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잘 쉴 줄 모르는 지친 우리들 이야기
임시공휴일 덕분이었을까, 이번 설 연휴는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대체휴일이나 임시공휴일 지정이 잦게 된 이후로 샌드위치가 끼면 으레 5일에서 일주일 정도 쉬는 게 그리 낯선 일은 이제는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휴는 마치 몇 주간이나 지속되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쉬어본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팀원들, 그리고 동료들에게서 연휴 안부인사를 주고받으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었다.
“팀장님, 이번 연휴 동안은 부디 회사 일 생각하지 마시고 그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만 보내다 오세요~”
나는 나 스스로를 워커홀릭이라고 절대로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는 충분히 책임감 있고, 항상 업무에 몰두해 있는 그런 사람이다. 재무팀장으로 있는 이상 비용과 관련된 결재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은 내가 단기든 장기든 휴가 중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급한 결재는 메신저로, 전화로, 문자로 요청해 오곤 한다.
그리고 나 또한, 참 세상이 너무 좋아진 게 문제겠지만 핸드폰으로 쉽사리 회사 포털에 접근하여 필요한 결재나 업무들을 그때그때 처리해 주곤 한다. 이유는 단 하나, 결재가 밀려 비즈니스의 흐름을 끊게 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휴가 중이 아니더라도, 출근 중이든 퇴근 중이든, 또는 퇴근하여 집에 왔을 때에도 항상 메일이 오면 곧바로 확인하고, 답변이 즉시 가능할 때에는 바로 답변해 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당연히 좋은 습관은 아닐 것이고, 스스로도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당장의 일을 처리하고 다 끝난 후에 쉬자는 내 강박은 나의 고민을 무색하게 하면서 본능적으로 날 움직이게 했다. 메일이 오면, 확인하고, 답변이 가능하면 바로 답변하거나 30분 내로 확인할 수 있으면 다시 노트북을 켜고 확인한다.
처음에는 아내도, 아이들도 이런 나를 이해해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어디에 놀러 갔을 때나 퇴근하여 아이들과 같이 낙서하며 놀 때나 나는 10분, 20분 이따금씩 자리를 잠시 비우고 내 방으로 들어가곤 했고, 딸의 ‘아빠 어디 가?’라는 질문에 아내는 ’ 아빠 잠깐 중요한 일이 있어서~‘라고 달래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해가 아니라 그들 또한 내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체념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번 연휴에 업무 관련된 연락을 확인하지 않기로 결심한 계기는, 어느 날 또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려던 나에게 첫째 딸이 ’ 아빠 아직도 일해야 해?‘라고 시무룩해하던 모습이었다.
당연히 팀장이기 때문에, 그리고 맡은 직책과 권한이 더 커질수록 내 자유가 없어진다는 것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래도 워크 앤 라이프의 밸런스를 완전히 맞추지는 못할지라도 어느 정도 유지는 하자는 마음, 그리고 잘하고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딸아이의 반응을 듣고 나니 나 스스로가 자기 합리화에 빠져 삶의 축을 그냥 워크에 쏟아 내었구나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래서 이번 연휴 동안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해외법인이나 본사에서 오는 메일들을 무시하고 읽지 않으려 했다. 덕분에 금요일 하루 종일 이메일을 확인하고 내일 있을 1월 결산을 준비하기 위해 정말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연휴가 굉장히 길게 느껴졌고, 평상시에 5-6시간 남짓 자는 잠도 매일 아침 9시가 넘어서야 눈을 뜨는, 나로서는 상당히 늦잠을 자면서 꽤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충전되었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분명 좋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충분히 쉬었다거나,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거나 하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분명 아무 생각 없이 잘 쉬긴 했지만, 뭔가 아무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만 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새삼,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만하면 일 잘 끝내었다는 기분은 자주 드는데, 잘 쉬었다는 기분이 들려면 어떻게 쉬어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