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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Oct 06. 2020

운명의 재발견, 사주를 믿나요

사는 게 내 맘같지 않을 때 읽는 명리심리학.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타고난 사주팔자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성인이 되어 의지와 상관없이 인생이 어떤 거대한 운명의 흐름을 타고 휘몰아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부터다. 유명하다는 점집을  많이 다녔고, 당연히 모두 같은 풀이를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인  가지 말들,  대해서는 거의 맞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명리심리학>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들었다. ‘사는 게 내맘 같지 않을 때’ 라는 부제도 솔깃했다.


사람들은 "타고난 사주팔자가 그렇다" 라고 하면 이상할 정도로 두말없이 수긍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도 심리분석결과에 더해 사주팔자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이 신뢰감을 줄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비교와 경쟁으로 인한 현대인의 불안은 19세기 정치혁명을 통해 ‘인간이 평등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원래 그런 것, 다들 그렇게 살아, 그게 운명이라고 믿으면 순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다.



사주에 관심이 많았던 시절 고미숙 작가의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읽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결핍의 존재라는 내용에 위로 받았던 기억이 있다.


사주는 년 월 일 시를 뜻하는 네 개의 기둥이며 팔자는 한 기둥 내 천간과 지지 두 글자씩 총 4기둥, 즉 8자를 의미한다. 여기서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것은 일주의 천간, 즉 일간이라 하는데 이 일간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글자의 조합을 풀이하는 것이 사주 풀이가 된다.


 일곱 글자를 구성하는 것은 '십신'이라 하는  개의 글자  선택되는 것인데, 당연히  개중에 일곱 개만 가능하니 태생이 결핍이며,  글자가  세개씩 겹쳐서 들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갖지 못하는 글자는  많아진다는 . 이것을 두고 나는     아니고 일곱 개만 갖고 태어났는가 원망한들 소용이 없으며 인간의 삶이란 애초에 결핍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겉보기엔  갖추고 사는 사람같아도 분명 결핍된 부분이 존재할  밖에 없다. 허지웅씨도 <살고 싶다는 농담> 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삶은 남들만큼 비범하고, 남들의 삶은 우리만큼 초라하다고.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순응의 학문이다. 그러나 모든  정해져 있다면 너무 아쉽지 않은가. 저자는 이에 대해 인간에게는 운명 외에 자유의지 라는 것이 있으며 신이 이것을 인간에게  이유는 역시 자유의지로 신을 찾는 인간의 존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 결론짓는다. 그저 순종하기 보다 능동적으로 신을 찾고 운명을 개척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용했다는 .


토정 이지함 선생이 주역의 음양설에 비추어 길흉화복을 점치도록 만든 예언서 <토정비결> 쓰면서 인간의 운명이 지나치게  들어맞을 것이 두려워 일부러  글자 틀리게 썼다는 설이 있다. 나도 주변사례를 보아도 운명론은 반만 진실이다.


미래를 점치는 것은 심할 경우 위험한 믿음이 된다. 그러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를 배우듯 비가  것을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는 자세도 때로 필요하지 않을까. 인생은 태생적으로 결핍이라는 . 아무리 타고난 팔자가 좋아도 스스로의 그릇을 키우지 않으면  운을  누릴  없다는  만큼은 진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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