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녀가 샤를르 뒤트와 지휘, 몬트리올 심포니가 연주한 음원과 더불어 가장 모범적 답안을 보여주는 연주이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사운드는 뒤트와 쪽이 한결 낫지만 진중한 카리스마와 정열적인 쾌감, 그리고 뜨거운 열기는 단연 프레빈이 앞선다. 그러나 이 두 연주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든 명연으로 선택은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이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격렬하고 거친 숨을 내뿜는 진한 쾌감을 지닌 연주이다. 강렬한 질감은 앞선 차이콥스키와 더불어 동곡 음원의 기준점이 되는 연주이다.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던 젊은 시절 정경화의 뜨겁고 무르익은 기량을 고려할 때 여러 지휘자와 재녹음이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크다. 그녀의 음색이나 연주 성향으론 가장 이상적 작품이다. 앙드레 프레빈은 (서로가 부부였던 시절에) 안네 소피 무터와 동곡을 녹음했지만 내 기준에 그 음원은 철저히 실패한 연주였기에 이 음원의 가치는 남다르다. 당시 프레빈의 감각과 역량도 상당히 대단했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경화와 런던심포니의 음색은 정결하기보다 오히려 두텁고 따스해 호불호의 여지는 존재한다. 당시 정경화의 보잉은 날카롭고 청량하나 소릿결의 온도가 제법 높다는 것이 시벨리우스의 작품 성향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역시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지만 정경화의 연주엔 그 어떤 불만도 있을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