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 남는 것은 기록물 외에는 없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차가 적든, 많든 우리 모두는 한 번쯤은 회의에 참석해 본 경험이 있다.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야 하는 입장에서 참석한 경우도 있고, 큰 관련이 없지만 유관부서라는 명목으로 얼굴만 내밀 때도 있다. 또는 참석 대상의 부재로 인해 대리인으로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모두 회의에 참석하였다는 것을 증빙으로 남기기 위해 참석 인원의 서명을 받는다. 또는 회의 시작 전에 마치 학교에서 출석을 부르듯이 'xx팀 누구님'을 호명하며 출석체크를 시작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회의가 끝나고 마지막에 주최자가 회의 내용을 잘 기록해 참석 인원 및 팀에게 '회의록'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한 번 나간 회의록은, 그렇게 회사의 공식 기록물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회사에서 말하는 회의라는 것이 몹시 거창하고, 뭔가 회사의 앞날을 좌우할 것 같은 중요한 얘기가 오가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마치, 높은 사람들이 모여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 같은 전략기획 회의 같은 그런 이미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회사에선 정말 별별 이유로 회의를 한다. 하다 못해 회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한 회의까지 할 정도로.
이렇게 팀 단위로 모이는 대규모 회의인 경우에는 회의록이 보통은 잘 남겨지지만, 관련 실무자 몇 명이서, 또는 같은 팀 내에서 하는 회의들은 짧거나, 또는 이미 각자가 다 알아서라는 이유 등으로 회의록이 쓰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회의록이란 말 그대로 회의 중 나온 논의 내용들과, 정해진 이야기들, 후속으로 이어가야 할 내용을 언제, 그리고 누구와 했는지를 기록한 문서다. 양식은 각자 회사마다 다르지만, 담겨야 할 내용과 순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보통은, 회의가 끝난 후 하루가 지나기 전까지는 공유를 하는 편이다.
처음 회의록을 작성해야 하는 때를 떠올려보면, 글로 풀어쓰면 쉽게 느껴지던 이 말이 회의록으로 옮겨지기 쉽지 않다. 잘 모르는 연차에 회의를 들어가게 되면 유관부서의 줄임말이나 전문용어들이 나오기 시작할 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기도 하고, 받아 적는 순서도 중구난방으로 적는 일도 생긴다. 나중에 선임이 회의록 가져와 보라는 말을 했을 때, 빨간펜 검사를 받듯 '이 말이 아니었잖아'하면서 죽죽 그어지는 경험도 한두 번씩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써야 잘 쓴 회의록이 될까?
나의 경험을 미루어보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지키며 회의록을 작성해 볼 때 그나마 수월하게 쓸 수 있었다.
1. 발언 내용들의 핵심만 기록한다.
: 회의라고 매번 딱딱한 이야기만 오가지 않고, 발언 중에는 농담을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그거 예산 얼마 안 남았는데, 그래도 써야죠 어떻게 해요. 안 쓰면 날아가는데~아님 제가 좀 가져갈까요?'라고 발언한 내용은, [예산 집행에 동의함]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보통 나는, 회의록에는 동사를 잘 붙이지 않는 편이다. 글이 길어지고, 길면 잘 안 읽기 때문이다.
2. 결정 사항과 후속 논의사항을 분명히 나눈다
회의에서 모든 내용이 한 번에 결정되거나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이미 결정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후속 진행상황을 확인해 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회의록 작성에 순서를 두어, 논의내용과 후속 F/UP내용 항목을 분리해서 작성하는 게 좋다. 후속 확인에는 그리고 가급적 기한을 명시하면 더 좋다.
위의 두 가지 원칙을 갖고, 참석자/일시 등을 회의록 윗단에 넣어 회의록을 완성하면, 나중에 누가 읽어봐도 이견이 없고, 회의 정리를 깔끔하게 잘한다는 평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회의록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의 제목처럼 왜 회의록이 우리에게 중요한가? 에 대한 답은, 앞서 말했듯이 회의록이 회사의 공식 기록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많은 부조리함에 시달리게 되지만, 가장 어찌할 수 없이 힘들 때가 언제냐 하면, 했던 말이 번복되거나, 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을 때 내놓을 증거가 없을 상황일 것이다. 직장인들에게 갤럭시가 삼성페이 외에도 통화녹음 덕분에 위기를 몇 번이나 구해준 구세주가 된 이유기도 하다.
회의가 잦아질수록, 간단해질수록 회의록 작성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가끔 그렇게 간과된다. 30분짜리 짧은 미팅이 끝나고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을 때 상급자가 '바쁜데 그거 말고 이거 먼저 해라, 다 알고 이해한 내용을 왜 정리하냐'라고 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게 알고 넘어가면 다행인데, 문제는 나중에 일의 결과물이 달라졌을 때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하고 말을 바꿔버린다는 점이다.
벌어진 일에 대해 잘잘못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가리는 건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악독한 상급자라면 '내가 말 바꿨다고 그래서 어떡할 건데'하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회의록을 남기는 습관은 직장 생활에서 나를 다치지 않고 오래 살아남게 하는 좋은 무기가 된다.
언젠가 이 습관에 위기에 빠질 미래의 나를 구원할 수도 있으니, 오늘부터라도 만약 쓰지 않았다면, 회의가 끝나고 조용히 내용을 정리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