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아저씨 이야기 -
일찍부터 아저씨란 소리를 들었다. 내가 가진 꼴이 그래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남자들은 비교적 일찍부터 아저씨 소리를 듣는다. 개인적인 경험상 처음으로 아저씨라 불리던 때는 군대부터였다. 소속 중대가 다른 현역 사병들끼리는 서로 아저씨라 불렀다. 1중대 아저씨, 3중대 아저씨 하는 식으로.
제대 후 복학했어도 이미 어린 티를 벗어버린 남자들은 흔히 아저씨라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스물한 살 이후 줄곧 아저씨였고, 내가 아저씨임에 대해 어색하거나 불쾌해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에 익숙해졌다.
문득 아저씨란 무엇일까 궁금해 인터넷을 찾아봤다. 당연히 전문적으로 정의된 것은 없었다. 몇 가지 특징적인 부분을 짚어, 그럴 것이다 하는 설명만 좀 있었다. "연령상 40~50대 정도이고, 외형상 노화의 흔적이 뚜렷하며, 패션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에, 말투도 그리 친절하지 않은 그런 남자들"로 정리하면 될까?
얼마 전 평일 저녁이었다. 퇴근 후 귀가한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었다. 집에서 입듯, 반바지에 후줄근한 면티. 그래도 뭔가 어색해 면티 위로 셔츠 한 장을 추가했다. 단추는 채우지 않았다. 급히 주머니에 현금을 챙겨, 걸어서 5분 거리인 동네 안경집으로 갔다. 밀린 외상값을 갚았다.
내가 번 돈으로 무엇인가를 사기 시작한 이후 외상이란 것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난번 안경을 새로 하면서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지불했었다. 내 딴에는 사장님을 위해 그리 했던 건데, 마침 현금이 조금 모자랐다. 하루 이틀 뒤면 다시 오겠다 한 것을, 어마어마한 폭염을 핑계로 5분 거리를 미루고 말았다. 그렇게 진짜 외상이 되어 버렸다. 나만의 규칙 하나가 깨진 기분이었다.
제 값을 다 치렀는데도 허허로운 마음은 여전했다. 안경집을 나와 몇 걸음을 옮겼을 때, 두 집 건너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눈에 들어왔다. 허하던 마음이 맹렬한 식욕으로 변했다. 잠깐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어느덧 난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끔 이 집에서 치킨을 사 먹긴 한다. 늘 전화나 애플리케이션으로 먼저 주문한 뒤 시간에 맞춰 찾아 갔는데, 현장 주문은 오늘이 처음이다. 가게로 들어간 나는 주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기다려도 돼요?" 가게 주인은 순간 묘한 표정을 짓더니 "네, 그러세요" 하고 대답했다.
홀이라고 해봐야 형식적으로 놓인 테이블 두 개와 의자 몇 개뿐.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다. 그 테이블조차 배달을 기다리는 치킨 꾸러미가 올려져 있었다. 손님용 테이블과 의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난 의자에 앉았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포기했던 모양이다.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롭게 펼쳐지고 있는 이 상황에 약간의 흥분까지 느꼈다.
좁은 홀을 빙 둘러봤다. 맞은편 한 평짜리 벽은 몇 장의 광고지와 상업용 냉장고가 차지하고 있었다. 냉장고 유리문 안으로 내부가 훤히 보였다. 위아래 칸에는 식재료인 듯 비닐에 쌓인 무엇인가가 있었고, 가운데 층에는 구색 맞추기로 보이는 맥주 몇 병이 들어 있었다.
순간 맥주에 시선이 고정됐다. 시원하게 한 잔 마시고 싶었다. 꼭 더위 때문만은 아닌, 모종의 갈증을 풀고 싶었다. 몸을 반사적으로 일으키며 난 외쳤다. "맥주 한 병 마셔도 되지요?" 답을 듣기도 전에 맥주는 이미 냉장고 밖으로 꺼내지고 있었다. 병따개는 주방에서 건네줬고, 맥주는 테이블 위 플라스틱컵에 따랐다. 한 잔을 쉼 없이 들이켰다. 맛있었다. 마음이 한결 씻겨 내려갔다. 가게 주인이 간장종지만 한 그릇에 땅콩을 내줬다.
시선이 통유리창 밖 동네 거리로 옮겨진다. 큰길에서 빠져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중심 도로다. 그래봐야 왕복 2차선 도로다. 차들이 열심히 들고 나고 있었다. 맞은편 미용실 안에선 누군가 머리를 깎고 있었다. 그 옆엔 아직도 저런 가게가 있었나 싶은 작은 옷가게가 보인다. 그리고 또 옆으로 곱창볶음집도 보였다.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가게 앞엔 두어 명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귀가를 위해 종종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오랜 시간, 우리 동네를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성인이 되고 지금껏 동네는 잠을 자러 오는 곳이지 주 생활무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휴일 역시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아니면 아예 외곽으로 나가거나. 이곳에도 참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 싶다. 저마다의 녹록지 않은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일본에서는 중장년층의 '지역 데뷔'란 개념이 이미 오래되었다고 한다. 은퇴 후, 그동안 소원했던, 살고 있는 바로 그 동네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 역시 이젠 '지역 데뷔'를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된 것 같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게 바로 앞으로도 사람들이 지나갔다. 함께 웃으며 지나가는, 모녀로 보이는 여자들이 보였다. 학생들도 무리 지어 지나갔다. 순간, 나와 복장이 거의 같은 중년의 남자 한 명이 지나가며 가게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시간은 불과 1초 정도. 난 그가 나임을 알아봤고, 그 역시 내가 그임을 알아봤을 것이다. 게다가 난 작은 가게 안에 홀로 삐딱하게 앉아, 그것도 허옇게 드러난 다리 한쪽을 올리고, 맥주병까지 앞에 두고 있었다.
아. 나는 아저씨였다.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3이었다. 머리와 몸으로는 충분히 알고 있던 사실인데, 이제 마음까지 내가 아저씨임을 알아버렸다. 아, 나는 진짜 아저씨였다.
진 웹스터 작 '키다리 아저씨'의 저비스, 영화 '아저씨'의 전당포 주인 차태식,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 부장. 그들 모두 아저씨라 불렸다. 하지만, 모두 안다. 그들은 아저씨들이 아니란 사실을.
그래도 그들이 아저씨라 불렸던 이유는 성숙함 자체에 대한 바람때문이 아닐까. 이젠 어느 정도 비칭이 돼버린 '아저씨'라는 말에서 사람들은 또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그 성숙함이란 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온전히 다 해내는 것이란 의미로 난 받아들이고 있다. 소설, 영화, 드라마로 나온 아저씨는 그 책임을 모두 다한 인물들이다. 그것도 아주 이상적으로, 완전무결하게.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이상이다. 일종의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난 이상적인 것은 포기하고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책임이나마 다 하고 싶다. 사회인으로, 또 가족의 일원으로 내게 다가오는 책임에 대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피하고 싶지 않다. 그런 아저씨가 되고 싶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아버지 료타는, 자신이 아버지임은 인식하고 있으나 마음으로는 깨닫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다 어느 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누군가의 아버지였음에 대해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이제, 내가 아저씨임을 온몸과 온마음을 다해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아저씨라는 단어는 오래전부터 나를 따라다녔다. 머리로는 이미 받아들인 사실이었지만, 오늘에서야 마음까지 그 무게를 껴안게 된 것 같다. 이상적인 아저씨는 나로선 불가능하다. 현실의 아저씨는 이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대부분 미련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 가족과 동네와 세상에서 맡은 몫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 나는 그런 아저씨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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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도 실렸습니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가 되었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