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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스티아 Feb 11. 2024

명절이 즐거워졌다!

달라지고 있는 명절풍경

"이번 명절부터는 명절 지난 다음 주에 만나도록 하자"

어느 날 시어머니가 이렇게 선포하셨다.


왜???


사실 나도 결혼 10년 차가 넘어가면서 명절이 점점 더 부담되었다. 신혼 때는 몰라서 당연히 명절에 시댁에 가는 거라고 생각했고(우리 어머니세대들이 당연히 그랬기 때문에) 아이 낳고 나서는 아이 보느라 불편해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의무감에 갔다. 결혼 10년 되는 해에 남편이 그동안 수고했다면서 집 근처 절에 제사도 맡겨서 더 이상 차례 때문에 명절에 시댁에서 전 부치고 나물 무칠 일이 없어졌다.


결혼 10년 차가 넘어가니까 매번 똑같은 패턴의 명절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명절 때 준비해 가던 음식도 반으로 줄였다. 매번 같은 음식을 해가는 게 지겹기도 하고 명절 때 식당 문을 안 여니까 안 해갈 수도 없어서 종류를 줄여서 준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은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어머니도  명절 때마다 음식을 준비하는 게 부담되셨던 것 같다. 그냥 한 번씩 모일 때는 식당에서 밥 먹고 얘기 나누고 오는 게 다인데 이제 연세가 칠순이 넘어가면서 명절에 명절음식 준비해야 되는 부담이 크셨던 것 같다.

평소 친구가 많은 어머니는 명절에는 친구들과 보내고 명절 지난 다음 주에 가족들과 보내기로 어머니, 시누이가족, 우리 가족 이렇게 세 가족이 정하게 되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였다.


갑자기 4일이나 놀게 되어서 뭘 해야 되나 멍해졌다.

일단 예매해 두었던 기차표를 취소했다.

4일 동안 뭐 하지?

첫째 날은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가족들 모두 마음에 드는 설빔을 하나씩 마련했다. 설날에 이런 클리어런스세일을 크게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세일가격이 큰 만큼 사람들이 많아서 결제하는데 30분이나 줄 서야 했지만 처음 해보는 명절쇼핑이 마냥 즐거웠다. 그리고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저녁에는 디즈니, 넷플릭스에서 인기작품을 보았다.

둘째 날은 볼링장에 갔다가 교외에 예쁜 커피숍에 가서 맛있는 커피와 브런치를 먹으며 책을 읽었다.

셋째 날은 아이들이 가고 싶다는 광명동굴에 가서 관람하고 주변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저녁에는 집에 있는 블루투스 마이크 2개로 노래방느낌으로 함께 노래를 부른 후 아이들이 보고 싶은 넷플릭스 작품을 보았다.

이렇게 하고 싶은 걸 다했는데도 휴일이 하루 더 남았다.

마지막날에는 온 가족이 미용실 가서 머리를 새로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학기에 사야 할 물품을 사러 가고 저녁에는 보드게임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그동안 일 때문에 매일 바쁘게 살았는데 아무 신경도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매일 푹 자고 나니 만족한다고 하였다.

아이들은 아빠와 가고 싶었던 곳 하고싶었던 일을 실컷 해서 좋다고 한다.

나도... 너무 좋았다. 

매번 같은 음식을 준비하고 의무적으로 모여서 음식을 먹고 온 가족 밥 차리고 설거지하고를 반복하는 일의 며느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좋다.


4일을 온전히 휴가로 보내니 명절이 처음으로 좋다는 생각을 했다.

명절이 이렇게 즐거울 수 있구나!


요즘 다른 집들도 명절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더 이상 벌초 때 내려가지 않고 업체에 맡긴다. 제사를 절에 맡기거나 간단하게 산소에서 인사드리는 정도로 끝낸다. 어머니세대들이 연세가 많아지면서 음식 하기가 힘들어지시기 때문에 식당에서 한 끼 간단히 먹는 걸로 명절모임을 대신하는 집들도 늘었다.


 또래의 사람들에게 제사, 차례는 더 이상 꼭 지내야 하는 일들로 느껴지지 않는다. 명절에 며느리들이 음식 하느라 온종일 고생하는 풍경들도 줄어들고 있다. 아직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때문에 힘든 명절을 보내고 있다면 생각을 바꿔보자!


인생은 한 번뿐이다.

남은 인생을 며느리의 희생이라는 의무감에 명절만 되면 스트레스받고 우울해하며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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