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WagnerㅣThe Ring: An Orchestral Adventure (1991, arr. Henk de Vlieger)
•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 발퀴레 (Die Walküre)
• 지그프리트 (Siegfried)
•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
#공연리뷰 #서울시향 #MarkusStenz #박재홍 #SPO
S. RachmaninovㅣPiano Concerto No.2 Op.18
라흐마니노프는 클라리넷 위에 지극히 감미롭고 달콤한 선율미를 담아내는 탁월한 재능이 있는데 그의 "교향곡 2번"의 3악장과 더불어 "피아노 협주곡 2번"의 2악장이 대표적 예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완서 악장'은 클라리넷 협주곡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큰 비중을 갖고 있고 그만큼 여운도 깊고 강렬하다. 그래서 더욱 만인의 사랑을 받는 불후의 명곡으로 여겨지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 협연을 맡은 피아니스트 박재홍은 기교적이라거나 과장된 표현보다 기본에 충실한 정석적인 해석을 진중한 타건으로 펼쳐냈다. 안정적인 선택이긴 했으나 총주에서 과감한 힘을 구사하지 못해 소리가 오케스트라에 묻히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으며 인상적인 그만의 피아니즘을 과시하기엔 볼륨감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2악장은 그의 낭만적 정서가 빛을 발하긴 했지만 1악장, 3악장의 강력한 패시지에서는 그만의 존재감에 아쉬움을 남겼다. 물론 그의 연주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준수했고 분명 신뢰할 만한 해석을 선보였던 점은 모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탁월한 기량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젊은 피아니스트의 올곧은 연주력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크다. 그래서 앞으로 박재홍이 보여줄 음악 세계는 우리 모두의 기대를 충족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G. FaureㅣRomance sans paroles Op.17 No.3
박재홍이 앙코르로 들려준 <포레 무언가 3번>은 그만의 예술적인 아우라를 충실하게 들려준 빛나는 수연이었다. 어쩌면 오늘의 피아니스트 박재홍의 존재감을 확고하게 심어준 순간으로 이 연주가 그대로 음원으로 남겨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마저 들었다. 가슴 시린 여운을 남겼던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R. WagnerㅣThe Ring: An Orchestral Adventure (1991, arr. Henk de Vlieger)
<리하르트 바그너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는 "성악진"이 기용된 인류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교항시"이다.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인데 그만큼 "관현악"에 중심 축을 둔 오페라는 흔치 않다. <쇼스타코비치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정도가 이에 언급될 수 있는 작품일테지만 당연하게도 두 작품은 서로 결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굽이치는 라인강 물결을 묘사한 <라인의 황금> 서주부는 다양한 타악기의 쇳소리가 이어지면서 니벨룽 노예들의 노동을 묘사한다. <헨크 더블리허르 "반지" 관현악 모험> 편곡은 <로린 마젤 "무언의 반지": '니벨룽의 반지' 관현악 버전>과 유사한 흐름을 보이면서도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큰 줄기는 흡사하지만 <바그너 오페라 "링">을 바라보는 시각이 기본적으로 <신들의 황혼>을 중심으로 두고 <발퀴레>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들 편곡판 모두 '바그너 거대 오페라'를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명쾌하게 훑어준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퀴레>의 힘찬 도입부가 시작되면서 힘을 빼고 몸 사렸던 오케스트라가 뜨겁게 포효한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연상될 수밖에 없는 주제부 선율은 '신들린 테크닉'을 선보인 금관 객원 수석 주자들의 대활약으로 묵직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혼 수석은 무대를 빠져나가 파이프 오르간 바로 옆 공간에서 극악의 초고난도 솔로 파트를 차분하고 완벽히 소화 해냈다. 콘서트홀 안 모든 관객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고 그 긴장감 넘치던 순간은 모두의 가슴에 강력히 박혀왔다.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는 저돌적인 전투력과 구조적인 디테일을 적절하게 구사하며 작품 속에 내재된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오롯이 뽑아내는 쾌감을 선사했다. <지그프리트> 선율 위에서 <신들의 황혼> 주제부 선율이 절묘하게 오버랩 된다. <신들의 황혼> 모든 성부 선율은 음악적인 오르가즘을 일으키는 관능미와 짜릿한 전율을 담고 있다. 이것은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에서도 느낄 수 없는 벅찬 환희감이다. 현악군과 목관, 금관군이쏟아내는 '뜨겁고 통렬한 포효'는 도무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신들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오늘 연주는 슈텐츠와 서울시향이 지금까지 보여준 퍼포먼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으리라 감히 단언해본다.
이토록 훌륭한 연주에 안타까운 상황도 있었다. <바그너 "링">이 끝나갈 무렵, 코다로 향하는 순간에 터진 휴대폰 벨소리 테러는 오늘의 감동을 일거에 무너뜨린 악마적인 폭격이었고 지휘자의 손이 마지막 여운을 위해 멈춰있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터져버린 일부 관객의 몰상식한 박수 테러는 확인 사살이나 다름 없는 극한 분노를 일으켰다. 감동적인 연주를 관객들의 무개념으로 완벽하게 망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브라보'와 '앵콜'을 남발하는 새로운 빌런이 등장했다. 어찌 하여 '브라보도 아닌 앵콜 요청'을 그리도 외쳐댄다는 말인가. 한 두 번 하고 나면 그쳤어야 했다. 앞서 1부에서 그랬다면 2부에선 그 방정맞은 입을 다물었어야만 했다. 공연 현장에서 기본과 상식, 그리고 예의가 점점 무너져 간다. 갈수록 객석 매너 수준이 점점 나빠지는 느낌이 드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관객 스스로가 예술적인 가치를 오롯이 향유하고 감동을 쟁취하려면 권리를 주장하기 앞서 기본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회적 질서와 체계를 존중하고 상식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예술가들이 땀 흘려 선사하는 예술 세계를 누릴 자격이 없는 악랄하고 비열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