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총 세 번의 '베토벤 교향곡 사이클'을 남겼다. 저마다의 의견은 분분하나 난 1960년대 녹음을 가장 훌륭한 결과물로 꼽는다. 특히 "교향곡 3번"과 "교향곡 9번"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명연이다. 오늘날 베토벤 교향곡은 셀 수 없는 수많은 음원들이 존재하지만 모두가 사랑받는 것은 아니며 누구나 인정하는 연주는 극소수의 음반들로 축약된다.
카라얀은 논할 때 거론되는 여러 논란들은 차치하더라도 음악 그 자체만 본다면 그가 세계 음악계에 미친 압도적인 영향력과 업적은 형언하기 어렵다. 특히 카라얀이 "베토벤 연주사"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가장 방대할 것이다. 모든 역사기록은 후대의 해석에 의해 다양하게 재평가된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요소는 여러 시각에 의해 다르게 기록된다. 이것이 '해석'의 본질이다.
핵심은,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9번>은 누구라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중심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이 연주가 지니는 기본적 앙상블의 토대가 강력하다는 반증이며, 몰입과 감동의 스케일이 압도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음악의 세계는 정답이나 옳고 그름이란 없지만 기본과 기준은 분명 존재한다. 나는 감히 카라얀을 가장 빛나는 기준 위에 놓고 싶다. 군둘라 야노비츠와 발터 베리를 비롯한 걸출한 성악진의 깊은 완성도, 빈 징베라인의 압도적인 합창, 그리고 베를린필하모닉의 철벽 사운드는 모두 이에 부합하는 완벽한 요소일 것이다.
4악장 피날레의 고양감은 베토벤의 모든 음악예술의 최정점에 이르는 통로이다. 카라얀은 결코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새 기준점을 세우려는 욕심보다 온전히 그 자리에 오르며 스스로 기준이 된다. 지극히 독일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세계적이다. 카라얀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지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