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여행] 겨울의 석남사, 고요 속의 조화로움

- 차가운 바람에 씻긴 우울 -

by 도시백수

[2010년 겨울]


관광안내 지도에는 경기도 안성 남쪽 서운산 자락에 청룡사와 석남사, 두 곳의 절이 있는 것으로 나와있다. 청룡사는 앞전에 다녀왔기에, 이번엔 석남사로 향한다. 차가운 날씨와 흐린 하늘이 주는 우울감은 절이 가까워질수록 약간의 두근거림으로 변했다. 그렇다. 나는 절구경을 좋아한다.


이곳 석남사의 내력은 신라 문무왕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구려 멸망과, 당군 축출을 이끈 통일신라기 첫 임금이다. 그 시절만큼이나 오래된 절이라 하겠다.


고려 정종의 왕사이자 광종대의 국사였던 혜거국사(생몰 미상)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고 했다. 한 때는 수백 명의 스님들이 함께 수행하던, 큰 도량이었다고 전한다. 옛 절치고 그런 수식이 붙지 않은 곳은 또 별로 없으니, 한 시대에 동시 번창했다면 인구의 반은 스님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다.


주차장 건너 맑은 계곡물을 따라 오르는 길. 표식 하나 없어 이 길이 맞나 의심될 정도다. 그저 맑은 골짜기를 옆에 끼고 난, 시멘트 포장길을 말없이 걷는다. 개울에 쓰레기 한 줌 보이지 않는다. 찾는 사람들이 착한 것인지, 그만큼 인적이 드문 곳인지는 모르겠다. 세상 모든 길이 이렇다면 좀 심심하겠지만, 지금은 그냥 좋다. 집을 떠날 때의 우울은 차가운 계곡 바람에 씻긴 지 오래다.


숲 속의 검은 바위, 석남사 마애불


계곡 길 저 끝에 절집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를 애써 외면한다. 왼편 숲길을 따라 올라 바위 부처님을 먼저 뵈러 간다. 석남사 앞에서 500여 미터쯤 떨어진 산길이다. 얼마전 내린 눈은 다 녹아 마른 낙엽들만 발에 밟혔다. 흙길에 박힌 돌들이 많아서 등산화 바닥이 고생한다. 이곳은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 주지만, 또 참으로 불친절한 동네다. 해거름이 곧인데, 다시 한번 이 길이 맞나 고민한다.


한참을 헤치고 오른 숲 속 언덕배기에, 검은빛 바위 덩치가 오롯이 솟아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석남사 마애불이다. 키는 한 5미터 정도 될까. 연결된 바위줄기도 없이 숲 한가운데 홀로 서 있다. 보통은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겠지만, 관심이 있었다면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발견한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새겨졌을 것이다.


감탄을 자아낼 만큼 잘생기진 않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출 것은 다 갖췄다. 바위의 요철을 보고 디자인을 시작했을 텐데, 딱딱 아귀가 맞으니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광배까지 완전하게 맞아떨어진다. 중하대 신라의 양식이라 하나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고 했다.


굵게 튀어나온 발가락이 유난스럽다. 밋밋한 흐름에 입체감을 주려 했을까. 많이 깎아내지 않고 길게 놔두었는데 미워 보이지 않는다.

석남사마애불.jpg [석남사 마애불. 북향을 하고 있는 이 부처님은 절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마애불의 시선은 북쪽을 향하고 있다. 나침반을 들고 이리저리 재 봐도 어김없는 북향이다.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는 위치다. 불상만 들여다보고 있자니 답이 없다. 주변을 찬찬히 훑어본다. 아! 가려진 나무 사이로, 계곡 넘어 저 멀리 석남사 가람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석남사에서도 이 바위가 보였을 것이다. 아니, 보이지 않았어도 누군가는 알고 또 느꼈을 것이다. 숲 속에 홀로 솟은 검은색 바위 둥치는 아무래도 ‘살(殺)’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위가 마애불이 되는 순간, 그 살은 순화되어 정기가 된다. 절은 사시사철 하루 온종일, 부처님의 ‘가피’가 흐르는 가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를 생각해 낸 사람이 참 용하다. 역시 풍수의 나라답다.


지형에 순응하되 극복하는 절집


부처님을 뒤로하고 이젠 절집으로 오른다. 입구인 2층의 누마루 아래를 통과하니, 가파른 계단 너머로 다시 가파른 계단이 보였다. 그래서 시선은 급하나, 막힘 없이 맨 위 대웅전에 바로 닿는다.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시선 처리이나, 부드러운 지세 덕분인지, 혹은 그렇게 경영한 사람의 지혜 덕분인지 고개 들기가 힘들지는 않다.

석남사전경.jpg [석남사 경내 풍경. 맨 위로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이고, 그 아래 오른쪽은 영산전이다.


