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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May 01. 2021

책은 친구가 아니잖아요.

어쩌면 책은 친구가 맞을지도 몰라 (EBS 다큐 <당신의 문해력>)


심심해를 달고 사는 다섯 살 아들을 키우는 중이다. 웬만해선 책보 자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따라 하도 지루해하기에 “책 볼까?” 하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


 "그것도 심심해. 책은 친구가 아니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 전 읽을 책 권수를 정해주면 더 못 봐 아쉬워하던 아이. 자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책은 친구가 아니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에 적잖이 마음이 쓰였다. 무엇보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친구로 만들어주고 싶은 책 육아맘이 아닌가!


내 정체성이야 그렇다 치고, 책은 친구가 아니라는 대답의 배경이 궁금했다. 태생이 몸으로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기는 했다. 그림과 만들기에 빠져 뭘 만들어 내기도 하고. 하지만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아무리 심심해도 책을 뒤적이는 일이 없는 것.


오히려 책을 스스럼없이 친구로 여기는 아이는 네 살인 둘째다. 주로 앉아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 차이뿐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성별의 차이도 있겠다. 거꾸로일망정 자연스럽게 책을 꺼내 들고 아무 말 읽기를 하다, 상상 속 청중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신기해서 뒤에 가 살며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어김없이 읽어달라고 하는 아이다. 엄마가 바쁠 때만 골라서 그러는 걸 보면 그저 옆에 있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둘째 아이에게는 '책을 좀 좋아했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을 비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남매가 연년생인 탓에 너무 일찍 오빠가 된 첫째 아이의 마음이 상할까 늘 노심초사했다. 남매가 크면서 각자 자기 책을 읽자고 가져오는 잠자리 독서 시간에는 늘 오빠 먼저, 둘째에게는 대신 책을 가까이 대면 읽어주는 세이펜을 쥐어 주었다.


'책 육아'라는 용어를 유행시켰다는 푸름 아빠 육아서를 보면 엄마 욕심을 들키지 않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이 있다. 우리 아이가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을 아이가 알아챈 순간 아이가 책 읽기와 멀어진다는 것. 부담은 아이나 어른이나 싫다. 시켜서 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적당한 자극으로 독서에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 말이야 간단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나는 “적당히”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다.




EBS 육아 다큐 문해력 프로그램을 보았다. 만 네 살을 대상으로 한글 소리 인식에 대한 실험 결과에 관한 다큐였다. 사례로 소개된 아이들은 대체로 책을 좋아하지 않거나 한글에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엄마들은 공통적으로 아이의 학습에 관심이 많았고, 아이의 시선보다는 "이건 몇 개야?" "이건 영어로 뭐라고 하지?" 연신 질문을 쏟아내며 지식을 주입하기 바빴다.  


잠시 나를 돌아보았다. 일반적으로 만 4세가 넘으면 '영아'에서 '유아'로 분류된다. 유아 학습의 시작도 그때. 보통 5세에는 한글에 대한 관심, 6세에는 읽기, 7세에는 쓰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들었고, 나도 모르게 한글에 대한 압박 아닌 압박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아이가 어릴 때는 뭐든 신통하고 대견하다. 먹고 자고 싸고만 잘해도 효자, 물건의 이름이라도 기억해 말할라치면 영재가 아닌가 하고 설레발을 친다. (아쉽게도 나는 내 아이가 영재인가를 의심해본 적이 없지만) 욕심과 조급함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뭐든 일찍 시작하라는 육아 조언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아직 어리니 몰라도 괜찮다, ' 하는 태도라면 나도 아이도 마음이 편할 테니. 적기 교육이란 '결정적 시기'와 민감한 시기를 놓치지 않는 조기교육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독서 습관에 대한 흥미를 붙여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휴 피곤하게 뭘 그렇게까지, 하는 생각도 한편 들지만 아이가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교육을 받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은 모두 같다.


육아야말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분야일지도 모른다. 그 전략이 통하는가가 관건이지만.



어떻게 하면 '다시' 아이에게 책을 친구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Back to basic. (내가 어릴 적 인기였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3집 앨범의 이름이기도 하다. TMI) 유아기 학습의 기본은 '재미'다. 무작정 엄마의 욕심으로 들이대서는 될 일도 안된다. 아이의 취향과 성향을 고려한 엄마의 치밀한 '넛지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넛지란 강압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이다. 이를테면 음식의 종류는 바꾸지 않고 진열이나 배열만 바꾸는 것만으로도 특정 음식의 소비량이 25% 증가하거나 감소했다는 사례. 건강에 이로운 음식을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 넛지가 돋보인다.


이를 활용해 혹자는 활동적인 아들이 책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 아이가 좋아하는 장소 구석구석에 책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가 자주 여는 서랍 안에도 한 권씩.


