결국 그날 떡은 설익어 버렸다. 어머니는 크게 상심하셨다. 떡은 다음 날 다시 하셨지만, 그 불청객에 대한 원망은 쉽게 떨치지 못하셨다.
나 역시 누룩 빚기에 나름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 낮에 반갑지 않은 일을 겪었다. 흔히 말해 '진상'을 만났다. 주변에 대한 일체의 배려 없이, 본인 이익만이 유일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한 개인의 몽니를 바로 곁에서 목격했다. 퇴근길까지 그 꺼림칙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 소위 '부정'이라는 작은 재앙이 내 몸을 따라오는 것 같았다. 버리고 싶었지만 끈질기게도 달라붙었다. 이런 일은 나이를 먹어도 참 쉽지 않다.
손을 깨끗이 씻고 종이박스를 열었다. 곰팡이 핀 모양새가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달라야 하는데 다르지 않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예상 범주 안이었은데, 오늘은 벗어나 있다. 아니 기대를 벗어났다. 냄새만 좋지 않은 쪽으로 조금 강해진 것 같다. 머릿속에 '설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생각이 또 옮겨질까 봐 서둘러 머릿속에서 지운다. 불현듯 시루떡 찌시던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내 정성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이쯤 되니 내가 만든 부정이 아닌가 싶다.
한층 더 조심스레 반죽을 뒤집고 볏짚으로 잘 감싸주었다. 모레 이 시간이 되면 비닐을 벗겨줄 것이다.
7일 차
표면상으로 큰 변화까지는 아니어도 어제와는 다르다. 기대까지는 아니어도, 어제보단 넓게 곰팡이가 살고 있다. 오늘 회사에서 중요한 보고를 마쳤다. 그 결과와 관계없이 마음은 홀가분하다. 그래서 더 곱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결과에 어제와 오늘 느낌이 다르다. 보고 준비를 하며 마음은 부담으로 가득했다. 차라리 시험을 보라면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되는데, 이런 일에는 어딘가 늘 빈틈이 생긴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 어이없어하고 만다. 하지만, 살다 보니 그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일 중에 스스로 노력한 만큼 딱 그 수준의 결과를 어김없이 내주는 것이 공부다. 노력 없이 좋은 점수를 받는 경우도, 노력했는데 형편없는 점수를 받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고, 결과 또한 고스란히 내 몫이다. 별론으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라 하면 난 싫긴 하다.
공부 외에 그런 것이 또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세상일은 절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 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결과가 좋은 경우도 많다. 세상은 원래부터 불공평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결과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그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세상은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 그 개인의 책임으로만 몰아간다. 인터넷 세상이 되고서는 더 심해졌다. 한 번 찍힌 사람은 극복해 내기 어려운 지경까지 된 듯하다. 좌절하고 분노하다가 포기하거나 저항한다.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름 정성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룩 빚기가 성공하리라 장담할 수 없다. 이 작은 것 하나도 맘대로 못하는데, 더 큰 세상일이야 오죽할까. 실패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좀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나부터도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부드러워야겠다.
반죽을 몇 번 토닥거려 주고 뒤집어 줬다. 내일 이 시간엔 비닐을 벗겨주고 본격 건조단계로 들어간다.
8일 차
이제 건조를 시작하는 단계다. 아직은 조심스레 말려야 한다. 종이박스를 새것으로 하고, 새 볏짚을 깔았다. 반쯤 된 누룩을 새 박스로 옮겼다. 무성하진 않지만 존재감 있게 곰팡이는 피어 있다. 솔직히 기대만큼 잘 되었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그래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세 번의 칠일을 모두 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는 것이 그나마 내게 찾아와 준 것들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새 지푸라기로 덮고 박스를 닫았다. 장소는 그대로 했다. 반죽은 표면부터 마르기 시작할 것이다. 곰팡이들은 반죽 속 수분을 찾아 균사체를 안으로 계속 밀어 넣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당화효소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 당화효소는 술을 담글 때 곡물의 전분을 당분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그 당분을 효모들이 다시 알코올로 분해하고, 술을 만든다. 효모 또한 지금의 반죽에 붙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누룩의 역할이다. 그리고 누룩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것은 내 역할이다.
그런데 말이다.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곰팡이 핀 모습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는 냄새도, 본능적으로도 알 수 있는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다. 아마도 내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다시 7일을 기다릴 것이다.
** 누룩 빚는 이야기는 조금 더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