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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Jul 20. 2021

7월의 어느 맑은 날 바삭한 진리를 만나는 것에 관하여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간결한 철학 연습 <가장 단호한 행복>


겨울 서점 상반기 독서 결산 인문사회부문 ‘살면서 은근 도움돼 상’을 수상한 책. 단호한 제목에 이끌려 고민 없이 주문했다. “삶의 주도권을 지키는 간결한 철학 연습”이라는 부제 그대로 군더더기 없는 에센스가 담겼지만 그래서 더 단숨에 읽지는 못했다.




7월의 하늘은 처음처럼 예뻤다. 뜨거운 태양 아래 게와 소라의 시간, 불볕더위에도 갯벌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모두 아이와 함께였다. 이 더운 날 갯벌에서 소라게를 잡고 있는 어른이 있다면 그 이름은 부모. 이 더운 날 바다가 말이 되냐며 불만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최선을 다해 돌 사이를 살피는 남편과, 언제나처럼 채집에 진심인 꼬마들 옆에서 나는 잠시 장단을 맞추다 얼른 텐트로 돌아왔다. 혼자 쉬어서 미안하단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적당한 그늘에 앉아 교보문고 굿즈였던 연회색 무릎담요 위에 책을 올려놓았다.


<가장 단호한 행복>. 바닷빛 표지와 모래사장이 익숙하게 어울려 순간 책이 나를 바다로 이끈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어떤 미련인지 어쩌면 꿈인지 그렇다면 가능성인지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이따금씩, 내 것이 아닌 삶을 욕망한다. 그것이 진정 나의 욕망인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인지, 속세의 바다 한가운데 선 나로선 알 도리가 없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욕망하는 순간부터 불안은 시작된다는 것. 그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지 않고 바르게 쓰이도록 돕는 것 중 하나가 철학일 것이다.


어떤 느낌이었나 하면 더운 여름날 여행지에서 열심히 가이드북을 따라가다 살짝 지칠 무렵 우연히 바닷가 근처 성당을 하나 발견하는데 그 건물의 외벽은 파란색이었던 것. 무심코 이끌려 들어갔더니 기분 좋게 서늘한 공기 위로 익숙한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흘러나오는데 그게 또 어지러울 만큼 좋은,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데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그래도 말해보자면 ‘파랗게 맑고 청량한 무게의’ 책이었다.





세상에는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없으며 그냥 존재할 뿐, 어떤 일에 대응하는 방식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 판단력을 의심하는 가까운 사람의 불만도, 나를 작아지게 하는 먼 타인의 삶도, 스스로를 옥죄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도 그저 거기 있을 뿐,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평정심을 유지하기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고통을 깨우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책의 페이지마다 여행지의 순간처럼 온통 저장하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했는데, 우리의 목표를 외부에서 내부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남았다.


“과녁을 명중하는 것을 목표로 삼되 갑자기 돌풍이 불거나 예기치 않게 과녁 자체가 움직여 화살이 빗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그러므로 목적은 과녁 명중이 아니라 능력 내에서 최선의 화살 쏘기를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p.54)


‘능력 안에서 최선의 화살 쏘기’란 이를테면 성공 혹은 승진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 되는 것, 아이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성인으로 길러내는 것, 남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최대한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 짧은 식견으로 이해한 바 인간이 욕망해야 할 대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면의 본질에 있다는 진리. 그 진리가 모래 위로 반짝거리는 것을 느꼈다.


두어 시간 바짝, 소라게와 조개를 잡아 온 아이들은 그늘에서 모래성을 쌓았고 그러는 동안 부모는 배가 고파져 갯벌에서 가까운 튀김집에서 왕새우튀김을 샀다. 유명한 곳인지 줄을 설 정도였다. 이름 그대로 새우가 왕처럼 커서 마음에 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낮게 나는 비행기를 보았다. 영종도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저공비행의 순간. 어린애처럼 반가워하며 사진을 찍고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는 또 왕새우튀김만큼 가볍고 바삭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역시 해변에선 튀김이지, 그러니까 튀김은 진리, 가볍고 바삭한 진리, 바닷가에서 발견한 진리의 맛이 몹시 기뻤다.





잘 지내셨나요. 한 달 만에 브런치 글을 발행한 것 같아요... 경험상.. 이렇게 오랜만에 뭘 올리면 올리는 순간 구독취소가 발생하기도 하던데.. 히.. 음.. hoxy..그래도 평정심을 유지해 볼게요.. 늘 감사합니다. 역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우리 삶 가까이에.. 평정심의 여름날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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