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영 & 이병욱-광주시향ㅣ브루흐 & 시벨리우스

by Karajan

#공연리뷰


윤소영 & 이병욱-광주시향ㅣThe Echo of Peace


9.12(금) / 19:30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


바이올린/ 윤소영 (Soyoung Yoon)


지휘/ 이병욱 (Christopher Lee)

연주/ 광주시립교향악단


M. 브루흐ㅣ스코틀랜드 환상곡 Op.46

M. BruchㅣScottish Fantasy Op.46


<Encore>

H. 비에냡스키ㅣ카프리치오 Op.10 No.7 "라 카덴차"

H. WieniavskiㅣCaprice Op.10 No.7 "La Cadenza"


J. 시벨리우스ㅣ교향곡 1번 Op.39

J. SibeliusㅣSymphony No.1 Op.39


<Encore>

G. 로시니ㅣ"윌리엄 텔" 서곡 '피날레'

G. Rossiniㅣ"William Tell" Overture 'Finale'


#윤소영 #이병욱 #광주시립교향악단

#Bruch #Sibelius


M. BruchㅣScottish Fantasy Op.46


윤소영의 바이올린은 한없이 세련되고 고혹적이며 섬세했다. 빠른 패시지는 물론이고 아련하고 목가적인 선율에서 들려준 가슴 떨리는 전율의 보잉은 과연 바이올린의 여신, 윤소영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진정한 환희의 순간이었다.


기대나 예상과는 달리 전반적으로 대단히 느린 흐름이었는데 이런 점은 극단의 장단점으로 나타났다.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느리고 낭만적인 악장과 황홀하게 '대비'를 이루는 빠르고 테크니컬 한 악장이 주는 묘미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오늘 이들이 보여준 접근법은 시종일관 여유로우면서 느린 해석으로 일관했는데 그래서 더욱 확연히 들렸던 독주 바이올린의 섬세한 패시지들과 다이내믹한 도약부의 충격이 도드라지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짜릿한 장쾌함을 주는 전반부(2악장)와 후반부(4악장)가 지닌 고유 스피드가 떨어져 가슴 벅찬 엑스터시를 느끼기엔 다소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단점들을 완벽히 커버한 것은 윤소영, 바로 그녀였다. 윤소영의 벨벳풍 사운드와 명징한 음색, 가슴 시린 고음에 더해 단 한 음도 놓치지 않는 지독한 정확성은 윤소영, 그녀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온전히 호흡하는 격한 전율'을 선사했다. 그녀가 평소 장기로 연주하는 피아졸라나 현대의 난해하고 기능적인 작품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심플한 작품 선택이었지만 바로 오늘 이 순간, 거장 정경화 이후,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의 또 다른 이상향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벅찬 환희와 감동으로 승화된 시간이었다.


객석의 커튼콜이 오래도록 이어지자 윤소영은 <비에냡스키 카프리치오 Op.10 No.7 '라 카덴차'>를 앙코르로 들려줬다. 화려한 기교는 물론이고 보잉의 시원스러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소릿결로 이 모든 관객들을 오롯이 그녀만의 세계로 몰아넣는 황홀경의 순간이었다. 과연 윤소영의 진가는 역시 나의 강력한 믿음, 그 자체였다고 자부한다.


J. SibeliusㅣSymphony No.1 Op.39


이병욱이 지휘하는 광주시향 본연의 모습은 시벨리우스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 특유의 홀사운드는 극악의 건조함에 더해 소리가 응집되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는 단점을 지녀 음향적 다이내믹과 볼륨감이 오롯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으로 고군분투하는 광주시향의 노력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들의 연주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이 지니고 있는 목가적인 평화로움을 최선의 모습으로 그려내려 심혈을 기울였으나 이병욱의 지휘는 그런 유려하고 유장한 시벨리우스 특유의 흐름들을 자주 끊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물론 그의 노련함이 돋보였던 드라마틱한 현악군의 향연은 단연 최고였다. 핀란드의 광활한 대평원을 연상하게 하는 고음 현의 아름다운 숨결은 윤소영이 안겨준 전율과는 또 다른 의미의 장쾌한 충격이었다.


오늘 광주에서 개최된 세계양궁선수권대회를 겸해 앙코르로 적격인 <로시니 "윌리엄 텔" 서곡 중 '피날레'>를 준비했다는 이병욱 지휘자의 멘트가 이어지고, 마지막 순간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오늘 연주회는 마무리되었다. ('윌리엄 텔'은 영어식 표기이고, '빌헬름 텔'은 독일어식 표기이므로 프랑스 원어인, '귀욤 텔-Guillaume Tell'이라 쓰는 게 옳다)


오늘의 공연이 아쉬움 속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연주회 주제명인 <The Echo of Peace>의 방향성에 완벽히 부합하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들이었다는 점, 거기에 더해 대체불가인 윤소영의 존재감까지 더해져 취향적 만족감도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공연장을 나서며 유스퀘어 터미널까지 걸어오는 내내 깊숙이 내 마음속에 각인된 '윤소영의 브루흐'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굳이 광주까지 가야 하나 수없이 망설였던 시간들, 그럼에도 빗속을 뚫고 달려온 수고로운 걸음이 그녀의 압도적 연주로 완벽히 보상받았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일말의 후회도 남을 수 없는 윤소영의 소릿결을 직접 목격한 오늘 이 순간이 나를 더없이 행복하게 만드는 초가을 밤이다.


나는 이제 부산으로 향해 홍석원과 부산시향을 만나러 간다. 광주의 진한 감동을 부산에서도 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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