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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진 Apr 08. 2021

삶은, 농담처럼 가볍게

 아름답고 쓸모 있는 철학, 니체  <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

연년생 남매를 둔 생계형 워킹맘이다. 아이를 책으로 키우자는 '책 육아'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책 육아의 장점이라면 문해력을 높이고 자기 주도적 학습 습관을 길러준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학창 시절에는 무척 필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사회에 나와서는?


글쎄, 일머리와 공부머리가 따로 있듯 사회에 나와서는 책이 답은 아닐지 모른다. 송서(宋書)의 심경지전(沈慶之傳)에서는 세상 일에 경험이 없는 사람을 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다는 '백면서생'이라고 일컬으며 지양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사회가 요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와 경험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윤활유 같은 사회성은 덤. 읽어서 끝날 게 아니라 하나를 읽어도 실천을 해야겠지.


같은 이유로, 아이가 책을 좋아했으면 싶지만 한편으론 정작 꽤나 책을 좋아했던 내가 성공한 것도 아닌데, 과연 효용이 있는 걸까 싶은 회의감이 든다. 결론은 뭐 꼭 뭘 해야 하나, 그냥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하는 식이지만.


어쩌면 이것은 자기기만이다. 돌아보면 나는 '좋아하지 않지만 실용적인 것'과 '좋아하지만 쓸모없는 것’ 사이에서 늘 방황했다. 내향적인 기질로 태어났지만 외향적인 인싸가 되어야 할 것 같았고, 입시를 마치고 대학에 가서는 학교 홍보대사, 학생 기자, 인턴, 공모전까지 바쁜 대외활동을 했다. 패션업계 인턴을 마치고 미국계 광고회사에서 날고 기는 ‘알파걸'(당시 뭐든 야무지게 잘하는 여학생을 말하는 알파걸이 대세였다.)들 사이에서 짧은 회사생활을 경험한 후. 저녁이 없는 선배들의 화려한 삶이 부럽지 않았고 월급이 물건으로 들어올 것 같아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그나마 할 줄 아는 영어로 밥벌이를 시작했다.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되었고 이쯤에서 타협하기로 했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좋아한다는 명목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쓸모 있는 것은 자녀교육과 재테크가 아니겠는가.



차라투스트라는 뭐라고 말했을까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국가 부도의 날> 속 IMF를 겪은 세대, 문과 가면 취업이 안된다는 신문 기사를 읽으며 자랐다. 뼛속까지 인문계인 나는 그래서 이과를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잘못된 진로 선택으로 돌고 돌아 인문계로 가기는 했지만.)


철학은 사실 '문송'한 대표적인 학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떤 학문보다 절실하게 삶에 뿌리를 둔 것이 철학이다. 이대로 괜찮은가, 아니면 변하고 싶은가? 진정한 삶을 찾고 싶다면 니체를 읽어보라는, 흔한 마케팅 문구가 마음을 울리던 지친 저녁이었다.



창조하는 자들은 단단하다. 그러므로 마치 밀랍 위에 찍듯 수천 년 위에 그대들의 손을 찍는 것을
그대들은 더없는 행복으로 생각해야 한다..

단단하게 되어라!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 명성만큼이나 어려워 완독한 사람이 드물기로 유명하다. 철학자 이진우의 <인생에 한 번은 자라투스트라>는 니체를 쉽게 풀어 쓴 해설서다.


어느 쪽인가 하면 나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다. 단점이 있다면 이런 일상에서는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 그 어려운 일을 또 해낸 사람이 니체다. 니체는 매일 산책을 했고 그 반복 속에서 문득, "삶은 직선이 아니라 원"이라는 지혜를 얻는다. 매 순간 삶의 시작이고 종착지인 것이 원의 특성이다. 그렇기에 생성을 긍정한다는 의미도 되고.


그는 그렇게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에 인간의 고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한 권태. 그것까지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힘이 니체 사상의 핵심이다. 삶은 근본적으로 고통이지만 이 고통을 삶에 대한 긍정으로 바꾸는 프리즘과 같은 것. 그것이 영원회귀 사상이다. 이 삶의 순간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바랄 정도로 충실하게 살라는 이야기다. 과거와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 그리고 여기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인가? 그렇게 간단할 리가. 행복하려고 노력하면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니체의 통찰이다. 인용구에서 보이듯 중요한 것은 "단단해지기". 저자에 따르면 쉽게 말해 단단해진다는 것은 건강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단해진 태도는 삶을 긍정하는 능력을 가져다준다. 하, 건강이 행복한 삶의 핵심이라는 말을 이렇게도 어렵게 했다.


덧붙여 강조한 것은 "가볍게 살기" 다. 니체는 "신이 있다면 춤추는 신만 사랑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가벼운 삶을 추구했다. 니체가 말하는 삶을 즐겁고 명랑하게 살아갈 방법은 단단해지기, 그리고 가볍게 살기다. 평생을 원인 모를 통증과 싸우며 외로운 삶을 살았던 그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방랑의 끝에서 찾아낸 삶의 지혜다.


인간에게 대지와 삶은 무겁다. 그리고 중력의 영이 그러길 바란다!
그러나 가벼워지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출처: 구글)




위대한 결혼을 위한 다섯 가지 방법

차라투스트라에 이런 현실적인 비법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 니체는 위대한 결혼을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랑으로 결혼하지 마라.

둘째,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 마라.

셋째, 좋은 자식을 만들어라.

넷째, 채찍을 잊지 마라.

다섯째, 최고의 친구와 결혼하라.


