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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May 06. 2021

아들의 핫핑크 앵두 장화

뇌는 남녀로 나눌 수 없다. <젠더 모자이크>

최근 읽은 흥미로운 뇌 과학서 <젠더 모자이크>는 우리에게 익숙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론에 반론을 제기한다. 인간의 뇌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며 일생을 통해 계속 변하는 고유한 모자이크라는 것. 남자아이들은 블록이나 트럭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좋아하는 등의 성향은 흔히들 말하는 ‘서로 다른 뇌 구조’ 때문이 아니다. 태아 때부터 일생 동안 성별을 포함한 복합적 요인이 상호작용함으로써 만들어내는 가변성이 뇌의 본질이다. 심지어 임신 기간 산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태아 뇌의 성별적 특성을 바꿀 정도라고.



사회적 성 역할 개념인 젠더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뇌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언급된다. 이를테면 독서할 때의 우리 뇌. 조지타운대 의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들은 혼자 책 읽기에 능숙해질수록 독서 중 활성화되는 신경 회로가 점점 ‘덜’ 활성화된다. 책을 읽으며 두뇌의 다른 영역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든 많이 한다고 더 좋은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양한 뇌 과학 사례가 등장해 다소 혼란스러운 느낌은 있었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실하다. 두 개의 젠더가 존재한다는 환상은 그저 신화일 뿐이며 우리는 모두 젠더 이분법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것.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 것은 선천적인 특성이 아니라 "남자는 울지 않는 거야"라는 사회적 인식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상화된 남성성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남성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더 우울증과 약물 남용에 시달린다고. (책에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적 아름다움에 대해 스트레스가 큰 것은 여성도 마찬가지다. )


아빠 엄마의 양육 역할 역시 학습의 결과물이다. 성 역할은 생물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서로 달라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특정 젠더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할 때조차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스스로의 생각과 타인의 기대가 행동을 '젠더화' 한다. 예를 들어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자신의 실제 생각보다 남들 앞에서 성공에 대한 기여도를 낮게 평가하는데 '겸손'이 여성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또한 남성은 자신의 신념을 더 고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자들은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는 가까운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했다.




네 살 다섯 살 남매를 키우는 중이다. 혜택이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야 매일이 어린이날 같겠지만 여하튼 국가에서 이들을 위해 지정한 공휴일, 사계절 내내 장화를 신고 싶어 하는 네 살 여자 아이를 위해 집을 나섰다. 이거 어때,  내가 반짝거리는 실버 바탕에 핫핑크 앵두 무늬가 된 장화를 집어 든 순간 다섯 살 남자아이가 "어, 예쁘다"며 본인이 신겠다고 선수를 쳤다. 아무래도 좀 여자애 것 같은데.


실제인지 환각인지 장화에 꽂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이거 본인이 고른 거예요, " 하고 말하고 싶었던 스스로를 돌아보며  역시 젠더의 이분법빠진 른임을 실감했다. 게다가   여자 아이가 좋다고 고른 것은 (아마도 아들 맘이 많이 선택했을) 쨍한 파랑색 장화였다.


그러거나 말았거나 핫핑크 앵두 장화를 신은 다섯  남자아이는 신나하며 백화점 어린이날 행사 중인 인형탈과 사진도 남겼다. 남매의 아버님은 둘의 장화가 서로 바뀐  같다고 했지만 본인들은 크게 상관이 없어 보였다.

  



여전히  역할에 대한 논의는 끝이 없다. 끝없는 투쟁으로 사회적인 인식도 많이 개선되었지만  역시 여전한 스스로의 꼰대로움에 종종 놀란다. 이를테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다섯 살 아들에 "남자아인데도 색을 다양하게  칠하네."라고 한다거나 씻기를 좋아하지 않는 네살 딸에게 "여자애가 씻는  싫어하면 안되는데"하고 말하는 식이다. 책에서 말하는 '능력 장애' 여자 아이와 '감정 장애' 남자아이를 길러내지 으려면 나부터 조심해야한다.


여성과 남성이 없는 미래를 꿈꾼다는 저자는 인간의 모든 가능한 특질이 갖는 엄청난 다양성을  개의 상자에 욱여넣는 대신 다양성의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사랑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인간이 해도 되는 것이라면, 당신이 해도 된다고. ( 대목을 읽자마자  이렇게 섬세한 표현이라니 저자는 여자가 틀림없다,  생각하긴 했다.)


사실  그까짓 장화 색이 대수겠는가. 그저 선호가 있다는  자체가 기쁘고, 의욕이 넘치는 건강한 어린이로 자라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던 어린이날이었다.그래도 더운  장화는 자제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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