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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Feb 08. 2021

참기로 했으면 끝까지 참자

못 참을 것 같으면 시작을 말고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하나를 꼽자면 ‘이 또한 지나갈 것’ 임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겐 뒷일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지금 내 욕구를 채우는 것이 급하고 당장 힘든 것을 참지 못한다.

물론 어른에 따라서는 여전히 근시안적인 사고를 하며 조급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나 역시 어느 정도는 혼자만 힘든 것 같은 억울함도,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고통도 조금 지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금요일 밤부터 오른쪽 귀가 아팠다. 잠시 객지 생활을 하던 20대 때 생긴 증상인데 검사를 해봐도 딱히 이상이 없어 그저 안고 가는 못된 친구 같은 고질병이다. 통증은 점점 심해져 귀가 먹먹해지는 상태에 이르렀다. 계속되는 쉭쉭 소리는 두통으로 번졌다. 으레 그랬듯 괜찮아지겠지 하며 진통제를 챙겨 먹은 후 열두 시까지 안 자겠다는 아이들을 억지로 재웠다.



다음 날 아침 통증은 가라앉았지만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묘한 불쾌감이 남았다. 평소보다 밤낚시에서 일찍 돌아온 남편은 밥 먹을 때 두 번을 제외하고는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그냥 침대인 줄. 낚시를 가는 것에 관해서라면 서로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합의는 한 달에 한번인 것으로 보았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야 뭐,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고 실제로 육아라는 것이 순간 힘들 뿐 아이가 잠들고 나면 괜찮아지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이랄까. 짠함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남편, 아빠, 직장에서 주어진 역할 이외에 그 자신으로서의 영역이 지켜지길 바랐던 것 같다. 내가 좋건 나쁘건 매일 글을 뱉어내듯.

하지만 그런 어른스러운 척은 호르몬의 방해가 없고 심신이 건강한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다. 낚싯줄만큼이나 얇은 인내심은 일요일 아침에 결국 한계에 달했고 아침을 먹고 평소처럼 누워 휴대폰을 보던 그는 영문을 모른 채 무작정 짜증을 내는 아내를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상황과 감정을 세련되게 전달하지 못하는 나란 여자는 순간 그의 앵그리버드 같은 표정을 보자마자 후회했지만 신기하게도 참고 있던 말들을 폭발시키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잔뜩 언짢은 얼굴로 첫째 아이만 데리고 동물원에 가겠다는 남편을, 둘째 아이를 대충 준비시켜 얼른 따라나섰다. 모냥은 좀 빠지지만 갑자기 화낸 것이 좀 민망하기도 했고 같이 가고 싶었던 것이 진심이기도 했다.


앵그리버드의 앵그리한 표정


동물을 보자던 다섯 살 꼬마가 갑자기 공룡도 볼 수 있냐고 묻는 바람에 우리의 목적지는 동물원 옆 놀이공원이 되었다. 일요일 오전의 한산함, 십여 년 전 그대로인 듯한 낡은 놀이시설이 어쩐지 내 감정처럼 촌스럽고 초라해 보였지만 그 화려하지 않음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아이들은 그저 신나 뛰어다녔고, 그걸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즐거워졌다.


어린이용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자는 다섯 살 꼬마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안전바를 내렸다. 어린이용이라고는 했지만 경사가 약간 덜 급할 뿐 기본적인 코스는 같았다. 놀이동산의 활기는 나쁘지 않지만 놀이기구라면 질색을 하는 편이다. 몸이 붕 떠오르며 중력을 거스를 때 느껴지는 떨림이 진심으로 무섭기 때문이다. 억지로 타기는 했지만 그 불안한 순간도 지나고 나니 아무렇지 않았다. 안전바를 올리자 뭔가 해낸 것 같은 뿌듯함마저 느껴젔다. 사람들이 놀이기구의 만들어진 공포감을 즐기는 이유는 역시 끝이 있음을 알기 때문일까.

여전히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지난해에 비해 탈 수 있는 시설이 꽤 늘었다. 처음 타본 미니바이킹에 푹 빠진 27개월 된 네 살 꼬마는 그 어지러운 것을 연달아 세 번을 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 정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했는데 키 100센티가 되어야만 탈 수 있었던 라바 플레이 앞에서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딸기 스무디 하나로 금세 기분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한참 커야 하는 건 아이나 나나 마찬가지. 너의 키가 자라는 만큼 나의 마음도 깊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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