책은 친구가 아니라는 아이의 말에 “어쩌면 책은 친구일지도 몰라,”라고 말하고 싶었던 엄마의 넛지를 몇 가지 정리한다.


1. 아이 책을 내 책 보듯

가끔 아이들이 잘 놀고 있을 때, 구석에 앉아 가만히 책을 읽는다. 그러면 어김없이 아이들이 다가와 내가 보던 책을 보겠다고 한다. 엄마가 본인들보다 관심 있어하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한 것. 그 기억이 떠올라 반대로 아이의 책을 들고 앉아 재미있게 보았다. 역시가 역시. 소파에서 말타기를 하던 첫째가 책에 관심을 보이며 달려와 앉았다.


EBS 문해력 프로그램에서 제시했던 조언도 이와 비슷했다. 엄마가 아이 책을 펼치고 깔깔거리며 웃으라는 것도 분명 아이의 관심을 끌 만한 방법이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읽으면서 정말 재미있는 책은 아이도 재밌어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책이었다. 그림도 귀엽고 내용도 흥미로운데 다양성의 가치를 엉뚱한 방식으로 전달해 무척 사랑스러운 책이다.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책



2. 책 정리는 못했지만

고백하건대 내 책도 잘 정리가 안 된다. 다 읽지 못한 책들을 쌓아두고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라며 몇 달째 책 표지만 읽고 있는 것도 있다. 읽어야 한다는 답답한 마음이 오래 가면 부담이 된다. 혹시 아이에게도 그럴까 싶어 지난 주말 책 정리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꽂힌 책들을 분류하려고 바닥에 펼쳐놓으니 둘째가 달려와 책을 하나 내민다. 읽어달라는 뜻이다. 하는 수 없이 첫 장을 넘기는데, 첫째가 와 본인 책도 읽어달라며 떼를 쓰는 것. 양육자가 혼자일 때 아이가 둘 이상이면 겪게 되는 문제다. 일단 기다리라고 하며 <어스본 출판사의 플랩북>을 건네주었다. 조작 북은 아이가 영아일 때만 유용한 것이 아니다. 플랩이 많아 하나씩 열어보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보았다.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한 번씩 책장을 뒤집어 보는 것도 아이디어를 얻기에 좋은 방법이다. 결국 계획했던 책장 정리는 하지 못했지만 책으로 놀았으니 소기의 목적은 이룬 셈이다.


어스본 플랩북


3. 책 선정에 변화주기

아이가 이미 책을 좋아하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아이가 책 보다 다른 것에 흥미가 있거나 활동적인 경우, 무작정 읽어주려는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한 발짝 물러서서 변화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보니 집에 있는 책들이 너무 학습 위주의 전집이었나 싶다. 과학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과학 전집을 들였고, 그리기 만들기에 흥미 있어하기에 어린이 명화 전집을 들였다. 세계문학은 읽어야지 하면서 어린이 세계 문학 전집을 들였고, 전래 동화도 마찬가지. 물론 개중에는 좋아하는 공룡, 로봇, 자동차가 등장하거나 <잭과 콩나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와 같은 공공의 적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반응이 괜찮다. 문제는 아무리 흥미진진한 이야기 책이라도 몇 번 읽으면 지루하다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한다고 자꾸 같은 책을 내밀었던 건 아닌지, 배경 지식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재미없는 책을 권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했다. 지식 전달 위주의 책들은 우선 다 넣고, 글밥이 적은 창작 동화들을 꺼냈다. 소재는 감정, 친구 관계, 유치원과 가족 등 아이의 일상생활에서 공감될만한 것들로.


웅진북클럽 <배꼽손> 창작동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책에 관해서도 어른이나 아이나 비슷한 마음일지 모른다. 경제 경영, 사회과학서를 읽으며 유용한 지식을 얻는 것도 좋지만 책 자체가 좋아지는 경험은 내 감정을 공감해주는 에세이나 빠져드는 소설을 읽을 때다. 아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일단 책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게 한 후 지식류를 접해도 늦지 않을 거란 생각이다.


아이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골라와야 하는 것은 맞지만,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아이의 발달 과정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바꾸어 주는 것은 양육자의 몫이다. 이번에도 뒤늦게 아는 자 에피메테우스는 관련 육아서를 몇 권만 보아도 다 아는 기본적인 원칙을 몸소 겪고야 깨닫는 중이다. 육아서는 아무래도 현실과 같을 수 없다.


4. 아이 취향 그림책이 따로 있나

EBS 문해력 프로그램에서 또 강조했던 것은 '말놀이'다. 음가, 즉 글자가 지닌 소리를 인식하기에 그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견해였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리듬감이 있는 문장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언어유희, 운율감은 기본이다.


