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홍석원-부산시향ㅣ정기연주회 "소리, 승천"
9.13(토) / 17:00
부산콘서트홀
피아노/ 벤 킴 (Ben Kim)
지휘/ 홍석원 (Seokwon Hong)
연주/ 부산시립교향악단
작곡/ 박영희 (Younghi Pagh-Paan)
박영희ㅣ소리
Younghi Pagh-PaanㅣSori (1979 - 1980)
박영희ㅣ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Younghi Pagh-PaanㅣFrau, warum weinst, Du? Wen suchst Du? (2023)
M. 라벨ㅣ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Maurice RavelㅣPiano Concerto for Left Hand (1929 - 1930)
O. 메시앙ㅣ승천, 네 개의 교향적 명상곡
Olivier MessiaenㅣL'Ascension ; 4 méditations symphoniques (1932 - 1933)
J. 시벨리우스ㅣ교향곡 7번 Op.105
Jean SibeliusㅣSymphony No.7 Op.10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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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ㅣ소리
<박영희 소리>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세 가지 뚜렷한 음악적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울분'과 '농악', 그리고 (상여 행렬에서 연주되는) '향두가'이다. 이 모든 요소들은 대단히 다채롭고 복잡다단하게 이어지는데 수많은 타악기가 동원되며 거대한 마찰을 이루어 소음과 소리로서 융합되고 충돌하면서 하나의 음악적 흐름이 형성되는 작품이다. 이 모든 요소는 타악기의 대향연으로 표출된다. 청주 출신, 재독 작곡가 박영희의 작품 <소리>는 거대한 타악군의 대폭발과 초반, 탐탐의 귀를 찢는 듯한 파괴력, 그리고 온갖 불협화음으로 점철된 곡으로, 소음 속에서 진정한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 현대 음악이 갖는 난해함 속에서도 도저히 집중하지 않을 수 없는 이토록 기묘한 끌림은, 작품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떠나 소리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런 작품을 실연으로 만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이다.
박영희ㅣ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앞서 연주된 곡 <소리>에 비하면 러닝 타임은 짧지만 세련된 흐름과 음향감을 지닌 작품이다. 타악기보다는 현과 금관에 화력이 집중된 흐름을 보이는데 이 곡 역시 난해함을 넘어서 청중을 강력하게 압도하는 힘을 지녔다.
박영희의 두 작품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는 악보를 가슴에 꼭 끌어안으며 깊은 애정을 과시했다. 객석의 관객들은 이 낯선 작품에 대해 최선을 다해 호연을 보여준 지휘자와 부산시향 단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M. 라벨ㅣ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벤 킴은 다이내믹과 강인한 파워를 겸비한 연주가였다. 단지
왼손으로만 연주해야 하는 한계를 완벽히 뛰어넘어 초절정의 테크닉과 거칠게 휘몰아치는 열정으로 최상의 호연을 이뤄내 모든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실연으로 만나기 쉽지 않은 곡인만큼 오늘 연주회 선곡 작품 중 어쩌면 가장 소중한 곡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벤 킴은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힘과 기량으로 이 곡을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 주었다. 홍석원과 부산시향의 서포트는 그동안 그가 임윤찬이나 폴 루이스와 협연에서도 보여줬었던 감각적이면서도 안정감이 넘치는 앙상블로 화답했다. 특히 피날레에서 보여준 장쾌한 총주는 가슴이 뚫리는 화끈한 저돌적 공격력으로 시원스러운 엑스터시를 선사해 객석의 폭발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유럽 공연을 앞두고 칼을 갈았다는 느낌과, 상당한 연습량이 느껴지는 연주였고 홍석원과 부산시향의 조합으로 이뤄지는 오늘의 결과는 이미 탈 코리아급, 아니 탈 아시아급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자부한다
O. 메시앙ㅣ승천, 네 개의 교향적 명상곡
I. 성부께 영광을 청하는 그리스도의 광휘
II. 천국을 염원하는 영혼의 조용한 알렐루야
III. 트럼펫으로 울리는 알렐루야, 심벌즈로 울리는 알렐루야
IV. 성부께 승천하는 그리스도의 기도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상케 만드는 작품구조를 지닌 곡으로 극도로 세밀하게 다듬어낸 현악군의 가슴을 저미는 소릿결은 (뛰어난 오르간 주자였던 메시앙의 음악답게 오르간 음향을 묘사한 듯한) 시린 음색과 칼날이 파도치는 듯한 일사불란한 보잉, 금관과 목관군의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대활약은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가슴을 날카롭고 잔인하게 후벼 팠다. 이 광경을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황홀경이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고 그야말로 은하수처럼,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리는 소리의 파도를 직접 마주하는 과정은 메시앙의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이들이 이 곡 해석에 얼마나 큰 공을 들였는지 오롯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J. 시벨리우스ㅣ교향곡 7번
오늘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은 그야말로 부산시향의 모든 연주회 중 '역대급 사건'이었다. 이 곡은 오랜 세월 축적된 시벨리우스 예술성을 집대성한, 깊고 농밀한 음향 구조를 통해 최상의 감동으로 끌어올린 '단악장 교향시이자 환상곡'이며, 20세기 최고의 걸작이라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겠다. (시벨리우스도 처음엔 '교향적 환상곡'이라 불렀다가 철회했다) 이는 작곡가 자신도 작품 성격에 고심이 많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와 별개로 오늘 공연에서 들려준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은 지독하리만치 빛나는 이상향을 보여줬다고 자부한다. 부산콘서트홀의 음향적 장점들을 십분 활용한 명석한 해석과 부산시향 앙상블의 강력한 상승효과가 어우러져 핀란드의 대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초절정의 연주였다.
홍석원 지휘자만큼 시벨리우스를 이리 완벽히 구현해 낼 수 있는 지휘자는 적어도 국내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다. 올해 9월부터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돼 '부산시향 음악감독'에서 '수석객원지휘자'로 자리를 옮겼지만 부산시향과의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볼 수 있겠고, 그의 능력을 통해 부산시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성장을 이루었기에 오래도록 그들 관계가 유지되기를 나 역시 간절히 소망한다. 홍석원의 지휘봉 아래 이토록 완벽한 변신을 이뤄낸 부산시향의 앙상블은 새삼스레 놀랍기 그지없다. 공연 내내 표정 변화도 거의 없는 단원들이 표현해 내는 연주력은 대단히 어메이징 한 수준이어서 대비가 이채롭다. 오늘 연주는 작품의 구성부터 놀랍도록 완벽했던 연주력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공연 역사상 손꼽히는 역대급 기록으로 남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전한다.
9.13
※ 알림 ※
이 리뷰에서 작품 설명 중 일부 내용은 본 연주회의 공연 책자 내용 중 '이준형 음악 칼럼니스트'의 글을 인용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