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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프게니 므라빈스키ㅣ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by Karajan

#오늘의선곡


D. Shostakovich

Symphony No.5 Op.47


Evgeni Mravinsky

Leningrad Philharmonic Orchestra


1973 Tokyo Live Recording


#EvgeniMravinsky #Shostakovich

#LeningradPhilharmonicOrchestra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필은 쇼스타코비치의 모든 정신과 예술,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 음반을 구하지 못해 갖은 애를 태우던 시절이 있었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1973년 도쿄 실황을 담은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필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은 전설적인 연주로 입소문이 자자했으니 그럴 만했다. 무엇보다 쇼스타코비치 연주사에 있어서 작곡가와 동시대를 살며 나치 침공에 맞서 혹독하고 잔인했던 '레닌그라드 전투'의 처절하고 비참한 역사를 함께 겪으며 단원들 모두가 아사 직전에 이르는 현실에서 "레닌그라드 교향곡"의 레닌그라드 첫 공연을 이뤄낸 역사적 정통성을 지닌 조합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서두가 길었다. 단언컨대,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이 두 조합은 쇼스타코비치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연주로 돌아와서, 1악장 도입은 뭔가 아쉽다. 그리 열의가 없어 보이는 느낌인데 아마도 단원들 입장에선 '아, 우리가 또 이걸 연주해야 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섣부른 기우이다. 예열을 거치고 나면 바로 그들만의 본색이 드러난다. 속전속결의 파괴적 정신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므라빈스키는 모든 것을 철저히 짓밟고 나가는 집요한 해석의 묘미가 있다. 현악도 관악도 매 순간 그냥 흘러가지 않는다. 한겨울, 황량한 벌판의 성난 눈보라를 뚫고 전진하는 소비에트 군대의 맹렬한 돌격을 연상케 한다. 그들이 들려주는 스산하고 거친 사운드는 레닌그라드의 살인적 혹한을 고스란히 묘사한 듯하다. 게다가 3악장은 온몸이 움츠러들 듯이 차갑고 날카롭다. 그러나 다른 면에선 따스함도 지닌다. 마지막 4악장 피날레는 그들 본연의 야성적인 공격성이 노골적으로 형상화된다. 현 주자의 뜨거운 보잉은 그들의 어깨가 걱정스러울 만큼 초절기교적 스피드로 내달리는데 그들의 빡빡한 템포와 흐름에 혼절하듯 말려든다. '인민이여, 이제부터 걱정은 집어치우고 나를 따르라!' 그들은 이렇게 외친다. 시작부터 피날레까지 철저히 소비에트 방식의 연주이다. 도대체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옛 소비에트 시절 오케스트라는 서유럽의 악단과는 완전히 다른 기능적인 질감을 갖고 있어 그들 서로는 결코 공유될 수 없는 상호 이질적인 존재로 보는 게 맞다. 그래서 '레닌그라드필'과 '상트페테르부르크필'은 서로 같으면서 다르다. 최후의 코다는 이전보다 템포를 늦추면서도 대단히 파괴적, 극적인 긴장감을 더한다.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와 갈채는 그날의 광적인 열기가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M. T. 앤더슨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을 읽은 이라면 왜 이들이 이토록 처절한 연주를 할 수밖에 없는지 단박에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예프게니 므라빈스키와 레닌그라드필은 쇼스타코비치의 모든 정신과 예술, 그 자체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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