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현악 4중주 D.703>은 <미완성 교향곡>처럼 온전히 완성되지 못한 작품이다. 그래서 <단악장 사중주>로 불리는데 그리 길지 않은 곡이지만 슈베르트 음악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음울한 기운과 낭만적인 선율이 공존해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브람스를 제외하곤 오늘 전반부 두 곡은 처음 접해보는 곡인데 뜻밖의 명곡을 알게 된 기쁨이 남다르다. 연주자들 역시 이를 의식하듯 친절하고 다정하게, 깊은 정성을 다해 음악을 전하는 듯했다. 슈베르트가 왜 완성하지 않았는지 여러 추측이 있지만 <미완성 교향곡>이 그렇듯, 이 작품 또한 단지 1악장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 곡이기에 우린 그 이유를 궁금해하기보다 오롯이 음악 속에 빠져들면 되리라. 오늘의 연주자들도, 하늘의 슈베르트도 그걸 바랄 것이다.
R. GliereㅣString Octet in D major Op.5
<라인홀트 글리에르 현악 8중주>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러시아 민속음악의 색채가 농축된 작품으로 황홀한 선율과 현악 8중주 특유의 깊고 두터운 앙상블, 그리고 폭발적인 파워가 융합되어 마치 현악오케스트라를 방불케 하는 숨 가쁜 흐름을 보여줬다. 오늘 이전까지 이 곡을 몰랐다는 사실이 원통할 정도로 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며, 젊은 연주자들의 날렵하고도 세련된 보잉은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을 묘사하기에 더없이 완벽했다. 악장별 분위기는 서정적이면서 감미롭다가도 다이내믹한 템포 변화가 이뤄져 러시아 음악만의 향취를 담뿍 담아내 가슴을 두드렸다. 격정적인 코다가 다 끝나기도 전에 청중들은 그들이 뿜어내는 강력한 열기를 참아내지 못하고 섣부른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그만큼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는 매력적인 작품이자 연주였고 새삼 글리에르의 걸작을 발견한 기쁨에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J. BrahmsㅣPiano Quartet in g minor Op.25
바이올린 김현미, 비올라 최은식, 첼로 김민지, 그리고 피아노 서형민이 연주한 <브람스 피아노 4중주>는 그야말로 농익은 중견 연주자들의 열정적 음악세계를 고스란히 보여준 최고의 순간이었다. 브람스 실내악이 지닌 두텁고 서정적인 앙상블로 청중들의 가슴을 강타하는 충격을 선사했으며, 동시에 우리를 브람스 음악의 광활한 바다 위에 내던져버리는 듯했다. 어느덧 마스터의 위치에 올라선 중년의 음악인들과 젊은 피, 서형민의 조합은 단지 신구의 조화를 넘어서 최고의 조합으로 다가왔던 짜릿하고 놀라운 순간을 연출했다. 브람스가 오랜 기간 몰두해 만든 작품이고 패기 넘치던 젊은 시절의 열정적이고 거침없는 자신만의 악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음악이기에 쇤베르크는 이 곡을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했을 것이다. 게다가 초연은 브람스 자신이 평생에 걸쳐 연모했던 클라라 슈만이 피아노를 맡았던 작품이기에 아마도 브람스에게는 가장 소중한 작품이 아닐까 싶다. 말러는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슬픔 속에서 비통함을 음악으로 쏟아냈지만 브람스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고통을 음악에 담아냈기에 강렬한 격정이 녹아 있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선율이지만 긴박하면서 강박적인, 그리고 폭발적인 감정의 파괴를 음악에 깊게 묘사했던 것이다. 빠르고 리드미컬하며 헝가리 민속음악적 색채가 가득한 4악장 '집시풍의 론도'는 그야말로 활털이 휘날리는 강렬한 보잉으로 공연장의 열기를 더했다. 이토록 가슴 아픈 브람스의 사랑처럼 코다는 치명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기며 종결됐다. 무덥고 습한 여름이 이들의 무차별적 화력에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격한 환호가 이어지고 더 이상 불태울 수 없을 만큼 재가 되어 산화한 연주자들은 그렇게 무대 뒤로 사라졌다. 오늘 이 순간, 후회 없이 쏟아낸 오늘 연주는 아마도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