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저출산엔 다 이유가 있다
2024년,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지속적인 하락에서 소폭 반등한 0.75를 기록했다. 작년에 태어난 총 신생아 수는 23만 8천명. 22만명 대를 금세 찍을 것만 같았던 순간에 그나마 브레이크가 걸린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이제 나라엔 아이가 없다. 둘이 만나 둘을 낳은 우리 가정에게 다자녀 가정을 붙여줄 정도로, 어느덧 1명 이하는 뉴노멀이 된 것이다.
그래도 전국에 내 또래가 60, 70만명은 되던 내 시절, 학교 교실이 부족해 한 반에 50명씩 밀어 넣고도 한 학년에 반이 16개 반이 있던 그런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요새는 모든 것이 초라하게 느껴지곤 한다. 첫째 딸의 유치원엔 한 반에 5,6명 되는 애가 있다고 하고, 초등학교를 가도 한 학년에 5개 반을 넘지 않는다고 보면 이젠 반에서 5등 정도 하면 중간도 안되는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아이들의 수가 급감한 것은 잠시 치우더라도, 아이가 태어났을 때 받아야 하는 예방접종의 수가 그렇게나 다양하고 많았는지를, 그리고 왜 아침에 멀쩡한 아이가 갑자기 저녁에 시름시름 앓을 수 있는지를 아이를 낳기 전엔 미처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왜 옛날 어른들이, 우리 부모님들이 다 20대에 결혼하고 애를 낳았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그 넘치는 체력이 밤새 놀아야 하는 나의 청춘이 아닌, 밤새워 육아를 해도 괜찮기 위한 체력이었음을.
30 중반이 되서야 가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미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중간관리자나 일을 도맡아 하는 실무자의 위치에 있게 되기 마련이다.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고 눈 코 뜰 새없이 일해야 하지만, 내 아이가 아팠을 때 아빠와 엄마는 고민, 그리고 패닉에 빠지게 된다.
나도 작년 둘째아이가 태어났을 때 참 많은 고초를 보낸 기억이 난다. 신생아는 이유 없이 아프고, 병원에 가도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고, 주사를 맞힐 수 없어 약을 써 봐도 약을 먹이는게 더 큰 고난이지만 부모는 일단 병원으로 뛸 수밖에 없다.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든 뭐든 당일 연차를 주저없이 사용했다. 아이가 잘못될 일은 없겠지만, 사람은 언제나 혹시를 생각하게 되니까.
회사는 그러나 그런 나를 곱게 용인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지만 은연중에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당분간 육아휴직을 하는 건 어떻냐는 말을 하기도 하고, 중요한 회의가 있거나 한 날에는 가급적 연차나 재택을 지양했으면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물론, 그 해의 고과도 그래서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정성평가에서 근태 부문을 지적받았기 때문에.
그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만약 이게 나의 교통사고였으면 이런 말을 안 들었을까?'
'만약 내 가족 중 갑자기 상을 당해도 이런 말을 했을까?'
최근, 나의 동료 팀장이 딸들이 줄줄이 아파 회사에 몇 번 긴급 연차를 사용하며 회사에 나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사업계획에서 내년도 영업에 대한 전략을 담당하는 그가 빠지니 일부 업무는 조금씩 지연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해할 만한 사유였음에도, 나는 몇몇 그가 있어야 할 회의에서 중요한 시기에 유난떤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예전엔 더 힘든 환경에서 더 많은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으니 기성세대의 눈에는 지금 세대의 육아는 유난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예전 사람들은 빨리 죽었다. 괜히 환갑에 잔치 하던 시절이 아닌 지금 시절, 나는 우리 시대의 책임은 있는 아이라도 잘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덮어놓고 낳는 시대가 아니니까.
안타까운 일이다. 저출산을 걱정하지만, 아이를 반기지 않는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 고쳐야 하지만, 분명 이 시대의 회사에선 아이가 아프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