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워지려 할수록 본디 멀어지는 법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보고'다. 이 보고는 업무 결과에 대한 결과보고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일을 진행할지 말지에 대한 중간보고일 수도 있고, 어떤 일을 완전히 구상하기 전의 사전보고일 수도 있다. 직장 생활은 보고로 시작해 보고로 끝난다는 옛날 말이 있듯이, 우리는 언제나 일의 과정에서 고민한다.
'이 일을 보고해야 하나?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보고에 굉장히 약한 사람이다. 과거형을 쓸 수 없는 게 지금도 여전히 보고에 약하다. 그렇다고 보고를 두려워한다거나, 상급자와 이야기할 때 말을 버벅거린다거나 하는 정도의 어려움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어떤 일을 말해야 하는 시점과 의미를 찾는 것에 어려움을 가진다. 쉽게 말하자면, 이 일을 보고해야 되나?라는 생각에 대부분 뭐 이런 것까지.라고 덮어버리는 일이 많다.
이는 내가 과거에 겪어 왔던 직장생활에서 대부분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일이기는 하다. 상사나 팀장님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대부분 소속팀에서 혼자였다. 나를 도와줄 팀원이 있는 게 아니었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타 부서와 협력하여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과정을 일일이 팀장님과 나누지 않았다. 팀장님 또한, 잘하겠거니 하고 결과만 듣는 적이 더 많으셨고.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과정은 자율적으로, 결과만 상급자와 공유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내가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규모라고 판단되면 당연히 보고를 거쳐 의사결정을 받았지만, 어느 정도 융통성은 언제나 갖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2년 전에 새로 오신 임원분께서는 작은 일 하나하나 모두가 본인이 아시고 확인해야 하는, 이른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현재 몸담은 조직은 외국계 회사로 국내회사와는 달리, Commercial Finance 팀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팀장급에게도 어느 정도 규모의 금액은 전결권이 꽤 폭넓게 허용되는 조직이다.
그러나 임원분이 부임하신 뒤로, 그 전결권이 꽤 유명무실해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예를 들면 영업팀에서 분기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오더 수주를 해오겠다고 의사를 표명하였고, 내 전결권 안에 들어오기 때문에 결재처리 후 프로모션을 진행한 일이 있었다. 추후 프로모션 집행이 결정되었다고 말씀드리니 그런 일을 왜 상의도 없이 진행하였으냐, 충분히 검토된 내용이냐고 물으시고는 결국 그 프로모션의 내용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런 일이 누적되면서 나는 어느 순간에는 임원실 문을 세게 닫고 나오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언제나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나왔다. 그것은 내 기준에서 반발의 마음이 있지만, 결국엔 순응하기로 한 결심이었다.
재량권 내에서 내가 행동하는 모든 것들을 알아야 하는지를 궁금해하며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공유를 해달라는 말이었다. 설령 그 결론이 말로만 공유일 뿐 결국엔 결정을 받아야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나는 점점 내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거뒀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왜 마이크로 매니징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것이 불안욕구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들을 건건이 보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분명 관리자 입장에서 좋은 효과가 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 리스크를 질 필요가 없다. 결은 좀 다르겠지만 주방에서 프렙을 진행하듯, 내 의사와 스타일대로 일이 되려면 작은 것까지 관여해야 원래 효과가 나는 법이다.
다시 말해, 일을 하는 사람이 나의 의지대로 행동할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것이 아닌, 나 대신 일 해주는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 보통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시는 분들의 마음이다. 일시적으로는, 조직이 일관된 목소리를 일사불란하게 수행하며 성과를 낼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직원의 자율성을 꺾으며 다양성을 해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중요한 건, '일이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잘 일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작은 결정 하나하나까지 점검하며 리스크를 줄인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구성원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여지를 잃는다면 조직은 금세 경직되고 만다. 내가 겪은 혼란과 의심은 단지 개인의 미숙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팀장으로서 팀원들에게 일절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지 않고 자율권을 부여하는 쪽이다. 과정 같은 건 일일이 얘기하지 않아도 좋으니, 결정에 문제가 되거나 부서 간에 조율이 필요한 내용만 얘기하라는 식이다. 오히려 팀원들이 이런 나의 의사와 달리 작은 것 하나하나를 다 이야기하는 편으로, 내가 너무 관심이 없다고 불평하는 일도 가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 매니징은 겉보기에 조직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듯하지만, 그 실상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을 침묵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는 그 조율을 멈추고, 믿음을 통해 조직이 작동하게 해야 한다. 조금 덜 매끄럽더라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경험이 쌓여야 진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온다. 보고는 통제가 아니라, 신뢰의 언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