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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Apr 15. 2021

연애와 육아의 공통점

인생, 재수강은 어렵습니다만


서른여섯이라는 나이는 참 애매하다. 만 34세 이전까지 청년 대출이 가능한 것을 생각하면 분명 청년은 아닌데, 그렇다고 중년이라기엔  깊이가 좀 부족한 것 같고.


20대 때 읽었던 이창래 소설 <영원한 이방인> 속 주인공이 이혼 직전 아내로부터 받은 메모에 “당신은 B+인생,”이라고 적혔던 페이지가 가끔 떠오른다. 딱히 나쁘지 않지만 뭐 하나 탁월하지도 않은 내 인생 역시, 재수강조차 할 수 없는 B+인생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미 대학을 떠난 지 십 년이 넘은 지금은 그런 비유를 하는 것조차 민망한 마음이 들지만.




김겨울 작가의 <책의 말들>을 읽었다. 시집만 한 두께에 가독성도 좋아서 퇴근 후 저녁 아이가 좋아하는 소면이 삶아지길 기다리며 읽기 시작해 육아 퇴근 후 절반쯤 보다, 새벽에 일어나 다 읽었다. 그만큼 좋았다.


<책의 말들>은 깊이 있는 사유의 흔적과 다방면으로 치열한 읽기, 책을 사랑하는 생각 있는 젊은 지성의 고민이 담긴 책 에세이다. 적확한 단어로 리듬감 있게 엮인 밀도 높은 글들을 곱씹으며 아, 이 사람 너무 멋지네, 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금 부러워졌다.



무언가를 이루는 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고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되어버린 내 인생을 두고도, 이봐요 당신 아직 한창 때에요, 라는 말로 여전히 위로받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젊음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자. 이 책의 저자는 피아노 실력자에 춤도 잘 춘다. 이미 몇 개의 앨범을 낸 뮤지션, 다작의 작가이자 라디오 진행자, 17만 구독자의 성공한 북튜버인 성덕(성공한 덕후)을 두고 부러운 것이 어디 젊음뿐이랴. 확실한 취향과 선호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 사람은 매력적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부럽다고 말하는 것도 면구스럽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서 등장한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분야에서 탁월해지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당신도 1만 시간을 노력하면 이룰 수 있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관건은 개인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일만 시간을 생계에 내어주지 않고 한 분야에 오롯이 쓸 수 있도록 조성된 환경.


성공한 인재들 뒤에는 안정된 가정환경도, 지혜롭고 능력 있는 부모도 있었다. 다섯 살에 작곡을 했다는 모차르트 역시 아버지 레오폴트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천재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궁정 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음악 교육자였던 레오폴트는 아들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열성으로 천재성을 키운다. 기록에 의하면 모차르트는 여섯 살부터 10년 2개월 2일 동안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했는데 그 덕분에 모차르트는 상류층과의 밀접한 교류와 유명세를 누리게 되었다고. 역시 일반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모차르트 같은 천재는 당연히 아니고 레오폴트처럼 능력 있는 부모와도 거리가 멀다. 다만 1만 시간의 법칙은 분명 능력주의의 신화의 대척점에 선 주장이라는 것. 그리스 철학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제 덕분이라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랄까. 자기 방어와 합리화의 귀재인 나 같은 독자에게 “오피셜리 환경 탓”을 할 수 있는 이런 이론은 심지어 위로가 된다. 모든 것이 내 노오력과 의지 탓이라고 생각하면 좀 슬프지 않은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중요한 것이 ‘의지보다 환경’이라는 사실에는 희망적인 면도 있다. 사람의 의지란 본래 그렇게 믿을만한 것이 아니다. 불타는 의지보다는 꾸준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쪽이 훨씬 쉽다는 것은 이미 많은 자기계발서가 증명하고 있다.

 



다시 ‘겨울’로 돌아가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나이가 되도록 별다르게 이룬 것이 없는 나에게, 아직 한창때에 조차 닿지 않은 건강한 네 살의 딸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삐ㅡ. 엄마의 소망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은 부모 자격시험으로 치면 대표적인 오답이다.


하지만 아직 가능성은 무한하다. 누가 말하지 않았던가, 꿈꾸는 것은 자유라고. 글이든 춤이든 노래든 악기든, 혼자서도 충분히 인생을 즐기며 스스로 빛을 발하는 사람. 좋아하는 콘텐츠의 소비자로 그치지 않고 생산자로 거듭나는 전인적 인간으로 자라나기를, 엄마이자 인생 선배로서 조심스럽게 소망해본다.


 


미래를 꿈꾼다는 점에서 육아와 연애는 닮았다. 연애를 꼭 할 필요는 없지만, 잘하면 확실히 세상이 좀 더 아름답다. 함께 할 수많은 일들을 계획하며 설레고, 하루 중 많은 시간 아이를 떠올리다,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저 더 해주지 못해 아쉽다.


아이가 웃을 생각을 하면 삽질도 마다하지 않는 꿈같은 연애가 끝나 결혼에 이른다 해도, (물론 꿈에 그렸던 결혼 생활과는 좀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 역시 나쁘지 않다.


어쨌거나 우리가 가족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얼마 전 친구의 추천으로 구독했던 '밀라 논나' 유튜브 채널에서 알람이 떴다. 잘 생긴 청년 아래 '논나 아들'이라는 큰 썸네일이 눈에 띄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런던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몸 좋고 목소리 좋은(중요) 잘 자란 청년이 엄마와 미술관 관람을 한 후 집에 돌아와 파스타 요리를 해주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였다. 브이로그는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도 이건 꽤 재미있어 끝까지 다 본 후 댓글을 읽다 그만 빵 터졌다.


"비현실적이라서 부럽지도 않다."에 한 표.


그 아래,

“진지하게 육아 조언받고 싶어요.

어떻게 키우셨나요. 저희 아들은 다섯 살이에요."


이어지는 "저도요. 저희 애는 42개월."


그렇게 꿈꾸는 육아맘들의 ‘귀여운’ 댓글들에 미소 지으며 나는 조용히 '좋아요'를 눌렀다.



생각해보니 인생은 원래 재수강이 어렵다. 그래서 종족 번식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 다고 하면 역시 좀 위험한 발언일까. 결과야 어찌되든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오늘의 일상 속 활력이 된다.


이상, 모차르트도 아니고 레오폴트도 아닌 그저 아이를 사랑하는 유치원생 엄마의 ‘귀여운’ 일기였습니다. 혹시 살짝 미소지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를...(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이야!)


중년을 코앞에 둔 엄마를 꿈꾸게 해 주신 김겨울 작가님, 영감을 주신 밀라논나 디자이너님께 감사드립니다. 비현실적으로 잘 자라 주신 ‘논나 아들’님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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