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진 May 15. 2021

'과학서'라 쓰고 '인생'이라 읽은 책

이나가키 히데히로, <전략가, 잡초> 책 리뷰

사주팔자에서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불, 물, 나무, 금, 토양 오행 중 하나의 특징적인 성질을 가졌다고 본다. 각각의 오행은 음, 양으로 나뉘는데 이를테면 나무를 곧게 뻗은 큰 나무 (갑목)과 덩굴 같은 나무(을목)로 구분하는 식이다. 얼핏 보면 갑목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싶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갑목은 자존심이 세고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에 외부의 풍파에 쉽게 쓰러질 수 있지만 을목은 어디서든 적응을 잘하는 '잡초 같은' 형질을 가져 생활력이 강하다고 풀이된다.



그만큼 잡초의 생명력은 유명하다. "밟히고 또 밟혀도 일어선다."와 같은 묘사가 어울리는 풀이지만 이 책 <잡초, 전략가>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잡초는 밟히면 일어서지 않는다. 대신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써서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남긴다. 잡초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족 번식이기 때문이다. 잡초의 기본 전략은 '싸우지 않는 것'.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최고의 전술이다. 강한 식물과 정면돌파하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목적을 달성한다. 대신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자유롭다. 크기나 생활 패턴, 자라는 방법에서 능숙하게 플랜 B를 적용한다. 정말 소중히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나머지 분야에서는 유연해져야 한다는 잡초의 지혜가 무척 와 닿았다.




한참 취업 준비로 힘들어하던 20대에  다른 면접자들에 비해 부족한 발표 능력과 내성적인 성격이 고민이었던 적이 있었다. 근사하게 발표를 마치는 나를 상상했지만 사람들 앞에만 서면 목소리가 떨렸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셨던 아버지는 그때 "조직에서 활발하고 말 잘하는 사람만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각자 필요한 역할을 하며 공동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 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내가 조직 생활을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그 말씀이 크게 위로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연의 이치이기도하다. 대단해 보이는 생물이 있는가 하면 가녀린 생물도 있다. 그러나 그 생물들은 모두 온리원 역할을 하며 어떤 생물이 빠지면 그 균형이 흐트러져 성립되지 않도록 연결고리가 형성돼 있다. 그것이 생태계다.


잡초는 말하자면 분류되지 못한 풀이다. 인간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남자와 여자 문과와 이과 하는 식으로 분류하고 평균의 잣대를 적용한다. 나 역시 평균값에서 동떨어지면 오류 값으로 치는 좁은 세계에서 튀지 않는 삶을 살아가라고 배웠다.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 보면 상식과 다른 방법으로 성공하는 삶을 사는 개성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잡초에게 중요한 것은 환경에 맞게 변화해 생존하는 것이지 분류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나만의 개성'이라는 종목에서는 이기는 사람도 지는 사람도 없다.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으로 빛나는 윤여정씨가 수상소감에서도 말하지 않았던가 . “우리는 각자 다른 역을 연기했고, 서로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라고. 인생이라는 영화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이기도 하다.


<월든>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은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라고 했다. 이 책은 잡초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며 그것을 인생사에 사려 깊게 적용한다. 읽다 보면 저자의 식물학자로서의 식견과 인간사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탄하게 되는데 그것이 또한 놀랄 만큼 감동적이며 삶에 위로를 준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과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은 . 부모로서 아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가치가 담겨 그림책으로도 나오면 좋겠다 싶었다. 정재승, 최재천, 김대식 교수의 글처럼 과학 지식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대중 과학서를 좋아하는 분들께도  추천드리고 싶다.  분야의 전문가가 연구 대상을 새롭게 보고 장점을 찾아내는 과정 속에서 지식이 어떻게 지혜로 확장되는지배울  있는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의 핫핑크 앵두 장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