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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비지 Nov 12. 2021

서민 생활의 무지개다리

벌교 홍교



실용적 기능을 충족한다는 현실적 필요 외에도 건축은 인류 역사 오랫동안 상징을 포함했다. 지금이야 미신으로 보이거나 이상하게 생각되기 쉽지만, 전통건축 감상은 결국 그 시대 엿보기다. 상징도 그대로 보면 구조물이 왜 거기에 그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는 재미가 있다. 어떤 이는 내가 한옥일을 한다고 하면 전통 건축문화 수호자쯤으로 보기도 한다. 나 그런 사람 아니다. 건축을 국가 민족 인종 종교 문화 시대에 따라 줄 세워 등수 매기는 취향에는 관심 없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각각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같은 시기의 다른 것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의 것도 공존하는 게 자연생태계 아닐까.  

 

한국 전통건축에서 실용적인 기능과 별개로 정치나 종교 사상과 연관된 의미를 갖는 상징물의 예는 흔하다. 궁궐 전각이나 향교 서원 같은 관공서 건물 지붕에 설치된 장식 기와가 대표적이다. 행운을 기원하고 나쁜 일을 막는 부적 같은 의미다. 절에 있는 탑은 종교적 상징체의 예다.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인도의 구조물에서 유래했다가 긴 세월이 흐른 후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예불 대상이기도 했다. 또 절 입구마다 세워진 대문이 없는 일주문은 속세와 사찰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를 나타낸다.


무지개다리도 비슷한 의미로 설치되기도 했다. 다리를 놔서 끊어진 길을 잇지만 거꾸로 다리를 놓음으로써 서로 다른 공간임을 상징적으로 구분하고, 두 공간의 위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선암사의 승선교가 종교적 신성성을 상징한다면, 궁궐 정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경복궁의 영제교, 창덕궁의 금천교 같은 홍예교들은 통치권력을 나타낸다. 조선시대 궁궐들은 중국 고대의 예법에 따른 기술서인 "주례 고공기"와 성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풍수지리론과 한양의 지형을 감안해 건축됐다. 예법대로 왕권을 상징하는 홍예교를 필요한 위치에 놓기 위해 애써 물줄기를 끌어오기도 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물도 없는데 다리를 놓고 종교적 위계를 나타낸 사례가 불국사의 청운교 백운교, 연화교 칠보교다. 석축에 오르는 계단 밑에 설치한 이 네 개의 홍예교는 다리를 건너 올라가면 구름 위 불법의 세계라는 의미의 상징물이다.      


벌교 홍교(2021.7. 보성)


무지개다리가 상류층 건축에만 쓰인 것은 아니다. 전남 벌교에 있는 홍교는 주민들이 일상으로 사용하던 무지개다리였다. 폭이 넓은 강둑을 길게 연결해 이동하는 기능에 충실한 다리다.

'홍교'는 홍예교의 줄임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후기 홍교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이 자리에 뗏목다리가 있었다고 전한다. 홍수에 나무다리가 유실되자 석교를 세워 대체했는데, 벌교라는 지명도 이 뗏목다리에서 유래했다.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서 홍교의 위상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홍교의 원형이 남아있는 구간은 3간이다. 홍예 높이가 3미터에 홍예 간사이(개구부 폭) 7.8미터에 달하는 전국에서 가장 큰 홍예교로 평가된다.  


축조법은 승선교와 유사하지만 계곡 암반 위에 쌓은 승선교와는 달리 강바닥에 별도의 기초를 하고 하중을 받칠 축대인 교대를 쌓아 그 위에 홍예를 틀어 올렸다. 사진에서 보듯 홍예돌에 접해 측면을 마감한 석재의 재질이 홍예돌과 다른 것은 후대에 변형된 것으로 본다.

무지개 모양의 홍예돌 중 가운데 솟아오른 부위의 홍예 종석이 돌출해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용의 머리형 상의 '용수'인데 다리의 수호신을 상징한다.    


다리의 상면은 나무로 한옥의 우물마루를 짜듯 석재를 치석 해서 짜 맞췄다. 다리의 길이 방향으로 길게 양측면과 한가운데 뻗쳐 댄 돌은 귀틀석, 그 사이를 마감한 넓적한 돌은 청판석이라 한다. 귀틀석의 이음부 밑을 받치며 측면에 삐져나온 것은 멍에 돌이다.

건축에서 가장 일반적인 구조법이 부재를 쌓아서 만드는 '조적식'과 짜 맞춰서 만드는 '가구식'인데, 홍교에서는 두 가지 공법이 모두 사용됐다. 무지개 모양으로 돌을 쌓고 그 측면을 큰 돌들로 마감한 부위는 조적식 공법이, 상판 마감에는 가구식 공법이 적용됐다. 홍교의 멍에 돌에서 만나는 귀틀석의 끝이 'ㄱ' 턱을 내어 물린 게 보인다. 또 사진에는 안 보여도 청판석을 설치할 때 역시 귀틀석에 'ㄴ'자 턱을 내고 결구한다.

무지개 모양으로 홍예를 틀 때는 목재로 미리 짠 '홍예 틀'이 사용된다. 설계된 홍예의 크기에 맞게 나무로 형틀을 짜서 세우고 그 위에다 양 옆에서부터 순서대로 돌을 쌓아 올라간다. 돌을 다 쌓고 틈서리마다 끼움돌과 쐐기를 박아 움직임 없이 안정되면 홍예 틀을 제거한다.        



벌교 홍교. 돌을 쌓는 조적식과 짜 맞추는 가구식 공법이 모두 사용됐다.(2021.7. 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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