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 담가먹는 이야기(7)
지난 이야기 : [안으로 여행] 누룩 빚기는 어떻게 됐을까?
누룩 빚기 2주 차(8일~14일 차)
맞다. 생애 첫 누룩 빚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빚기 시작한 지는 2주가 지났고, 중간 건조를 시작한 지 1주가 지났다. 2주 차부터 야릇하게 올라오는 꼬리한 냄새로 인해 어느 정도 예견은 했다. 그래도 기다려주기로 했기 때문에, 퇴근 후 한 번씩 뒤집어 주며 매일 안부를 물었다.
일주일 동안 외관의 변화는 없었다. 1주 차에 핀 곰팡이 모양 그대로, 더 퍼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다. 비닐을 벗겨둔 상태이기에, 표면부터 급속히 말라갔을 것이다. 곰팡이들은 증식을 포기하고, 생존을 위해 물기를 찾아 속으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반죽 속이 균사체로 꽉 들어차야 비로소 누룩이 된다.
14일 차 저녁, 부드러운 솔로 표면의 곰팡이를 털어낸다. 손의 느낌으로는 이미 많이 말라 있었다. 솔에 털린 곰팡이가 허공으로 흩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두 개의 반죽 표면을 모두 털어냈다. 이제 속을 봐야 한다. 망치를 꺼냈다. 망치 정도로 내려쳐야 깨질 것 같다. 그만큼 반죽은 단단해져 있었다. 망치를 내려치는 순간, 마음속은 예견된 절망과 근거 없는 희망이 수없이 자리를 바꿨다. 그 짧은 순간에.
처음은 눈으로 봤고, 바로 이어 코로 확인했다. 속으로 반쯤 들어간 부분부터 색이 짙었다. 그 외 부분은 침투한 균사로 인해 회백색을 띠었기 때문에 더 확연 히 구별됐다. 코를 가까이 대지 않아도 냄새가 느껴졌다. 구수하고 포근한 곡물 향이 아니라, 메주 띄울 때 나는 냄새였다. 두 감각만으로도 마음속은 절망의 승리로 끝났다.
남은 일말의 희망에, 손톱 끝으로 짙은 색 부분을 눌러봤다. 물기가 다 마르지 않아 물렁하다. 이제 깔끔히 포기해야 한다. 초심자의 행운은 결국 오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서로 열심히 해 온 반죽과 나에 대한 의리인 것 같다. 다만, 버릴 땐 버리더라도 삼칠일의 생은 다하게 해 주고 싶다.
맨 처음 반죽을 성형하면서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도록 만들었어야 하는데, 천의 길이가 짧아 꼬투리를 크게 만들지 못했다. 꼬투리가 커야 가운데가 많이 눌릴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반죽의 테두리와 중심부 두께에 별 차이가 없었다. 뭐 이쯤이면 되지 않을까 안이했다.
첫 1주간, 밀봉을 너무 해 둔 것 같다. 박스 속에 비닐을 넣고 그 안에 볏짚과 반죽을 넣어둘 것이 아니었다. 볏짚과 반죽을 넣은 박스 표면을 비닐로 감싸야 했다. 첫 일주일간에도 조금씩 건조가 됐어야 했다. 습도가 너무 높게 유지가 된 것 같다. 그렇잖아도 두꺼운 반죽의 중심부가 정상적으로 삭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외 생각할 것이, 최초 반죽에 곰팡이를 자라게 해 주는 초제로 볏짚만 사용했다는 점이다. 닥나무 잎이나 쑥대 같은 것들도 사용했어야 하는데, 미처 준비하지 못했었다. 역시 볏짚만으로도 되지 않을까 안이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란 것도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 올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렇게 내 생애 첫 누룩 빚기는 실패했다.
그늘에서 건조를 끝내면 짙은 부분은 잘라내고 나머지 부분으로 술을 담가볼 생각이다. 공부하는 단계이기에, 다양한 변수를 경험해 보고 싶다. 그러면 내년에는 좀 더 잘 빚을 수 있지 않을까?
고백
실은 반죽은 총 세 개였다. 주문한 밀가루는 원래 3킬로그램이었다. 그중 2킬로그램으로 반죽 두 개를 만들었다. 나머지로는 반죽 두 개의 결과를 보고 빚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반죽을 만들고 이틀 뒤에 한 개를 더 만들었다. 견물생심이라고, 남겨둔 밀가루를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었다.
그 반죽 한 개도 처음 반죽 두 개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단, 비닐을 박스 안에 넣은 것이 아니라, 박스 바깥을 감싸줬다는 차이만 있었다. 아, 성형할 때 가운데를 힘주어 밟아 좀 더 들어가게도 만들었다.
첫 반죽 두 개의 결과를 본 뒤 이틀 후, 반죽을 꺼내 곰팡이를 털어 내고 망치로 깼다. 두 반죽에 비해 표면의 곰팡이가 그리 왕성하지 않았기에 기대는 크지 않았다. 그냥 반죽이 마르기만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좋지 않은 냄새도 나지 않는 거라 생각했다. 첫 반죽에 비해 정성도 적게 들인 것도 같다. 욕심 내지 말자 했다.
두 조각으로 갈라진 반죽의 속을 들여다봤다. 깊이까지 고른 회백색이었다. 짙은 색이 보이지 않았다. 코에 대 보니, 구수하고 포근한 곡물 향이 났다. 인터넷 사진 속의 누룩들과 비슷했다. 밀가루 반죽이 누룩이 되었음에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그 확신은 작은 기쁨을 주었지만 한편으로, 세상 일이란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정성을 다한 일이 어그러지는 경우나, 그냥 대충 했던 일이 예상 밖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들 말이다. 정말이지 일이 되었건 사람이 되었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가 없겠다. 아. 인생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이렇게 또 삶의 작디작은 변곡점을 하나 넘었다. 작은 시도 하나를 했고, 실패와 성공 둘 다 맛보았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그 누룩으로 술까지 담가보아야 한다. 모양은 누룩일지라도 당화 효소와 효모가 형편없이 적은 누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시도란 것을 했고, 그 결과도 보았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쌓여 나를 또 형성해 나갈 것이다. 남들 보기엔 사소한 일이겠지만, 내게는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