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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강훈 Sep 23. 2022

흐름의 세상을 위하여

세상사는 흐름의 역사다. 인간들이 노력하고 뜻을 모으면 이룰 수 있다고 여겼던 흐름이 너무도 어이없는 상황에 단절될 때마다 낙담하고 분노하지만, 인간이 바라는 욕구가 흐름의 기운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아직 흐름의 법리가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인간이 느끼지 못한 때문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검사 공화국으로 정권을 시작하며 홑이불 여사와 17범 전과 도사들이 순리를 뒤집고 별의별 엉터리 국정을 펼치며 온갖 양아치들이 구석구석 자리를 꿰차고 혼돈의 악질을 펼치니 국력은 무너지고 국격은 퇴색한 지금의 현실에 모두들 충격을 받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저 쓰레기를 치우려고 애쓰지 않는 게 또 하나의 현실이다.


이쯤에서 만약 세상사의 흐름의 역사라면 왜 이런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을까? 돌아보면 그런 상황은 애초에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조선왕조 시대의 끝자락에 매국 종일 분자들이 나서서 일본의 주구가 되어 조국의 멸망을 앞장서면서부터 수많은 민중들과 소녀들이 죽고 끌려가 노예로 피울음을 흘렸던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독립투쟁의 과정에도 또 다른 매국 분자들이 반동적 활동으로 미국의 주구로 전락해 권력을 잡는 것에만 몰두하며 해방이라는 형식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민을 짓밟았고, 반쪽의 정권은 통일의 미명 아래 전쟁도발로 동족상잔을 자행했고 끝내는 분단의 상처로 서로가 서로를 원수 대하듯 살게 됐으니 이때 죽어나가고 헤어져 살게 된 수많은 원혼들의 아픔이 얼마나 크겠는가?


남쪽에선 독재자들과 수준 이하의 지도자들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상처받고 고통받았는가? 북쪽 역시 숙청의 권력유지로 허구한 날 죽어나간 원혼들의 피울음이 그칠 날이 있었겠는가. 그렇게 살아온 지 백 년이 넘었으니 민중들의 아픔이 그치고 영광스러운 국가로 평화를 열어갈 때가 되지 않았겠는가라는 우리의 기대는 그렇다면 왜 지금도 펼쳐지지 않고 있단 말인가?


우리의 현실을 조금만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왜 이 상황이 끝나고 평화와 평안의 세상이 아직 열리고 있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우선, 바로 잡았어야 할 역사를 헝크린 채 국가로 운영하는 건 잘못됐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정의가 바로 서지 못했다. 내부의 잘못과 외부의 잘못이 겹치면서 식민지로 여전히 남아있고, 종일 분자와 종미 분자가 권력이 되고 자본이 되어 나라를 휘젓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우리들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닌 세계시민사회에서 그런 아픔의 역사를 가졌다면 다른 국민들이나 세계시민과의 관계에서 평화와 인권 가치를 펼쳐야 함에도 다수의 국민들이 수준 이하의 편견과 몰염치와 폭력적 사고와 태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에 대한 몰상식한 대처와 비인간적 행위들만으로도 우리는 평화와 평안을 누릴 자격미달 국민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결국, 우리 스스로가 평화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평화를 누릴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지금이 정말 지속되는 시기가 아니라 과도기로 끝내야 한다면 드러난 종일ㆍ종미 매국자들이 스스로 반성과 참회를 통해 심판을 달게 받겠다는 자숙의 시간을 갖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 대한 준엄한 처단이 있어야만 한다. 정의는 바로 설 때만 정의롭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도 반성과 참회를 통해 세계시민다운 평화와 인권과 평등과 비차별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흐름은 그렇게 해야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우주와 자연이 우리와 함께 할 때만이 더 이상 비상식의 세상이 아닌 온전한 흐름의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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