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이할 계절이 이젠 적을 것이다.

- 치악산 구룡사,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다 -

by 도시백수

전에는 다가오는 계절을 기대했건만, 요즘은 가는 계절이 아쉽다. 맞이할 계절이 맞이한 계절보다 적게 남아서일까. 건물 주위 흙바닥에서 언뜻 솟은 잡초를 보았다. 봄인가 보다. 지난겨울 추위에 정신 못 차리며 떨었던 주제에 오늘은 그 끝자락이라도 붙잡아보려 길을 나선다.


원주땅도 강원도라고, 들어서자마자 차창밖 한기가 느껴졌다. 역시 찾아오길 잘한 것 같다. 치악산 계곡에 들어 창문을 열었다. 못지않은 시린 바람이 맨 얼굴에 스쳤다. 히터를 켜지 않은 차 안은 금세 식는다. 두텁지 않게 걸친 옷 틈 사이로 바람은, 마치 한겨울 밖에서 뛰어놀고는 이제 막 들어온 어린애의 식은 고사리손처럼 내 품을 파고들었다. 놀랄만큼 서늘하지만 품어야만 할 듯한 소중함이었다.


주차장과 구룡사 절은 제법 멀었다. 다행히 넓은 주차장에 내 차 한 대뿐이다. 바로 채비를 하고 차 안에 누워 잠을 청한다. 좀 전에 올려다본 하늘엔 별이 참 밝았고, 바로 앞 계곡물에선 새까만 공기 속 아지랑이가 피는 듯도 했다. 모두 어둠에 잠겨 있으니 나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로 한다.


아침의 공기는 시렸다. 그 시림이 다행스러웠다. 날은 이미 밝았지만 주변은 온통 무채색으로, 겨울 그대로의 모습이다. 가까이 가면 가지 끝마다 망울이 맺혔을 터이나, 난 아직은 멀리서만 볼 참이다.

[일주문을 지나 숲길을 오롯이 걷다보면 잘 생긴 소나무들이 반겨준다. 왠지모르게 단단해 보인다.]


차단봉이 있는 상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길을 따라 올랐다. 길 초입 둔덕의 작은 계단을 오르니 '黃腸禁標(황장금표)'가 새겨진 작은 바위둥치가 있었다. 조선 시대, 궁궐에 올릴 나무들이니 범부들은 손대지 말라는 금지의 표식이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에 새겨진 문구지만, 백성들에게 미쳤을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덕분인지 마주치는 소나무는 빼곡하진 않아도 준수하고 단단해 보였다.


일주문을 지나고, 곳곳에 겨울의 흔적이 가득한 계곡길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그리 멀지 않은 구룡사 절집에 느리게 닿았다. 신라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는 절. 원래 용이 살던 연못을 메우고 세웠다고 했다. 절 바로 앞으로 가파른 계곡을 끼고 있어 연못이 있었을까 싶지만, 용이 있으려면 못도 있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짜임새랄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하신 뒤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씻겨드렸다는 불교 전승과도 분명 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 진실을 찾고자 하는 것은 대개가 무의미하다.

[구룡사 전경. 가파른 경사면을 높게 경영해 대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전각들을 얹혔다. 맨 아래 2층 건물은 천왕문이다.]


역사 속 절은 번창했다지만, 지금의 건물들은 2층짜리 보광루를 제외하곤 모두 현대의 것들이다. 하긴 억불의 긴 세월과 전쟁, 지독한 가난을 겪었을 이곳이다. 더 이상은 욕심일 수 있겠다. 그래도 모든 전각이 옛 터 위에 오롯이 앉아 있으니 짜임새에 흐트러짐이 없다. 계곡에서 산 쪽으로 사천왕문을 지나 가파르고 긴 돌계단을 오른다. 보광루 아래를 옛 방식으로 통과해 지난다. 낮은 계단을 오르며 위에서 아래로 열리는 시선의 끝에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편 듯 대웅전에 앉아 있다. 단청 빛이 고운, 다포를 얹고 있는 팔작지붕 건물이다. 그리고 바라보는 오른쪽으로 석탑 한 기가 서 있고 그 뒤로 관음전이, 그리고 대웅전 건너 반대편에 지장전이 보인다.

[구룡사 대웅전. 근래까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물이었지만, 불에 타 다시 지은 건물이다. 단청빛이 생생해 경쾌한 느낌이다.]


마당 좌우로는 요사채와 종무소가, 저 위로는 삼성각 등 몇 개의 부속 건물도 보인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전각 하나하나를 찾지 않아도 그 안의 모습이 상상이 된다. 이제 절에 와서 새로운 모습을 찾는 일은 대부분 포기하고 있다. 그저 익숙한 모습에서 더 큰 안도감과 반가움을 느끼려 노력한다. 그러다 가끔은 전각 벽면에 그려진 불화에 마음을 두기도 하고, 관청 건물이 아니면서도 허락된 지붕 위 잡상들에 시선을 두기도 한다. 다시 보지 못할 것처럼 내 머리에 각인시키려 애쓴다. 허나 내 기억도 저것들도 종내 퇴색하고 말 일이다.


옆으로 긴 땅모양의 틀을 크게 깨지 않고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시선은 부드럽게 유도되고 좌로 우로 돌아보다 보면 정면의 보광루에서 다시 멈춘다. 대지의 경사가 급한지라 대웅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지만, 위태로운 모습은 아니다. 저 누각에서 누군가는 열심히 기도를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더운 땀을 식혔을 것이고, 못된 누군가는 술판을 벌였을지도 모르겠다. 누마루란 본시 누구 하나 가리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저렇게 열려 있다. 아니 저렇게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광루 마루바닥 위로 얼룩고양이 한 마리가 뛰어올랐다. 걸음은 느릿했다. 확인하듯 각 물건들에 코를 들이미는 모습이 풍경으로 녹아 튀지 않았다. 할 일을 끝낸 고양이는 마당을 종종걸음으로 지났다. 마침 종무소의 미닫이문이 살짝 열리고 그 틈으로 녀석의 몸이 사라진다. 챙겨주는 이가 있는 모양이라 시선을 거두고 추적(?)을 그만두었다. 내가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 온전히 품을 수 있는 것 하나만이라도 내게 허락된다면 그건 아마도 천운일 것이다.

[얼룩고양이 한마리. 절의 터줏대감인지 들고양인지는 모르겠다. 절에 살명서 살생하면 안되는데 본능은 거스리기 힘드니.]


열지은 전각들 지붕 저 너머로 흘러가는 주변 산세가 보였다. 감싸듯 포근하면서도 멀리까지 시야를 두게 만들어 장쾌함도 드러낸다. 우리네 절집을 일구었을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주변 산세와의 어울림을 반드시 지켜낸 것 같다. 옛 절집에서 보는 주위는 늘 범상치 않았다. 국립공원답게 수려한 치악산의 산세 역시 이 절과 어울려 같이 살고 있었다.

[구룡사와 치악산. 전각의 놓임과 흐름이 치악산 능선과 잘 어울려 위화감이 없다. 우리 옛건축의 특징인 듯 하다.]


내가 보내주고 말고 할 일은 아니나 이젠 겨울을 보내줘야겠다. 온 천지로 엄습해 오는 봄을 내가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순응하고 지켜볼 뿐.


그래도 이 다음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면 좋겠다. 하얗게 덮인 구룡사를 꼭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