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머리로, 사람은 마음으로
예전에 중국에 있는 CFO분이 한국에 업무차 출장을 오셔서 직원들과 돌아가면서 면담을 하던 차에 나에게 해 주셨던 말씀이 있었다.
"Karel,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최고의 Thinker야. 하지만 생각과 이론만으로 일이 항상 흐르지 않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이제 제2, 제3의 너를 만들며 네 지식을 전파할 수 있는 시간이 너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분의 눈빛은 온화했지만 확고했다. 이제 소방수 역할은 충분히 했고 불도 다 꺼졌을 테니, 사람을 훌륭히 지켜 내었으니 이제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라는 듯한 눈빛으로. 말 한마디지만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확신이었다.
그분의 말대로 그때의 나는 아직 '최고의 팀'이 아닌 '최고의 나'를 유지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조직을 지탱하는 기둥이라 생각하며.
옛말에 장수란 용장, 지장, 덕장이 있으며 지장은 용장을 이기나 덕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로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덕'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회사에서 팀장 역할을 하기 전까지, 나는 조직에서 단체로 일해본 경험이 그리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 체코에서 생산관리팀으로 일할 때 현지 직원들이 있긴 했지만 업무 시간이나 책임감이 나와 비할 건 아니었고, 이후 다른 직장에서도 팀원은 나 혼자 거나, 1명이 더 있거나 하는 정도였다.
팀원이 없으니 팀워크라고 맞출 일도 자연스럽게 없었다. 팀장님은 계셨으니 팀의 업무 일정이 있었지만 그건 그냥 내 일정대로 가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으로 실력을 쌓을 수 있었고, 그렇게 어느 순간 소위 말하는 에이스가 된 나는 문제 해결에 있어 나의 경험과 지식을 중시하는 '지장'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옛날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었던 것이, 나는 대학교 조별과제를 굉장히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에도 특별히 팀원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보통 내가 자발적으로 조장을 해서 자료 조사를 마치고 대부분의 과제를 해결했던 기억이 있다. 작은 것 하나도 내 손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 내 마음은 어릴 때라고 그리 뜨겁지 않았다.
그런 내가 팀장이 되고, 밑에 4명의 팀원을 데리고 일하게 된 이후로부터 지금에 와서야 나는 이제 왜 예전에 덕이 가장 중요한 리더의 덕목이라는지를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다.
용맹한 장수가 전장을 진두지휘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반면, 지장은 자신의 전략으로 전쟁을 승리하지만 결국 그 전쟁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진심으로 그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는 건 덕장의 마음이라는 것. 다시 말해, 일의 방향과 처리 위에, 그 일을 왜 다 같이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런 동기부여를 잘하지 못한 사람 중 하나였다. 작은 것 하나라도 여전히 내 눈과 손을 한 번은 타야 했고, 그런 마이크로 매니징이 때로 팀원의 성장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방향과 전략은 맞았으니 팀은 안정화되고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나'라는 존재가 너무 영향력이 컸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나의 전략과 지식만을 주장하지 않고 팀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그들이 잠시 헤매는 일이 생길 때 방향을 제시하는 동기부여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어보고 있는 중이다. 다행히 반응이 긍정적으로, 그동안 감정 없이 차갑게 일만 하시던 때보다 요새가 훨씬 더 좋다는 말들을 가끔 해 주곤 한다.
사실, 어떤 한 가지 면만 갖고 있는 리더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장이라 하더라도 때로는 전장의 최일선에서 조직을 지켜내기 위해 앞장서야 할 때가 있고, 용장이라도 때로는 후퇴할 줄도 알아야 한다. 덕장 또한 때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장의 성격을 가진 나는 다른 장수의 장점을 취해 이상적인 리더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3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확실히 팀을 움직이는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득 한 해도 절반이 지나간 무렵에, 오늘도 출근길에 팀을 이끄는 덕목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며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