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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16. 2024

‘무진’과 ‘서울’ 사이, 각성하는 그 잠깐의 공간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읽고

2022.10.31


 

 서울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감각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슬퍼하다가는 해야 하는 일들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내게는 무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1964년 서울의 어느 겨울밤처럼, 스스로가 익명화되는 공간에서 나를 되찾기 위해, 역설적이게도 나를 마음껏 잃어버릴 수 있는 공간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까?”라는 세 사람의 질문에 ‘무진’이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무진은 서울과 대비되는 낙오의 공간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서울만으로는 자기를 온전히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무진을 필요로 했다. 이는 60년대 한국이라는 정치, 경제적 상황에서 더욱 그러했다.


  60년대 서울은 당시 배타적인 위계의 정점에 있는 도시였다. 이처럼 서울은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또한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전자의 경우는 대체로 성공을 위해 상경한 시골 사람들의 생각이었는데, 결국 그들은 후자의 세계에서 ‘침묵’이나 ‘감정의 기교’(「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만을 얻기도 했다. 한편 ‘윤희중’과 ‘김’ 또한 상경한 시골 청년이었고, 서울의 무신경한 논리에 동화되었다. 이러한 때에 ‘윤희중’에게 무진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그가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수치심은 자기를 문제 삼는 감정으로서, 오로지 삶의 주체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윤희중’과 달리 ‘안’과 ‘김’은 자살한 사내 앞에서조차 일말의 수치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것이 무진의 가능성 없이 그들이 서울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일차적으로는 무진을 필요로 하며, 더 중요하게는 무진과 서울을 잇는 길을 필요로 했다. 이때 무진이라는 공간을 살피기 전 해야 할 작업은 무진을 있게 했던 그 역사적 배경을 짚어보는 일일 것이다.


  1960년 4월 19일 이후, 한국인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인식은 오래 가지 못했고 5.16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가까스로 이루어낸 주체성을 부정당했으며,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을 것이었다. 거기서 더 시간이 흘러 시민들과의 논의 없이 일본과의 국교를 정상화한 정부에 대항해 자신들의 영향력과 존재를 증명받고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데모도”, “여자의 아랫배”도, 그러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필사적인 노력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안’과 ‘김’은 결국 주체로서의 목적성도, 사내와의 일에 대한 수치심도 표출하지 못한 채 소설에서 퇴장한다.


  정치적 억압만이 그들의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은 아니었다. ‘윤희중’이나 ‘김’과 같이 생활을 위해 상경한 이들을 포함한 서울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도 인생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그들의 삶을 버텨내야 했다. 마치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것을 꿈꾸었으나 실상 적은 임금으로 아무리 노동해도 신분 상승을 꾀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더불어 당시의 박정희 정권은 국가적인 경제 정책으로, 개개인보다는 전체 국력의 강화를 도모하며 경제적 민족주의를 실천했다. 이에 거시적으로는 막대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복지란 그저 상상 속의 개념이었을 것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도시의 논리 속에서 불가피하게 “자기 세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이는 ‘안’과 ‘김’의 맥락 없는 대화에서 두드러진다.


  그러나 ‘윤희중’에게는 무진이라는 처방전이 있었다. 비록 이 무진행이 기만적인 도피에 불과하더라도 그는 무진이 있었기에 도시의 질서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었다. 이때 그들이 살아가는 서울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불구경(「서울, 1964년 겨울」)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그들을 사로잡는다. 반면 안개(「무진기행」)는 사람들이 바깥을 살피는 데에 장애가 되며, 이는 결국 시선을 자기 안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무진은 서울에서는 억압되었던 자기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광기와 충동을 긍정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런데 이때 이러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무진은 오직 자기 자신만이 중요한 공간이 되며, 무진 사람들은 타인이 모두 “속물”이고 그들이 하는 일은 “무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무진에 있는 자기 자신의 속물성을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울 혹은 무진 안에서만 있다면 그 어느 쪽에서도 온전히 반성적인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개인이 적극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인가. 바로 무진과 서울 사이를 잇는 버스 안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윤희중’이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진다. 수치심이 주체가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은 앞서 짚어 보았다. 그런데 이때의 수치심이란 무진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무진에서는 ‘윤희중’이 여전히 ‘하인숙’과의 관계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서울에서 ‘안’과 ‘김’은 사내를 방치한 데에 대해 수치를 느끼지 못한다.) 즉 오로지 무진에서 서울로 가는 길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이다. 어쩌면 무진이 필요한 이유는 무진과 서울을 잇는 그 버스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버스는 ‘윤희중’이 자기기만과 자기상실을 깨닫고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간이며, 따라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진은 서울을, 돌아오는 서울행을 전제한다. 그리하여 자신이 언제든 무진을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은 진정한 무책임을 완성하고 우리가 무진에서의 삶에 갇히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무진은 무진‘행’과 서울‘행’을 만들며, 그 사이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문제 삼는다. 이것이 서울의 모든 사람에게 있어 완벽한 처방전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는 서울에 살며 언제나 나만의 무진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만의 무진 생활에서 속물적인 기만자가 되더라도, 그곳에서 온갖 무책임(혹은 무책임의 부재)를 누리고 나서 언제나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무감각한 서울 생활의 도피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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