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선곡
D. Shostakovich
Symphony No.11 Op.103 "The Year 1905"
Jazz Suite No.1
Jazz Suite No.2 'VI: Waltz 2'
Tahiti Trot (Tea for Two)
Mariss Jansons - Philadelphia Orchestra
#MarissJansons #Shostakovich
#PhiladelphiaOrchestra
정명훈의 <교향곡 4번>, 마리스 얀손스의 <교향곡 11번>은 쇼스타코비치에 최적화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막강한 연주력을 증명하는 음원이다. 무엇보다 거장 얀손스의 진한 해석은 천의무봉의 차원을 넘어선 본능적 탁월함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쇼스타코비치는 단순히 기능적 측면뿐만 아니라, 기저에 감각적 여유와 강한 내공이 깔려있지 않으면 조급한 기계적 연주로 전락하기 쉽다. '이상적 연주'는 오케스트라가 기본적인 앙상블과 조직력을 받쳐준다는 전제 하에 지휘자의 철저한 장악력과 막강한 실력, 해석이 조합되어야 가능하다. 어떤 곡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쇼스타코비치는 단단한 내공 없이는 연주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스 얀손스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이루는 조합은 완벽에 가깝다.
이 교향곡은 시작부터 피날레까지 쉼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일관된 앙상블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다. 음산하고 비극적이며 투쟁적 악상들이 가득하지만 짙은 어둠과 항거의 외침이 공존해 우릴 잠시도 가만 두지 않는다. 쇼스타코비치 음악이 주는 음향적 매력은 다른 작곡가와 완전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피날레에 이르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외치는 <전우여 잘 자라>가 완벽히 재현되는 군가의 선율이 귓가를 자극한다. 물론 여기서 표절 여부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 오마주의 차원을 넘어서 완벽한 선율적 일치를 보이기 때문이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 '민해경 교향곡'이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의미이다.
첫 만남부터 난 이 음원을 이 곡의 기준점이자 최상의 연주로 여겨왔다. 이후 들어본 대부분의 연주들은 여전히 얀손스의 아우라에 미치지 못하며, 러시아 본토 연주는 무척 훌륭하긴 하지만 지나치게 거칠고 사회주의적 연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오히려 작품 자체의 본질을 해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서방세계의 오케스트라는 강한 자유와 억압의 오묘한 조화가 어우러져 작품의 생명력에 싱싱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후반부 커플링된 "재즈 모음곡"이나 "Tea for Two"와 같은 자유분방하고 대중적인 소품에선 미국적인 풍미가 더해지며 이루는 시너지가 상당하다. 리카르도 샤이, RCO의 연주보다 더 감각적이고 능수능란하다. 거장 마리스 얀손스가 얼마나 다채로운 음악을 펼쳐내는 세기의 대가인지 명확히 증명하는 음원이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1번>의 진가를 가장 온전히 재현한 최상위의 연주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