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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Aug 16. 2021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

멋진 할머니가 되는 그날까지

모든 책들은 연결되어 있다. 우연히 발견된 연결고리는 마치 인생의 비밀이라도 되는 듯 빛난다. 그 사소하고 고독한 희열을 나눌만한 상대를 만나다면! 정녕 운명이라 믿게 되겠지만 대개 그런 일은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기라는 것을 쓴다.


도서관에 갔다가 읽지 않은 김연수 에세이를 발견하고 냉큼 빌렸다. 세상에, 아직 읽지 않은 김연수 에세이가 있다니 신난다. <시절 일기>. 말 그대로 일기 형식의 기록이다. 저자는 일기를 ‘읽는 사람이 없는, 매일의 글쓰기’라고 정의한다. 일기를 쓰는 목적은 쓰는 행위 자체에 있기 때문. 이때 필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열정, 감각, 진실함, 연민, 호기심, 통찰, 창의성, 자발성, 예술적 기교, 기쁨이라고 적고 있다. (p.18)


김연수 작가는 어떻게 소설가가 됐냐는 질문에, ‘굳이 말하자면 일기를 썼다’ 고 대답한다. 쓰는 행위 자체에 집중해 날마다 쓰다 보면 잘 쓰게 되며, 이 과정의 끝에 얻는 것은 ‘자기 이해’라고. 부수적인 이득이라기엔 너무도 마법 같은 결론이다.


매일 쓰기를 다짐하는 동시에 반신반의하며 책을 뒤적이다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라는 글을 읽었다. 영국 안드레 도이치 출판사에서 필립 로스, 잭 케루악, 시몬 드 보부아르, 존 업다이크 등 세계적인 소설가들의 작품을 편집했고 75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에는 작가가 된 다이애나 애실에 관한 일기다.


그녀는 상처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기억을 회고하는 치유 과정에서 “지금까지 실패한 삶이라고 생각한대도 괜찮아. 늙은 뒤에도 기회는 생겨.” (실제로 나는 이 대목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 김연수 작가는 적고 있다. 세상에는 멋진 할머니들이 참 많다고. 그래서 그의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 웃는 눈으로 선한 것만 보는 할머니가 됐다고 말이다. 하, 역시가 역시. 너무 좋은 이 마음을 붙잡아 두고 싶어 호들갑스럽게 휴대폰을 들었는데 익숙한 번호로 문자가 왔다.


택배 아저씨다. 사심 가득 반가운 분. 교보문고에서 책이 배송됐다는 낭보다. 네 권의 책을 샀는데 그중 하나가 <되살리기의 예술>이다.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한다면 추천한다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고 마음이 동했다. 인스타그램의 단점이라면 여. 러. 가. 지. 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자꾸 사고 싶은 책이 생긴다는 것. 그럼에도 꽤나 열심히 하고 있는 이유는 이걸 그만둔다면 다른 곳에 출첵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터넷 쇼핑몰 같은.




초부터 함께한 플래너 모임에서 개인의 비전을 정하는 미션이 있었다. 일주일  생각만 하다 미션 기한 마지막  이렇게 적었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우아한 삶을 위한 경제적 자유.” 경제적 자유라는 말은 다소 식상해진 감이 있어 넣을까 말까 고민했다. 내가 추구하는 삶은 우아한   자체기 때문이다. ‘읽고 쓰고 사랑하는 .’ 멋진 척하며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써두었던 문구 기도 하다. 다만  읽고 쓰는 삶이 우아해지려면 경제적 안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


그리고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 언젠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그날에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것은 안정된 노후에 다름 아니다. 자본이 자본을 부르는 불로소득에 관한 욕망은 나의 불안의 구성하는 한 축인데, 스스로도 놀란 것은 단지 적기만 했는데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는 사실. ‘쓰기만 해도 이루어진다’는 일본 자기 계발서 같은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는 그런 마인드나 시크릿 따위엔 회의적인 편이다. 가시적인 결과는 시스템 안에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본의 아니게 ‘나를 집어삼킬듯한 인생의 어둠’을 지나고 있다면 그런 작은 행위는 한줄기 빛이라는 것, 그 빛은 결국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은 알 나이가 되었다. 그런 애매한 얘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어쨌거나 ‘쓰는 행위’의 결과 좀 더 적극적인 투자 마인드를 갖게 되었고 치솟는 물욕도 조금, 잠잠해지는 부수적인 이득도 얻었다. (고 생각한다, 현재까지는, 아마도, hopefully.)


역시 부수적인 이득 치고는 꽤나 마법 같다.




다시 <되살리기의 예술>로 돌아가면, 나는 표지를 본 순간부터 놀랐는데, 이유는 두 가지다. ‘읽고 쓰는 삶’이라는 추천사에 꽂혀 저자를 궁금해하지도 않았다는 것, 그리고 저자가 직전에 읽은 김연수 산문에 등장한 멋진 할머니 다이애나 애실, 나를 울린 삶을 사신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연결고리가 반짝거린다. 책을 통해 ‘나를 집어삼킬듯한 인생의 어둠 속에서 애써 뚫고 나오는 빛(p.150)’을 느꼈다는 유쾌한 영국 할머니와의 조우. 이것은 정녕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책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1부는 다이애나 애실이 겪은 출판업계의 일상, 2부는 그 속에서 그가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책에 특별한 마음이라면 그 자체로 매력을 느낄 이야기들이 담겼다. 여기서 ‘되살리기’란 편집자가 작가의 문장을 ‘살리겠다’는 生의 표시다. 이 생생하고 진솔한, 심지어 발랄한 할머니의 회고록을 읽다보면 잃었는지도 몰랐던 生의 의지마저 되찾는 기분이다. 마음에 들었던 <인디펜던트 온 선데이> 서평 중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출판에 관한 좋은 책을 찾는 것은 좋은 출판사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이런 직업에 대해 잘 쓰려면 솔직함, 지혜, 열정, 균형감, 그리고 무엇보다 유머 감각이 있어야 한다. 다이애나 애실은 이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 늙어서도 멋지려면 최소 이런 자질을 갖추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지혜, 균형감, 그리고 ‘ 키워볼까 싶다.   양보해 반백년 정도만 갈고닦으면 구십  근처라도 가지 않겠는가 하는. 역사적인 여름의 끝에 만난 운명의 상대, 101 애실 할머니의 전언이다.


그리하여 우아하고 멋진 할머니가 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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