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1번>은 2010년 11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실황을 담은 음원이자 두 번째 DG 발매 음반이다. 그 당시 현장에서 실황공연을 지켜봤던 나로서는 이 음원의 존재가 더없이 소중하면서 감사하다. 그날의 기록이 전 세계에 전해진다는 사실은 말러리안으로서 뿌듯한 자긍심이자 자랑이 아닐 수 없다.
1악장 도입부 '자연으로부터의 울림'은 이들이 전개하는 '거인 교향곡'을 한껏 기대하게 한다. 연주가 진행되며 몸풀기를 끝낸 단원들은 가속 페달을 밟으며 머뭇거림 없이 강력하고 시원한 질주를 펼쳐낸다. 발전부 목관이 묘사하는 새소리는 현악군의 능동적 움직임과 더불어 작품 전체 구조를 탄탄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팡파르가 울부짖는 금관의 극적 효과는 감상자의 가슴속에 급가속 크레셴도를 가한다. 때로는 현악군이 금관을 압도하는 느낌마저 드는데 그들의 파워가 놀랍도록 강력하기 때문이다.
2악장의 도입부 역시 전혀 밀리지 않는 현악군의 선전이 빛을 발한다. 말러가 필히 요구했던 빠르고 거칠게 돌진하는 악상을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은 고혹적 질감과 세련된 음향을 구사하며 특히 첼로의 강렬한 보잉은 오케스트라 전체의 힘의 원천이다. 그러나 '다 카포'(Da capo: 처음으로 돌아가 'fine', '페르마타'에서 끝내라는 악상기호)로 마무리되는 코다는 보다 강력하고 깔끔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3악장, '칼로(Callot) 풍의 장송 행진곡'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는 부분으로 말러의 작품들이 그렇듯이 느린 완서 악장 특유의 낭만적 아름다움과 판타지를 동시에 품어낸 악장이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의 고유한 음악 감수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단순히 테크닉보다는 얼마나 감각적으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연주력의 성패가 결정되며 전체 완성도를 판단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된다. 정명훈의 특성상 다소 느린 전개가 예상되기도 했지만 의외로 일반적 템포를 유지하며 시종일관 여유로운 흐름과 섬세한 표현력을 잃지 않는다. 말러는 동요를 장송행진곡풍으로 인용해 극적인 대반전을 노린다. 감상자는 3악장이 동요의 패러디라는 사실을 대부분 인지하지 못하지만 이 곡 초연 당시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2부에서 전조 후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중 네 번째 곡 '내 연인의 푸른 눈동자'가 차용되는 순간은 감탄사가 터질 정도로 탁월하다. 첫 주제부가 재현되며 느리게 내딛는 발걸음은 듣는 이에게 깊은 안도감을 선사한다. 극히 시원하게 뻗는 트럼펫의 옹골찬 소릿결은 깊고 강한 여운을 남긴다.
고요한 탐탐의 울림에 사라지는 3악장 후, 지체 없이 이어지는 날카로운 불협화음과 굉음의 4악장 도입부는 지금껏 들어왔던 모든 동곡 음반들보다 드라마틱하고 그로테스크하다. 가공할 파워를 겸비한 현악 앙상블이 자연스레 밀고 당기며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신속, 절묘하게 교차되면서 자신감 넘치는 이들의 응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임을 알린다. 1악장 '목관의 새소리'가 다시 등장하고 재현부인 '마지막 승리의 찬가'는 모든 관악군 파트의 'Bell up' 모션이 연상될 정도로 대담하고 강렬한 힘을 뿜어낸다. 승리를 확신하는 거침이 없는 질주는 피날레를 향해 가며 응축된 열기를 쏟아낸다. 거대한 총주가 폭발적인 코다를 이루면 흥분이 터져 나오는 관객의 뜨거운 함성이 진한 쾌감을 선사한다. 실로 막강한 피날레가 아닐 수 없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이 연주는 단 하루의 기록이라 하기엔 각 악장의 연주 편차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악단의 전 기량을 마지막 순간까지 남김없이 쏟아내야 하는 작품의 특성상 단원 모두가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강인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교향곡인만큼 녹음을 병행하는 작업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혼연일체를 이뤄 빛나는 결과를 거두었다. 물론 연주력이나 녹음의 일부 기술적 측면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보이지만, 말러를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의 길을 걷는다는 정명훈의 예술 철학과 진정성이 담긴 첫 번째 그림이 이 연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젠 당신이 그 진가를 확인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