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시벨리우스 최대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야말로 세기의 명작이다. 1903/04년도 오리지널 판본과 1905년도 최종 판본의 러닝 타임을 비교해 보면 분명 많은 부분에 수정을 가했음을 알 수 있다. 오리지널 버전은 현재 연주되는 형태의 골격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지만 완전히 이질적인 구성과 리듬, 지극히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놀라운 전조 변형을 지니고 있어 온전히 다른 작품처럼 들리는 부분도 꽤 있다. 이음새나 선율미의 인과성은 다소 빈약하지만 매력적인 장점이 너무 많아 이 자체로 대단히 훌륭한 작품성을 지닌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1악장, 두 번의 카덴차가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혹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최종 버전의 카덴차와 완벽히 다른 구성을 지닌다. 2악장 '아다지오'는 현재의 형태와 대동소이하나 작품에 내재된 감성을 깊은 한(恨)과 울분으로 승화시켜 애절하게 담아낸다. 그러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슴 시린 바이올린 독주 파트와 초절기교적 테크닉은 최종적으로 소거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3악장 역시 생소하지만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하다. 비단 카바코스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파트 역시 대단히 이질적 선율이 등장한다. 시벨리우스는 바로 1년 뒤 최종 버전으로 개정하면서 웬만한 잔선율은 모조리 삭제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음새가 보다 자연스러워지고 구성적으로 훨씬 단단해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매우 아름다운 선율 라인과 놀라운 카덴차의 풍미, 그리고 인상적인 전조의 변형들이 사라진 것은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래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사랑한다면 누구나 반드시 오리지널 판본까지 들어보길 강권한다. 아마도 당신은 두 개의 판본을 통해 이전 보다 더 위대한 시벨리우스 예술성의 진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의 바이올린은 매우 정결하고 무색투명한 소릿결을 지녀 시벨리우스 작품에 최적화된 보잉을 선사한다. 오히려 최종 버전에서는 오리지널과는 달리 긴장감이 무뎌진 느낌이 있지만 자신감 넘치는 연주력을 흔들림 없이 보여준다. 지휘자 오스모 밴스캐와 라티심포니의 앙상블은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최대치의 조합이다.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음원은 핀란드의 민족성이 투영된 그들의 정신세계를 오롯이 감지할 수 있는 최정점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