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선우예권 & 리오 쿠오크만-홍콩필하모닉ㅣ차이콥스키
10.19(일) / 17: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노/ 선우예권 (Yekwon Sunwoo)
지휘/ 리오 쿠오크만 (Lio Kuokman)
홍콩필하모닉오케스트라 (Hong Kong Philharmonic Orchestra)
진은숙ㅣ수비토 콘 포르차
Unsuk ChinㅣSubito con Forza
찰스 쾅ㅣ페스티나 렌테 질여풍, 서여림 (한국 초연)
Charles KwongㅣFestina lente 질여풍, 서여림
차이콥스키ㅣ피아노 협주곡 1번 Op.23
P. I. TchaikovskyㅣPiano Concerto No.1 Op.23
<Piano Encore>
F. SchubertㅣImpromptu No.3 D.899 Op.90
차이콥스키ㅣ교향곡 5번 Op.64
P. I. TchaikovskyㅣSymphony No.5 Op.64
<Orchestra Encore>
J. S. Bachㅣ양들은 평화롭게 풀을 뜯고
(편곡/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선우예권 #리오쿠오크만 #홍콩필하모닉오케스트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선우예권의 피아노 연주는 이제 완연히 무르익은 느낌이다. 그만의 진하고 명징한 음색과 흠잡을 곳 없는 안정된 테크닉, 짙푸른 우수에 젖은 듯한 고유의 낭만성 위에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능숙과 연륜이란 단어가 여기에 추가되어야 할 것 같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그가 "라흐마니노프"나 "프로코피에프", "베토벤" 등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할 때와 또 다른 지향점을 지닌 피아니즘을 선사했다. 음정의 정확성, 사운드의 명확성을 기저에 두면서도 온전히 자신만의 분명한 특징적 색채를 음악에 깊숙이 투영하는 노련함을 통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피아니스트인 선우예권, 본연의 모습 그대로, 아니, 더욱 발전해 나가는 그만의 진정한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1악장 시작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는데, 이전에 비해서도 더욱 농밀해진 타건과 빠르고 강력한 패시지에서도 드러나는 정확하고 확고한 음색은 과연 선우예권, 그 다운 모습이었다. 반면 오케스트라는 전반부의 '진은숙'과 '찰스 쾅'의 작품에서 보여줬던 그 단단하고 압도적인 앙상블에서 조금은 유연해진 느낌을 주었다. 그것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밝고 당찼던 표정이 순간 변하면서 뭔가 당황스러운 감정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2악장 도입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주최 측의 해명도 딱히 없었던) 무대 잡음이 약 3분 여 정도 지속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조용하게 흐르는 선율 위에 불청객처럼 들려온 아주 예민한 소리는 관객 전체를 불편하게 했고 결국 연주자들의 앙상블까지 흔들리는 영향을 주고야 말았다. 다행히 소리는 멈췄고 이후 곧바로 제 페이스를 찾은 연주자들은 심기일전하는 듯했다.
이어지는 3악장에서는 그야말로 진군하는 전차 같은 뜨거운 공격력을 보여줬다. 리오 쿠오크만이 이끄는 홍콩필하모닉은 선우예권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면서도 자신들의 갈 길을 또렷이 드러내며 나아갔다. 중국인 특유의 기질인 듯한 대단히 절도 있고 다소 요란한 지휘는 홍콩필의 높은 기량을 통해 충분히 표출됐다. 그러나 그것이 오롯이 음악적 요소로 승화됐는지는 조금 의문이다. 사실 협주곡에선 이런 점들이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았기에 탄탄한 서포트로 협연자와 이루는 합일점은 벅찬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피날레의 폭발적인 앙상블을 통해 이를 분명히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선우예권이 앙코르로 들려준 <슈베르트 즉흥곡 3번 D.899> 연주는 앞서 언급했던 그만의 노련함과 연륜, 성숙미가 단연 돋보였던 순간이었다. 이젠 선우예권의 피아노가 마치 높고 거대한 산처럼 어느덧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슴 한 곳을 뜨겁게 두드리는 단아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음악 속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었던 감동의 시간이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오늘 홍콩필하모닉의 연주는 '적당한 성의와 넘치는 자신감, 능숙한 연주력에 기반한 자만심이 이루는 삼각형, 그 세 개의 점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는 중심점, 그 어디쯤'이었다.
대단히 테크니컬 한 연주였지만 그 중심에는 깊이감이 사라진 황량한 공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시아인과 서양인 비율이 거의 비슷한, 글로벌한 단원 구성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의 소릿결은 끝내 '탈 아시아'를 이루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반드시 탈 아시아를 이룰 필요는 없다. 아시아 오케스트라도 본토의 연주자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더불어 아시아적인 장점들을 음악의 전반에 투영하는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홍콩필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테크닉 이전에 그 이면의 감성을 오롯이 충족해주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이는 기능성만으론 절대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다. 악보상의 음표 전체를 온전히 재현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완성된 음악이라 할 수는 없듯이 관객의 마음을 오롯이 충족해 주는 연주를 할 때 비로소 그들 고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능력이 조금은 부족해도 가슴을 강하게 때리는 연주회가 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결론을 이미 도출해 낸 연주와 진행 과정에서 더 높은 이상과 가능성, 그리고 이후의 기대감까지 설렘과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무대를 만날 때 관객은 진정한 만족을 얻는다. 이 경지에 이르는 것은 사실 연주자에게 놀라운 능력을 요하지 않는다. 그저 진심과 진실됨을 요할 뿐이다. 오늘 그들이 꼭 그렇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무언가 깊은 공허를 가슴에 가득 안고 공연장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면 분명 돌이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오늘따라 늦게 입장한 몇몇 관객들을 즉각 처리하지 못하는 콘서트홀 어셔들의 현명하지 못한 대응으로 인해 연주 시작 직전까지 어수선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1, 2부 모두 감당해야 했던 점은 매우 불만스러운 기억이다. 1부, 무대 잡음 사고도 겹치면서 더욱 짜증스러웠기에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유달리 내 주변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걸 보면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그저 내가 감당해야 할 필연이자 시련인 것을.
오랜만의 상경길이었지만 늘 겪던 대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럼에도 선우예권의 성숙해진 음악적인 면모를 재확인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서울행이기도 했다. 2년 전 부산에서 그의 독주회를 통해 경험했던 감동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다. 그래서 오늘 내가 여기 있음은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행위는 결과를 낳는다. 의미의 경중으로 행위의 당위성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오늘 이 순간의 의미는 선우예권을 통해서 모두 의미 있는 행위로 규정됐다. 그것이 나에겐 전부였던 하루였다. 그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