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를 타며 생각하며, 살며, 희망을 품는 이야기 -
퇴근하자 곧 '현관령'을 넘었다. 그 어떤 고개보다 넘기 힘든 곳이 현관이라는 뜻으로, 자전거 동호인들이 그리 부른다. 전용복장 착용부터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긴 하다. 헬멧도 써야 하고, 전조등과 후미등까지 준비해야 한다. 지난주까지는 아직 하늘이 환했는데, 오늘은 이미 어둡다. 출발부터 등을 켰다.
내가 보려고 켜는 등은 아니다. 남에게 보이려는 등이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켠 등을 보고 달린다. 우리는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나, 각자 조금씩 남을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조금만 더 고마워하면 좋겠다. 드디어 낮의 열기가 어둠까지는 뚫지 못하게 된 듯하다. 맨살에 닿는 바람에 땀이 식어 간다.
한강에는 혈관이 뻗듯 여러 지천이 연결된다. 그 지천들은 또 모세혈관 같은 지류들을 거느린다. 나는 지류부터 시작해 중랑천을 이어 달리고, 한강 합수부까지 간 뒤 되돌아온다. 거리로는 33.63km요, 시간으로는 대략 1시간 반이다. 중간 휴식이 길어지면 더 걸리기도 하지만, 평일 밤이라 여유롭진 않다.
소임을 다한 모세혈관 속 피가 정맥을 따라 심장에 돌아가듯, 하루라는 소임을 마친 나 역시 물길을 따라 한강에 이른다. 그곳에서 다시 양분을 공급받아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맞바람이라도 불면 바퀴는 무거워지나 그 강에 이르길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20여 년 전, 추석 연휴의 나른함이 힘겨워, 현금 20만 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연휴에도 문을 연 자전거 가게로 갔다. 가게 주인은 신제품이라며 검은색 자전거를 추천했다. 굵은 바퀴, 돌기가 나 있는 타이어, 7단의 기어까지. 앞바퀴에는 쇼크업소버, 일명 '쇼바'까지 달려 있었다. 나는 두말 않고 구입했다.
자전거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른함이라는 관성을 깨고 싶었다. 고정된 곳에 메여 안주하는 무기력을 털고, 내 삶을 새로 정의하고 싶었다. 취업 5~6년 차의 매너리즘이 싫었고, 마침 내 곁을 떠난 연인이 미웠다. 그런 나에게 자전거는 그저 자전거이기만 하면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런 자전거를 유사 MTB라고 했다. 무게도 제법 나가는 그것을 끌고 열심히도 다녔다. 퇴근해서는 중랑천을 달렸고, 주말에는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로 넘어 다녔다. 자전거도로가 충분하지 않던 때라 일반도로 이용도 잦았다. 참 겁이 없었고, 아직 젊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힘든 줄도 몰랐다.
젊음이란 어쩌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고통의 중량은 훗날 멋들어진 근육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청춘들의 고통은 마음과 몸의 허용범위를 초과한 듯하다. 어서 그들도 그때만의 소중한 고통을 즐길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길 바란다.
한참을 달리던 어느 날 문득, 남들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퀴도 얇았고 프레임도 가늘었다. 세련된 디자인에, 무엇보다 놀란 것은 가벼운 무게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내 자전거는 업그레이드와 옆그레이드(유사한 급으로 바꾸는 것)를 반복했다. 그와 함께 자전거로 달리는 지역은 멀어지고, 또 넓어져 갔다.
근교 사찰이나 유적지는 물론,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실어 지방에도 다녀왔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로 달렸다. 4대 강 자전거 종주도 뒤늦게나마 시작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최근 그 여정을 마칠 수 있었다. 강은 그곳에서 여전히 날 기다려 주었다.
심지어 내 자전거는 다른 나라도 달려봤다. 그래 봐야 일본 뿐이지만, 대마도를 두 번 다녀왔고, 동해에 면한 돗토리현을 한 번 다녀왔다. 일본의 한적한 섬마을과 지방 소도시 사이를 달리는 경험은 또 다른 충만함이었다. 멀지 않아 다시 원정을 감행할 계획이다. 그 계획은 내게, 또 다른 희망으로 품어지고 있다.
물론 난관은 있었다. 2010년 전후 시작된 목의 통증은 허리까지 확대됐고, 지금까지 고질병으로 남았다. 심할 때는 누워 있는 것 빼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상당 기간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그래도 조금만 몸이 회복되면 안장에 오르길 시도했다. 다행히 지금은 내 몸을 살살 달래 가며 탈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병은 내게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겸손도 가르쳤다. 더 빠르고 멀리 가려는 욕심을 버리라 했다. 대신 내 몸과 대화하고 그 한계를 깨닫는 법을 알려줬다. 자전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인도자가 되었다. 단, 너무 늦게 배운 탓에, 이미 팔아버린 '고급' 자전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자전거를 전문적으로 탄다고 하진 못하겠다. 지금 자전거도 전에 비하면 한참 아래 등급이다. 소위 '동네 마실'용으로 일컬어지는 자전거인데, 더 이상 업그레이드할 생각이 없다.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는 그 정도가 나에게 가장 완벽한 속도임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있으면 거의 모든 순간이 축복이다. 계절의 풍경이 주는 경이로움, 바람을 맞으며 느끼는 청량감. 촤르르 하며 감겨드는 대지의 진동. 종아리와 허벅지로 전해지는 묵직한 생동감. 무엇보다 나와 기계가 혼연일체가 되어, 한 뼘 빈틈없이 궤적을 남기며 달리는 그 만족감은 대체제가 없다.
중랑천에 올라 30분쯤 달리면 응봉산 아래 용비교에 닿는다. 요즘의 중랑천은 예전과 다르다. 나 어릴 적의 냄새나고 시커멓던 강이 아니다. 물속에는 어른 다리만 한 잉어가 헤엄치고, 물 위로는 청둥오리, 가마우지, 백로 같은 새들이 철마다 다르다. 이런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그건 감탄의 다른 말이다.
강이 다시 맑아지고 뭇 생명의 보금자리가 된 것을 보니, 세상이란 것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망가진 세상이어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변화시킬 수 있다. 강의 변화도 그간 기울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다. 강처럼 우리도, 세상도 다시 정화되고 성장할 수 있으리라.
용비교 매점에서 스포츠 음료를 한 통 사 마신다. 쉼터 벤치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예전 같으면 무심히 스쳤을 모습인데, 이제는 사람들 자체가 재밌는 풍경이 되었다. 특히 이곳에 온 이들은 저마다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어 지켜보기가 자못 즐겁다. 나아가 내가 그 힘을 나눠 받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면 심장은 강이 아니라 바로 저 사람들인 것 같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대로, 삶이라는 길을 걷고 달리는 저들의 모습은 온전히 무해하다.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 저들은 서로와 또 나와 보이지 않는 연대를 쌓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해서 각자의 삶을 서로의 삶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다시 여기 온 시간과 거리를 그대로 곱해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오늘도 이렇게 달렸으니 단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살면서 잘한 선택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자전거를 취미로 한 것을 든다. 개인이 기계를 이용해 가장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것이 자전거이고, 그 효율감에 대한 추구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자전거의 속도와 방향은 내가 결정한다. 내 삶의 속도와 방향 역시 내가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를 통해 배운 방식대로 내 삶을 살고 싶다. 난 내 자전거에 나 자신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싣고 아주 멀리까지 그리고 오래도록 달리고 싶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앞선 누군가 내게 비춰주는 작은 깜빡임을 따라 나는 달린다. 내 뒤의 누군가도 내가 켜 둔 그 불빛을 따라 달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