내친김에 도서관에 들렀다. EBS에서 추천한 도서는 <고구 마구 마> <엉덩이 학교> <말놀이 동시집> 등이었다. 평소라면 '내 취향'이 아니라서 빌리지 않았을 책들을 몇 권 빌렸다. 저녁에 첫째 아이와 <고구 마구 마>를 함께 보았는데 세 번이나 다시 읽고 혼자서도 또 읽었다. 워낙 글자에 관심이 없던 아이라 글자를 가리키며 고구 마구 마, 마는 이 마냐는 질문에는 조금 놀라기까지 했다. 책은 친구가 아니라며 한글 좀 알려주려고 하면 귀찮아하던 아이가 아니던가. 유명한 책은 이유가 있구나. 엄마 취향 그림책이 아닌, 아이 시선에서 고르는 그림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이든 다 비슷하지, 좋다는 그림책을 꼭 들여야 하나, 했던 나의 안일함과 오만함도 함께 반성했다.



5. Sense of Control.

우리는 스스로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자존감이 높아지며 행복하다고 느낀다.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 돌 이후가 되면 뭐든 스스로 하려는 시기가 오며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언급했듯 첫째 아이보다 둘째 아이가 책을 더 스스럼없이 가까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일 때 뭐든 더 즐겁다. '아이 취향'으로 엄마가 책을 골라 주더라도 그 안에서 먼저 읽고 싶은 것을 고르게 하는 등 아이에게 통제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사소하지만 중요한 팁이다.




뮤지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씨는 이적을 비롯해 세 아들을 사교육 없이 서울대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저서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에서 그는 아이를 '키우기' 보다는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얼핏 들으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은데, 부모가 먼저 성숙해야 하고, 아이들 삶에 섣불리 끼어들지 않는 것, 아이의 존재를 믿고 지켜보는 것이 진정한 육아라는 의미다. 진정 소신 있는 분이네 하며 '엄마의 성장'에 밑줄을 그었다.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할 것이 아니라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임을 또 한 번 마음에 새겼다. ‘참을 인’도 세 번.


육아서는 실용서가 아니라 철학서라고 했다. 한 문장을 읽더라도 본인의 삶에 비추어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라는 뜻이다. SNS 속 넘치는 육아서와 육아법의 향연을 보며 불안감이 올라올 때 이 조언을 떠올린다. 육아서의 한 부분을 읽더라도 그것을 내 상황과 적용해 실천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이의 독서도 비슷하다. 무작정 많이 읽는 것보다는 한 권을 읽더라도 교감하고 성장할 수 있는 책 읽기를 할 때 얻는 것이 더 크지 않을까.


나는 마흔을 코앞에 둔 이 나이까지도 아직도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로서는 고작해야 만 4년. 어쩌면 엄마로서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이니 고만고만한 육아서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여전히 일정 수요를 유지하고 있겠지. 솔깃한 조언들은 차고 넘치며 강한 어조로 말하는 전문가의 조언을 들으면 혹한다. 때로 그 대열에 합류해보겠다는 의욕으로 설레기도 하고, 아, 나는 그렇게까진 못하겠다 싶어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육아 역시 어쩔 수 없이 엄마의 삶의 방식과 연결된다. 그나마 좀 살다 보니 나는 유행하는 자기 계발서보단 고전에 더 마음이 끌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다양한 타인의 삶에서도 공감과 위로를 얻을 때가 있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인류의 지혜가 정답 없는 인생 속 '나만의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육아도 그렇다. 누군가의 좋아 보이는 삶이 내 길이 아니듯 누군가의 성공했다는 육아가 내 방식이 될 수는 없다. 변수가 무궁무진한 우리네 삶이 아닌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조리원에서 '아기 안는 법'을 검색했었다. 도무지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것이다. 3킬로도 채 안 되는 생명체를 잘못 만지다간 부서지기라도 할 것 같아 쉽게 손도 못 댔다. 목욕시키는 건 또 어떻고. 모든 게 처음이었고 서툴기만 했다.


지금은 아기도 번쩍번쩍 잘 안고, 관련 책이 왜 없는지도 안다. 하다 보면 다 알게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나면 기억조차 못할 만큼 사소하기도 하고. 가끔 돌쟁이 아가를 키우는 엄마들의 고민을 들으면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떠올리듯 아,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때는 그게 너무 중요하고 어려웠는데 싶다. 어쩌면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부모 입장에서는 이 참을 수 없이 사소한 독서 습관과 한글 떼기 고민이 귀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오겠지, 다 키워서 다행이다 싶으려나. 아무리 최선을 다 한들 후회와 아쉬움이 없기란 어려울 것이다. 역시 육아에도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피해 가고 싶을 뿐이다.


상대적인 것이라고 해도 아직 경험이 적은 엄마로서 육아에 대해 말하기란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두서없는 육아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육아서 조언대로 해 봤는데 잘 안되네. 나만 이런 건가,” 싶은 누군가에게, 매 순간이 처음이라 헤매고 있는 보통 엄마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그리고 쏟아지는 육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사히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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