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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강훈 Sep 19. 2022

내가 새가 되어 날아야 한다면

만일 내가 새가 되어 날아가야 한다면

나는 내 날개를 밑천 삼아

멀리 또는 높게 날진 안겠네.

내 날개의 퍼득거림과 내 몸의 생김새를 밑천 삼아

날렵하고 우아하게 날진 않겠네.

이왕 새가 되어 날아가야 한다면

비상의 바닥 되어 나를 저 하늘에 띄워주던

풀밭이거나 나뭇가지 거나 바닷가의 바위 거나

그 드러나지 않는 시작의 가치이자

박차 올라 첫 날개 짓이 가능할 수 있음에 기여한

모든 활주로를 기억하겠네.


만일 내가 새가 되어 하늘에 떠올라

활공으로 직강하로

때론 거친 몸짓으로 정지했을 때조차도

생존의 밥 거리로 날것과 들것들의 움직임만을 포착하려 시력과 청력과 온 신경을

오로지 먹이에게만 곤두 세우지는 않겠네.


하늘의 흐름을 있게 하는

공기의 차고 더운 기운과 그 기운들의 형상으로

나를 다독이는 바람의 촉감과 그 기운들의

제 가는 길에 내가 단지 얹혀 갈 수밖에 없는

활공의 가치이자 나를 하늘에 머무르게 하는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억하겠네.


그 기억들이 나를,

위대하게 또는 화려하게, 배부르게 그리고 넉넉하게,

높이도 멀리도 날지 못하게 하거나

종종 바위에 부딪히거나 파도에 곤두박질하거나

더 크거나 떼 지은 잡새들에게 놀림감이 되거나

먹이가 되어 깃털만 허공을 가를 지라도


박차 올라 하늘에 떠 오르던

그 첫 비상으로 만족하겠네.


바람의 가는 길을 따라 함께하던 그 평온,

그 여정에서의 미세한 떨림만으로 만족하겠네.


내가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야 한다면

날 수 있음에 만족하겠네.

새가 되었음에 만족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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