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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Apr 04. 2021

감성충의 봄날은 간다

꽃비내리는 날, 꽃시장에 가다


며칠 전부터 다섯살 꼬마가 씨앗을 심고 싶다고 했다. 집에 있던 볶은 해바라기씨를 아파트 화단에 심고는 유치원 등하원을 할 때마다 싹이 나왔는지 들여다보았다. 그나마 있는 식물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데다 생화라면 선물로도 아깝다 생각하는 편인데, 상황이 이러니 뭐라도 길러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 부모의 마음이란.

마침 곧 식목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두 아이를 데리고 꽃시장에 갔다. 4월의 첫 주말, 꽃비가 내리던 아침이었다. 보슬보슬 봄비라기엔 꽤 거셌고 네살 다섯살 남매와 하우스 사이를 이동할 때마다 우산을 폈다 접었다, 꽤나 번거로운 여정이었다. 보이는 물 웅덩이마다 장화신은 발로 첨벙첨벙해보느라 바쁜 둘을 보고 있자니 이거 괜히 날궂이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내 마음과 달리 둘은 그것조차 재미있는지 연신 재잘거렸고.



십 년전 봄, 내가 던졌던 부케는 옅은 분홍색 작약이었다. 꽃말은 수줍음. 예비신부였던 계절, 부케를 고르며 수줍었던 마음을 잠시 떠올렸다. 꽃은 언제나 좋았던 기억을 연상시킨다. 결혼식, 입학식, 생일, 특별하지 않은 날의 꽃 선물까지. 꽃을 보면 마음이 밝아지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물론 그 자체로도 참 예쁘다.

인스타 어린이답게 얼른 사진부터 찍고 감상에 젖으려는데 제일 아래 있던 하얀색 작약을 보고는 “양파다 양파” 하는 네살 꼬마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그러고보니 깐 양파처럼 생기긴 했다.




어제는 수업 전 창 밖을 보고 있던 여학생이
“선생님, 주말에 비 온다던데 그럼 벚꽃들은 다 어떻게 되는거에요?”
하고 물었다. 아쉽지만 시즌이 끝나는거야, 내년에 만나는 거지, 했더니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아, 벚꽃의 인생은 짧구나,” 그러는 것이다. 엄마 미소를 부르는 귀여운 대답에 요즘 애들 참 감수성이 풍부하네, 하고 있는데 그걸 들은 옆에 있던 남학생이 우스꽝스럽게 “어우 감성충!” 하기에 나는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감성충이라니. 설명충, 진지충이 있는 줄은 알았어도 감성충은 처음 들었다. 애초에 썩 좋은 뜻은 아니지만 딱히 나쁘지도 않았다. 진지한 분위기라면 질색하는 요즘 아이들의 재치처럼 느껴졌다. 오히려 좀 정이 가는 벌레랄까. 어쩌면 나와 같은 종족이라 그런지도?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에 젖어 하릴없이 떨어지는 벚꽃을 보고 있자니 벚꽃의 인생은 짧다던 여학생의 말이 떠올랐다. 벚꽃은 내년이라도 있지 내 인생은 한번뿐인데. 어느새 서른 중반을 넘어버린 감성충은 주책스럽게 눈물이 났다. 스피커에서는 내가 어릴 적 엄마가 자주 쳤던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에 와서는 다섯살 꼬마가 그토록 하고 싶다 노래를 하던 꽃씨를 심었다. 작은 화분과 모래놀이할 때 쓰던 모종삽을 준비해 놀이 매트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흙을 담뿍 담아 정성스럽게 씨앗을 넣고 물도 주었다. 도닥도닥하는 손놀림이 제법 어린이 티가 났다.



파리지옥과 네펜덱스는 대표적인 벌레잡이식물들이다. 나도 아이의 자연관찰 전집에서 배웠다. 파리지옥은 유인 냄새를 뿌려 파리, 나비, 거미 등의 곤충을 산 채로 먹으며 일단 먹이를 삼키면 소화가 완전하게 될 때까지 트랩을 닫아 놓는다. 맛있는 냄새를 따라갔을 뿐인데 하나 뿐인 목숨을 내 놓다니 파리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겠다. 하지만 육식을 하는 식물이라니, 확실히 아이들이 열광할 만한 극적인 요소다. 아이는 아마존 정글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크기를 상상했는지, 플라스틱 화분 속 파리지옥의 손톱만 한 잎크기를 보고는 왜 이렇게 작냐며 아쉬워했다.

베란다 작은 화단에 파리지옥과 네펜덱스, 그리고 접시꽃 씨를 심은 화분을 나란히 놓았다. 아이는 삼십 분마다 달려가 싹이 나왔는지 확인했다. 도대체 언제 꽃을 볼 수 있는지 주말 내내 스무번 쯤 들은 것 같다. 나는 성가신 마음을 애써 감추고 “하룻밤 이틀밤 어어어 뽀드득 뽀드득 뽀드득 싹이 났어요” 동요를 부르며 몇 밤 더 자야한다고 말해주었다. 이쯤되니 아무래도 씨앗 위에 흙을 너무 많이 덮은 것 같은데 이러다 싹이 나오지 않으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나 싶었다.



다음 날 아침, 비가 갠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다 져버렸을 줄 알았던 벚꽃은 아직 꽤 화사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또 화분 앞에 달려가는 꼬마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분무기에 물을 담아 건네며 “사랑해, 쑥쑥 자라라,” 하면서 주면 더 잘 자랄거라고 말해주었다. 엄마가 너에게 사랑을 주듯 너도 꽃에게 사랑을 주면 더 잘 자랄거라고.

감성충이면 좀 어떤가, 나는 못말리는 감성 덕분에 아이와의 모든 순간을 더 감사하게 된다. 내년에는 또 새로운 봄이 오겠지.


감성충의 봄날은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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