잘 엮어지은 절집이다. 양 무릎에 걸리는 무게와 관계없이 억지로 오르게 하지 않는다. 즐기면서 오르게 해 준다. 겨울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이런 느낌이라면, 꽃 피는 봄이라면 선계에 오르는 듯 가볍지 않을까.


누마루 건물을 지나면 1층 왼쪽에 종무소와 요사채가 있다. 그리고 2층 오른쪽에는 이곳에서 제일 오래된 영산전이 들어서 있고, 맨 위 3층에는 아까본 대웅전이 자리한다. 우선 대웅전으로 바로 올라갔다.


이곳 가람은 극복하되, 거스르지 않는다는 표현을 써도 되는 곳 같다.


맞배지붕에 담긴 조화의 미학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대웅전 건물은 맞배지붕인 쪽이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특히 산 높고 물 깊은 곳의 작은 절이라면,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대웅전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이곳 같은 지형에서 맨 위 건물이 팔작지붕을 이고 있다면 계단 오르는 느낌이 많이 달랐을 것 것이다.


다행히도 이곳 대웅전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원래는 2층, 영산전 앞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라 한다. 그럼에도 배치상 어색하거나 틀어짐이 보이지 않는다. 조선 후기에 크게 중수된 건물이며, 구조를 보아 원래는 팔작이었다가 맞배로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그 시절에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까. 사실이 무엇이건 대단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석남사대웅전.jpg [석남사 대웅전.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다포를 얹고 있어 조금 어색하기도 하나, 지형에 맞춘 듯 하다.]


조금 협소한 듯 딱 알맞은 크기의 대웅전 마당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다시 위를 올려다본다. 문득 영주에 있는 부석사 가람 배치가 생각난다. 스케일과 격은 비교하기 힘들지만, 미니어처 내지는 오마주라도 되는 양 자꾸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조금 부족해 보이는 대상이 더 사랑스러울 수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은 더할 것 없이 만족스럽다. 생각과 몸의 속도를 조금 늦춰본다.


건물은 남향을 하고 있으되 동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다. 주변에 가리는 산세가 없어 늦게까지 해바라기가 될 것 같다. 각 층의 마당이나 1층 샘터 옆에 옹기종기 화초를 심어놓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위아래 급한 시선이 많이 누그러질 것이다.


조선의 흔적을 품은 보물, 영산전


임진왜란이 나기 30년 전에 세워진 영산전은 다행히도 전란의 화를 면했다. 조선 중기, 당시의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귀한 보물이다. 정면 3 칸, 측면 2 칸이며, 기둥 사이의 간격이 좁아 작고 아담해 보인다. 화려한 다포식의 공포를 얹고 있는 건물이나, 적절한 비례와 배치 덕분에 보는 눈이 시원하다. 역시 이 절의 복이 아닐까.

석남사영산전.jpg [석남사 영산전.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조선 중기 건물이다. 그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있다.]


영산전은 원래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도를 봉안하는 건물이다. 영산회상 법회 장면을 풀어놓은 그림이 내벽 좌우 측면과 후면에 그려져 있다. 한 바퀴 돌며 보면 각 그림에 그려진 인물들과 그 표정, 몸짓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다. 비록 이름난 화가가 그린 그림은 아닐 수 있지만, 이를 통해 법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보는 이의 복이다. 은 아니지만, 그 그림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복일 것이다.


옥에 티 같은 존재. 영산전 옆에 있는 시대 불명의 탑은 솔직히 눈에 거슬린다. 전기톱 자국이 선명한, 허여멀건한 석탑 부재들도 그렇고, 까만 오석으로 끼워 넣은 몸돌은 비율조차 크게 어그러져 있다. 아무리 모던함의 극치를 달리는 창조력의 소산이라 할지라도 좋은 점수를 매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나마 구석에 두어 시야를 가리지 않으니, 자리매김한 누군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조화로움을 향한 노력


나는 적지 않은 절들을 돌아다녔다. 그곳들에서 성소의 엄숙함은 별개로 하고, 단순히 시각적, 공간적 느낌만으로도 좋은, 그러한 곳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다. 특히 구한말 이후 현대에 지어진 절들은 시원을 따지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막무가내인 것을 많이 봐왔다. 건물이 들어서지 못할 곳에 들이느라 산등성이를 무참히 깎아내고, 하얗다 못해 창백한 석재들로 이곳저곳을 쳐 바르거나, 주변과 전혀 조화되지 못하는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까지.

석남사와 주변 산세.jpg [석남사와 주변산세. 마치 영주 부석사의 오마주같은 인상이 느껴졌다.]

석남사 역시 그런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쓰임을 최소로 하고 최대한 지형에 순응하며 주변과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음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 점이 고마운 것이고, 예쁜 것이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민가의 모습을 닮은, 발그레한 요사채 벽면이 이채로우면서도 참 편안해 보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