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도 부모도 모두 같이 커가는 중
아버지께서 수술을 마치시고 중환자실로 먼저 옮겨졌을 때 나는 그 장소에 처음 들어가 봤다. 중환자실 입구에는 두꺼운 철제문이 있었고, 그 문 안으로 들어가서도 또 다른 문이 있어 일반인의 엄격한 출입금지를 보여줬고, 방문자에게 허용되는 시간 또한 굉장히 짧았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고부터 느껴지는 그 무거운 공기 속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과 달리, 의료진들의 표정은 생기가 넘쳤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어떤 간호사 한 분께서 설명해 주시는 동안 웃음을 가득 띄며 여러 주의사항을 알려 주신 것이었는데, 분명 힘든 환경일 텐데도 더 마음이 무거울 보호자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그러던 때에, 브런치 선배 작가님인 소곤소곤님께서 본인의 간호사 워킹맘 경험을 담은 책을 출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모르는 간호사 이야기들을 읽어보고 싶어 고민하지 않고 구매버튼을 눌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어머니는 70년대 말 간호조무사로 일하시다 아버지와 만나셨고, 장모님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간호사로 일하시는 걸 생각하면 나는 의외로 간호사 어머니와 인연이 깊은 사람인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호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잘 모르는 걸 봐서는 관심도 많이 없었던 것 같고.
소곤소곤 작가님의 책 '나는 다시 출근하는 간호사 엄마입니다'는 크게 어떻게 다시 간호사 생활을 하게 되었나, 간호사 생활은 어떤가, 교대근무와 맞벌이,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에피소드식으로 엮여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나는 왜 일하는 걸 미안해하지?'였는데, 워킹맘은 아니지만 워킹대디로서 많은 공감을 하며 마음 시리게 읽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읽으면서, 에세이가 주는 현장감 있는 경험과 현직자가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을 오랜만에 생생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아버지의 병문안을 위해 몇 번 더 병원에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작가님의 책을 읽고 마주 보는 일반실 간호사분들의 표정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요새 전공의 생활 드라마가 인기인데, 다음 주제는 간호사 생활도 흥미롭지 않을까?
최근 사업계획의 초안을 마무리하는 단계라 퇴근시간이 조금씩 늦어지다 어제는 11시쯤에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내를 빼고는 모두가 잠든 시간, 우리는 짧게나마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피곤할 아내를 다시 침대로 돌려보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맞벌이가 보통이 되었고 나 같은 외벌이 가정을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평등한 교육을 받으니 출산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여자에게 직업적 불이익을 주고 엄마라는 틀로 묶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로가 강점을 갖는 분야도 분명히 다르니 남과 여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존재가 필연적이다.
지금 내 팀에도, 사무실 전체로 봐도 우리 회사는 여직원의 비율이 꽤 높다. 그들 중에는 아이가 하나인 사람도 있지만, 둘셋을 낳고도 오랜 시간 동안 회사를 다니고 있는 분도 계시다. 나 또한 내 손으로 육아휴직을 보냈다가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를 잘 지켜준 직원도 있다.
출산과 육아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경력단절을 강요하는 사회는 분명 부당하다. 당장 집에서 두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아내조차 일평생 자기가 열심히 공부한 분야를 살리지 않고 '엄마'로서의 삶에 만족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고, 권장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가 아닌 자기 자신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볼 때, 소곤소곤 작가님의 이 책은 단순히 현장감 있는 현직 간호사의 에세이일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워킹맘들에 대한 응원 메시지로도 읽혀 지금 내 옆에 있는 아내와, 워킹맘인 팀원, 그리고 언젠가는 워킹맘이 될지도 모르는 내 팀원들이 생각나 책을 덮고도 한참 깊은 여운에 빠졌다.
아울러, 브런치에 글을 쓰고는 있지만 여전히 무언가 하나의 '주제'를 잡고 써 내려가기보다는 그저 하루를 어딘가에 흩뿌리는 느낌에 강한 나 자신의 글쓰기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나도 나의 이야기를 찾아, 남에게 생각할 여운을 주는 그런 글을 책으로 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워킹맘, 워킹대디,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우리 세대는 부모로서의 자아보다는 개인 자신의 자아가 더 강한 세대면서도 부성애와 모성애의 본능에 치열히 싸워야 하는 세대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드라마에 나온 표현처럼, 우리 모두 부모로서는 처음 아니겠는가. 일도 가정도, 그 한 걸음의 끝에 '함께'라는 가족의 보금자리가 있는 한 우리는 잘 살고 있다. 오늘도 출근하는 모두에게, 하루의 행복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