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폴 루이스 & 다비트 라일란트-국립심포니ㅣ베토벤 & 라벨
7.5(토) / 17: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노/ 폴 루이스 (Paul Lewis)
지휘/ 다비트 라일란트
연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L. v. BeethovenㅣPiano Concerto No.5 Op.73
< Encore >
F. SchubertㅣAllegretto D.915
M. RavelㅣDaphnis et Chloé
M. RavelㅣLa Valse
< Encore >
M. RavelㅣMother Goose Suite / III
#폴루이스 #PaulLewis #다비트라일란트 #국립심포니
#Beethoven #Ravel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폴 루이스, 그가 연주하는 내내 난 오롯이 행복했다. 이토록 행복에 겨운 연주회가 얼마만이던가. 폴 루이스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실연으로 목격한 공연 중 단연코 최고였다. 영롱한 울림 속에 자연스럽고 명징한 타건, 달콤한 트릴, 한없이 아름다웠던 격정과 유려한 손짓까지, 내가 폴 루이스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든 요소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가슴 찡했던 감동은 이루 형언할 길이 없다.
1악장 도입부터 심장을 울리는 포르테는 실로 오랜만에 듣는 신선한 만족감이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를 꿰뚫고 터지는 폴 루이스의 강렬한 다이내믹은 순간 내 가슴 한복판에 폭발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폴 루이스 특유의 해맑고 부드러운 소릿결이 강렬한 파워를 달고 콘서트홀 전체를 울리는 충격은 마치 천상에 온 듯한 쾌감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라고 칭하는 2악장은 오케스트라 도입부터 오늘따라 신들린 듯한 지휘를 선보였던 다비트 라일란트의 손끝에서 황홀한 천국을 그려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폴 루이스의 달콤하면서 에로틱한 타건이 시작되자 그야말로 천상 위에 승천하는 순간이었다. 저절로 얼굴 만면에 미소가 지어지는 황홀경의 강림이었다.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연주를 실연으로 목격할 수 있단 말인가. 2악장 내내, 바로 5일 뒤 폴 루이스가 부산콘서트홀에서 홍석원 지휘의 부산시향과 연주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아마도 폴 루이스, 그 자체일 거란 생각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날에 대한 기대감은 오늘의 연주를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3악장은 고혹적인 관능미의 향연이었다. 그의 "베토벤 황제"는 단아하면서도 강렬했다. 실연은 물론이고, 그 어떤 음반에서도 (심지어는 그의 음원조차도) 느껴보지 못한 생동감과 섬세한 명징함이었다. 폴 루이스뿐만 아니라 오늘 라일란트와 국심의 단단하고 깔끔한 타격감은 이보다 더 훌륭한 연주가 없을 것만 같은 하모니를 이뤄내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공간에 존재함이 한없이 기쁘고 감격스럽게 했다. 닷새 후 그를 다시 만날 부산 공연이 이토록 두근거리며 다가오게 될 줄 진정 몰랐다. 그가 너무 좋아 어렵게 예매한 부산콘서트홀 공연은 어쩌면 오늘 이 순간보다 격한 감동의 하모니가 될 것 같아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가 수차례의 커튼콜 끝에 앙코르로 들려준 곡은 <슈베르트 알레그레토 D.915>였다. 인터미션 때 알게 됐지만 지난달에 작고한 거장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을 추모하는 의미의 선곡이었는데, 그의 슈베르트는 감격스러운 선물이었고, 이후 선곡 의미를 알고 나니 숙연해지는 마음으로 연주를 더욱 깊이 음미할 수 있었다. 모든 이가 알다시피 알프레드 브렌델은 폴 루이스의 스승이자 멘토였던 대 연주자이다.
라벨 다프니스와 클로에 2번 & 라 발스
오늘 후반부 라벨은 국립심포니 음악감독, 다비트 라일란트를 완전히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오케스트라가 '프랑스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특히 라벨과 드뷔시는 한국인의 감성으로 오롯이 표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겠는데 오늘 벨기에 출신의 지휘자 라일란트의 해석은 본토의 스타일에 충실한 최상급의 연주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특히 플루트와 오보에를 비롯한 목관군의 감각적인 활약은 그야말로 절대적인 성공요소였다. 거의 매일 들었던 프랑스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 음반에선 왜 그리 감흥이 없었던 것일까 했는데 오늘 라일란트의 지휘는 관객들 전체를 파리 시내 한복판, 세느강변으로 안내하는 듯했다. 지휘봉 없이 지휘했던 그의 손끝은 감각적인 '템포 루바토의 대향연'이었다. 도무지 시선을 뗄 수 없는 지휘자의 손가락은 해방감에 도취된 진정한 자유의 몸짓이었다.
앙코르로 연주했던 <라벨 어미 거위 모음곡 중 "도자기 인형의 여왕">은 한층 더 진화된 프랑스 스타일의 결정판이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오케스트라를 하늘 위로 날아오르게 하는 것은 지휘자의 역량이 거의 절대적이다. 그래서인지 이제 곧 임기를 마치는 다비트 라일란트에 대한 아쉬움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먼 길을 다녀온 여정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온 이 순간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폴 루이스를 다시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탓이다. 그의 영롱한 타건을 부산콘서트홀에서 마주할 그날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련다.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