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v. BeethovenㅣViolin Sonata No.9 Op.47 'Kreutzer'
< Encore >
L. v. 베토벤ㅣ바이올린 소나타 6번 '2악장'
L. v. BeethovenㅣViolin Sonata No.6 / 2nd m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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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난 통영국제음악당에서의 공연 관람은 오늘이 처음이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올해 21주년을 맞이했으며 2014년,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이후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제야 이 곳에 정식 입성했다. 2년 쯤 전에 여기에 들러 잠시 둘러보긴 했지만 당시엔 휴관이라 아쉬움을 달래며 떠나야만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오늘은 역사적으로 기록되어질 날이다. 그리 완벽한 컨디션으로 공연을 즐기진 못했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바로 이 공간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사운드의 밸런싱(균형)과 블랜딩(융합)은 그 것 자체로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 공연장의 홀사운드에 찬사를 보내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내게 오롯이 다가왔던 이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J. BrahmsㅣViolin Sonata No.2 Op.100
첫 곡인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은 카바코스만의 색채감이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행군을 보내고 있는 그의 컨디션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은 탓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힘을 많이 뺀 나긋나긋한 보잉은 조금은 맥이 빠진 듯한 인상을 주었고 후반에 집중된 에너지를 미리 비축하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김선욱의 피아노가 음악당 공간을 압도하고 있었고 더욱 도드라진 파워로 연주를 장악했다. 이는 김선욱이 밸런싱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흐름을 주도하며 연주를 이끌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도입부 이후 조금씩 기본 역량이 올라오긴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연주였다. 브람스가 결코 힘을 빼고 연주할 작품이 아니기에 내가 바라본 그들의 모습은 무기력과 이성의 선상을 위태롭게 오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두 대가의 연주는 무너지는 순간 없이 안정감을 잃지 않았고 브람스 특유의 두텁고 따스한 질감을 유감 없이 들려주었다. 통영국제음악당에 첫 입성한 의미로서 내겐 그것으로 충분했고 감사했다.
Leoš JanáčekㅣViolin Sonata
<야나체크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초반에는 무척 체력을 안배하는 의도성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섣부른 기우였다. 분명한 것은 카바코스의 본연의 기량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음을 소릿결을 통해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오늘날 야나체크는 더이상 낯설고 어려운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분류되지 않는다. 비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때문만은 아니다. 무척 자주 연주되고 알려지게 되면서 현대의 고전 레퍼토리로 완전 자리잡은 것 같다. 그래서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선율미와 기능성이 전위성에 전혀 묻히지 않고 청중들의 절대적 공감을 받는 걸 보면 애호가들의 개방성이 무척 폭 넓어져 간다는 걸 느끼게 된다. 난해하게 배열된 선율들이 이토록 자연스럽고 큰 정신적 파장을 몰고 온다는 것에 새삼스런 전율이 인다. 피날레의 지극히 고요하게 사그러지는 음의 잔향, 깊은 침묵의 순간이 안기는 그 아찔한 쾌감은 오늘 공연에서 느꼈던 최고의 순간이었다. 청중들이 끝까지 지켜줬던 그 아득한 고요는 진정한 카타르시스 그 자체였다.
L. v. BeethovenㅣViolin Sonata No.9 Op.47 'Kreutzer'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는 전반부에서 느껴졌던 다소의 무기력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급반전의 무대였다. 카바코스의 기량은 물론이고 오늘 이 자리에 온 모든 청중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듯이, 김선욱의 깊은 존재감과 압도적인 스케일이 각인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 곡은 실로 거대한 바이올린 소나타가 아닐 수 없다. 거장적인 기교와 음향, 그리고 기능성과 예술성의 극한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힘과 테크닉의 자연스러운 조화로움 속에서 독보적인 카리스마 없이는 완결지을 수 없는 걸작이다. 카바코스의 소릿결도 1부 연주와 완전히 구별되는 강인하고 선이 굵은 질감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음반을 통해서 느꼈던 가슴 시린 청명함은 아니었지만 마치 서슬퍼런 장검을 휘두르는 통영 앞바다 위의 이순신 장군이 생각날 만큼 불꽃 튀는 전장터의 한 복판으로 청중들을 몰고 갔다. 무엇보다 김선욱은 이미 클라라 주미강과 함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레코딩한 바 있기에 대단히 여유로우면서도 작품의 속살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정교한 해석을 선보였다. 연주 중 김선욱은 카바코스로부터 완벽하게 시선을 빼앗아버린 순간들이 많았다. 어쩌면 카바코스와 김선욱의 진검승부 그 이상의 의미였다. 아마도 김선욱의 수준 높은 기량에 카바코스도 시너지를 느꼈을 것이 분명하고 그것이 연주 자체에 거대한 힘으로 투영됐을 것이다. 1악장부터 그들 모두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이대로 이 연주가 끝나도 좋을 것처럼 강렬한 종지부를 찍었다. 2악장 '안단테'는 전반부의 총력전에서 잠시 벗어나 힘을 빼고 나긋나긋한 낭만성을 강조했다. 카바코스의 보잉은 시대적인 특징을 저격하는 느낌이다. 그가 시벨리우스를 연주할 때와 브람스, 야나체크, 그리고 베토벤을 대하는 자세가 온전히 다르다. '고전주의의 중심에서 낭만주의를 외치는 외도나 탈선'이 아니라 시대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만의 시선이 오롯이 발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2악장의 낭만성은 자유로운 영혼의 본능이었고 결코 '시대'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몸부림이었다. 김선욱은 카바코스의 그런 시선을 그윽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받쳐주었다. 3악장은 돌변하는 그들의 전투태세가 강렬하게 긴장감을 가한다. 두 남자의 야성적 본능이 본격적으로 꿈틀거리며 수군의 출정이 시작된다. 카바코스의 활이 상공으로 뻗어나가면 김선욱의 돌격부대가 뜨겁게 전진한다. 살아 숨쉬는 듯 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그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은 코다를 향해 거침 없이 나아간다. 마지막 트릴이 숨가쁜 움직임을 시작하면 카타르시스를 넘어 오르가즘이 된다. 바로 이 순간이 진정한 예술의 묘미이자 가치가 아닐까? 적들의 심장을 가르는 마지막 장검이 음악당에 메아리로 울려퍼지자 객석에선 폭발적인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열정과 황홀경의 순간이었다.
<Encore>
L. v. BeethovenㅣViolin Sonata No.6 / 2nd mov.
앙코르는 다소 의외였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6번> 2악장은 조용하고 차분했으며 매혹적인 울림을 안겼다. "크로이처 소나타"를 통해 살인적인 다이내믹과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만끽했으니 들뜬 마음을 모두 진정시키고 잠자리에 들라는 나름의 배려였을까? 오래토록 남겨지는 여운처럼 가슴 가득 저며오는 두 남자의 따뜻한 음색에 진정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통영의 밤은 깊어가고 공연장 밖 바닷가엔 둥근 달빛에 비친 아름다운 윤슬이 신비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황홀, 환희, 그리고 벅차오르는 낭만의 순간이 그렇게 차분히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