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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Mar 25. 2021

사랑은 사치가 아니다

BTS도 영감 받았다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그것은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이 불안한 원인으로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첫 번째로 꼽았다. '인정받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이라고 하면 좀 더 와 닿을지 모르겠다. 존재 자체로 사랑받던 어린아이 시절을 지나고 나면 누구나 조건부적 사랑을 경험한다. 굳이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정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회화되어 드러나지 않을 뿐 인정과 사랑은 인간의 절실한 갈망 중 하나다.

성장하면서 사회의 인정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며 생각보다 그렇게 중요한 가치는 아님을 깨닫기도 한다. 오히려 사회적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신념을 가꾸어나갈 때 역설적으로 더 인정을 얻는 경우도 있고.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 무수한 깨어짐의 순간을 거쳐야 하리라. 태어나려는 자는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헤세의 문장처럼.

아직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에 있는 유아기 아이에게는 부모는 세계 그 자체다. 부모의 인정과 사랑이 아이에게 그토록 중요한 이유다. 들어는 봤지만 읽지 않은 책 <사랑의 기술>을 굳이 이제 와 읽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랑은 누구나 하는 것이기에 누구도 배우지 않는 분야가 아닐까.





당신의 화두는 무엇입니까.


누군가 삶의 화두를 묻는다면 언제나 사랑이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보면  사랑이 있다. 역시 믿음 소망 사랑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의 기술> 사랑도 몰랐던 시절 지적 허영심으로 읽은 고전. 언젠가 제대로 읽고 싶었지만 계속 미루어왔다. 살기도 바쁜데 무슨 사랑 타령인가 싶기도 했고.

매일을   없이 보내고 있지만 무언가 빠진듯한 나날, 책이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오답은 피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장을 넘겼다. 다소 지루한 ‘사랑의 이론 무사히 통과하면 사랑에 관한 에리히 프롬의 분석적 시선이 꽤나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모성애, 남녀 간의 성애, 자기애, 그리고 사랑이 상실된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논리적인 문체로 풀어낸다. 올바른 사랑의 태도에 관한 지침서랄까, 시대를 넘어선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도 있어서  오래전 이야기인데도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쳤다.



<사랑의 기술>은 사랑의 이론과 실천을 다루고 있는데 언뜻 어려워 보이지만 핵심은 제목 그대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감상적 감정이 아니며 객관성과 이성으로 훈련하는 기술이라는 것.




모성애에 관하여


프롬은 모성애를 젖과 꿀에 비유한다. 젖이 보호와 책임이라면 꿀은 삶에 대한 사랑과 행복감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경우 ‘젖’을 줄 수 있지만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는 많지 않다고 덧붙인다. 꿀을 줄 수 있으려면 어머니는 ‘좋은 어머니’ 일뿐 아니라 ‘행복한 사람’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을 창조한 뒤 ‘보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셨다. 저자는 이것이 부모는 아이로 하여금 ‘태어난 것은 좋은 일’이며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비유적 메시지로 본다. 때로 좋은 것을 먹는 것보다 해로운 것을 피하는 것이 건강 유지의 비결이듯, 아이를 위해 좋은 것을 주려는 마음 때문에 꼭 주어야 할 필수적인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모성애는 아이에 대해 불안하거나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규격화된 생활 방식을 통해 빈틈없는 균형 상태를 유지해 아이가 보내는 어떤 유의미한 커뮤니케이션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다. 이를 위해서 어머니는 명상, 독서, 음악 감상, 산책 등에 하루의 일정 시간을 할당하는 등의 ‘규격화된 생활 방식’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명상이나 산책은 아이보다 본인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들에 더 가깝다.

연세대 소아청소년과 신의진 교수는 아이를 키우는 데는 뜨거운 가슴만큼이나 방대한 지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성적인 태도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은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어쩌면 당연히 수반되어야 하는 모성애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위하기 이전에 어머니 역할도 행복하게 하고 싶은 본인을 위해서 말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하여


저자에 따르면 이상적인 부부의 사랑은 고된 생활의 피난처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움직이고 일하는 ‘팀’이다.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가 결코 사랑은 아님을 강조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각자 자기 자신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합일되는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자각하되 각자의 생기와 힘은 잃지 않는 것이 그 사랑 열매의 비결이랄까. 칼릴 지브란의 유명한 시 구절이 떠올랐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출 수 있도록’


자기애에 관하여


에리히 프롬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원칙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기애와 이기주의는 엄연히 구분된다. 사랑은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을 요구하며 사랑의 능력은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 속 생산성을 지향하는 데 있다. 즉 자기애가 사회 전반에 대한 사랑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부모 하는 세계의 온전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그 사랑을 자신과 사회로 확장시킨다.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은 어떤 대상에 피어나는 감정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삶의 태도다. 큰 의미에서 그것은 인간 실존의 목적이기도 하다. 받은 만큼 주는 자본주의 산물이 아닌 아닌 사회의 약한 존재,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까지 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결국은 삶


마치며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이제 와 꺼낸 이유는 아이돌 덕분이다. 일전에 BTS가 인스타그램에 영감을 받은 3권의 책 사진을 올렸는데 그중 하나가 이 <사랑의 기술>. 나머지 두 권은 <데미안>과 <영혼의 지도>인데 데미안이야 워낙 유명하고 최근 기회가 닿아 융 심리학과 사랑의 기술을 읽은 것. 삼십 대 중반 정도는 살아보아야 알 만한 깊이라 공감하며 고전의 매력을 실감했다. 이 책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린 BTS의 영향력도 실감.

사실 모든 좋은 책들의 효용은 삶에의 적용이다. 함께 읽은 융 심리학 해설서 <내 그림자에게 말 걸기>에서도 온전한 존재로 나아가는 길은 치유나 깨우침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양한 경험을 감당하고 삶의 변화에 창의적으로 탄력 있게 대응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

모성애에도 기술이 있다면 우선 정돈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정돈된 육아 생활이라니 쉽지만은 않겠지만 love yourself.


그리고 방탄소년단에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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