이미 사랑으로 결혼해 영원한 사랑의 서약을 맺은 결혼 10년 차 여성은 아 이걸 어쩌나 싶지만, 공감되는 부분도 꽤 있어 정리해보았다. 그래도 자식을 만들었으니 건강하게 잘 키워보기로 다짐해보는 수밖에.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넷째, 채찍을 잊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니체는 맹목적 사랑에서 벗어나 상대방에게 완전히 매몰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도구를 채찍이라 불렀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은 폭력이며 서로에게 채찍이 되는 관계를 유지하라니. 역시 니체는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성공적인 결혼은 우정의 재능에서 나온다"는 다섯 번째 비법이다. 다른 것들에 비해 이것은 현 상황에서도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다. 우정은 상대방을 삶의 동반자로 여기지 결코 독점하거나 지배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상대방과 친구가 되면 결혼생활을 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니체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걸 알고 그랬나 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궁극의 기술

니체의 사랑은 헌신적인 자기 상실이 아니라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한 자기 극복이다. 자기를 경멸할 줄 아는 자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언뜻 모순되어 보이는 이 말은 자기의 싫은 점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어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흔히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와 같은 기독교적 "말랑한 위로”의 말들은 니체에게 통하지 않는다. 니체는 초인적인 사랑,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랑을 강조한다. 멀리 있는 사랑이란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가까이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에게 끌리는 사랑을 말한다.


니체가 말하는 자기 사랑법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숨겨진 자신을 찾아라.

둘째, 강요된 자기를 파괴하라.

셋째, 고상한 외관을 만들어라.

넷째, 자기만의 취향을 가져라.


첫 두 개의 조언은 서로 연결된다. 주변 사람이나 규범에 의해 정의된 자기의 관습적 모습을 성찰하고 극복함으로써 자기만의 가치를 찾도록 노력하라는 것. 마지막 두 개의 조언은 놀라우리만큼 시대를 앞서 간 니체의 통찰이 엿보인다. "진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라던 어린 왕자 속 이야기를 그가 들었다면 진저리를 쳤을 것. 그는 껍데기와 아름다운 겉모습, 영리한 맹목성을 갖추는 기술도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에게 항상 외관으로 드러나지 속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취향 존중. "그렇다, 와 아니다, 를 말할 줄 아는 아주 반항적이고 까다로운 혀와 위장을 나는 존경한다"라고 했던 니체 철학은 시대를 뛰어넘는 세련되고 실질적인 자기 사랑법을 제시한다.

어린왕자 (출처: pinterest)




아모르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사주나 별자리를 어느 정도 믿는 편이다. 통계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하면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네 하며 위안을 받기도 하고 팔자가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좋은 점도 있으려니 하고 마음을 바꿔먹기도 한다. 결정론적 운명관에 체념하는 것과는 다르다. 니체 역시,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이런 성격을 가진 것이 나의 책임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는 없어야 할 것은 하나도 없으며 나의 존재 역시 필연적이라는 뜻이다. 설사 남이 보기엔 부정적이고 열등할지라도.


필연적인 나,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 자기만의 가치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니체가 추구하는 초인의 사랑법이라 할 수 있겠다.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 머리말 중


“우리는 모두 자신의 별을 잉태하고 현실에 굳게 발을 딛고 살아가며, 고통 속에서도 동경과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신을 조금 더 견뎌낼 수 있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으며, 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내가 한 말 아니고 <인생에 한 번은 차라투스트라>저자의 원문 해석이다. "현실에 굳게 발을 딛는다"는 구절이 마음에 남았다. 이를 두고 어찌 철학이 삶과 유리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출처 :pinterest)


<차라투스트라>는 치열한 자기 인식을 통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지상에서의 삶의 중심을 찾아가는 성장소설 같은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기 극복을 통해 초인이 되면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 마지막 장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이 되지 못한 마지막 인간들을 만난다. 그들은 스스로 만든 법칙과 이룩한 성과들로 인해 고통받았다. '초인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니힐리즘으로 알려진 허무주의의 등장이다.


웃으며 긍정하는 삶

니체는 그러나 웃음이 없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라고 했다. 즉, 진지하면 망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매일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 초인적인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모두 잠든 새벽 아이를 재우고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 니체 철학을 읽고 있자면 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나도 별까진 못해도 불가사리라도 잉태해야 할 것 같은 마음. 어제는 29개월 된 둘째가 자다가 깨서 울었다. 살펴보니 몸이 가려워 그러는 것 같다.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자주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데 이번엔 무슨 일인지. 순간, 그 빛나던 고귀함과 치열함은 모두 하찮아진다. 내 아이가 아픈데 글쓰기고 꿈이고 무엇이 중요한가 말이다. 놀라운 건 니체 역시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의 일과 자기의 아이를 사랑할 뿐이라고.




얼마 전 종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 첫 회에 주인공 피영(박주미 분)과 초등학생 딸의 대화 중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삶이 의미만 있으면 무슨 재미야? 아프리카 난민 구호활동이 의미 있지만, 엄마는 그거 하면서 웃음이 나?”

인생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 철학적 지식이 얕은 독자는 니체가 말하려는 것은 결국 그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멋대로 해석해본다.

“니체 철학을 읽는다”는 말이 주는 허세가 있다. 살기도 바쁜데 철학은 무슨. 하지만 감히 나는 니체의 팬이라고 말한다. 철학이야말로 삶과 진정 맞닿아 있으며 니체야말로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실용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을 아팠고, 고통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 사상가다. 그의 철학이 아직도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오늘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에 진심이지만, 농담처럼 가볍게.
오늘은 가족들과 많이 웃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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