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매형, 우크라이나 며느리. 바다 건너는 우리의 일상
1월 27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서 이번 구정 연휴는 1주일을 통째로 쉬어 버리는 연휴가 돼버렸다. 재무팀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물론 한 주를 그대로 쉬어 버린 뒤에 곧바로 다가올 결산을 생각하면, 쉬는 게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에게 있어 연휴란 어쨌든 꿀같이 달콤한 일이다.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뜨고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의 안도감은, 아마 내가 임원이 된 다음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워커홀릭이라고는 해도, 쉬는 것보다 일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특성상, 한국의 연휴와 무관한 해외법인 동료들에게서 받는 메일들을 보면 잠깐 메일이라도 확인할까, 싶은 생각이 안 들진 않지만, 한 번 메일을 보기 시작하면 또 훌쩍 두세 시간이 지나 버릴 걸 알기에 이번 연휴만큼은 나답지 않게 참아내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연휴가 끝날 무렵에서는 결국엔 노트북을 켜고 제목이라도 읽어보자 하면서 연휴가 끝나고 출근 전 새벽을 그렇게 맞이할 것 같기는 해도.
집 밖에는 강원도 쪽으로 가는 영동고속도로가 훤히 보이는데, 언제나 통행량은 많지만 설 연휴인 지금 더 북적이는 차량을 보면서,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는 내가 새삼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느껴지며 역설적인 내 처지를 실감하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말일뿐이고, 사실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나는 4대 독자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3대째는 확실한 것 같은 게, 일단 나는 2녀 1남 중의 막내고, 아버지께서는 6.25 전후 한국에 정착한 뒤에 3녀 1남의 막내가 되셨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여담으로, 족보를 알 길이 없는 친가 쪽 계보와 달리 외가 계보는 너무 확실했다. 친가에 없는 선산과 집성촌에 사시는 외가에 갈 때마다 친가와 여러 의미로 많이 대비되었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어쨌든, 흔히 말하는 4대 독자의 명절치고는 우리 집 명절은 굉장히 자유로운 편인데, 구정 당일인 오늘조차 특별히 부모님을 뵈러 갈 계획이 없이 두 딸아이 및 아내와 짧은 드라이브를 갈 예정이다.
부모님을 방문할 계획이 아예 없이 절연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명절이 되면 으레 명절 당일보다는 명절이 다 끝난 주말에 삼 남매가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삼 남매는, 대부분 명절에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우리 셋 중에는 작은누나가 제일 먼저 취업도 하고, 결혼도 가장 먼저 했다. 30도 되기 전에 결혼했으니 그 당시로도 굉장히 어린 나이에 결혼한 셈이었고, 덕분에 조카도 벌써 나보다 키가 큰 청소년 학생이 되었다. 다만 셋 중에서는 가장 바다와 친하지 않다.
바다와 친한 것은 나와 큰누나다. 큰누나는 제주도 사람인 매형과 결혼하여 공식 제주도민증을 획득하였고, 나의 아내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내가 국제결혼을 하게 된 계기는 다른 글에서 넉넉히 풀어낼 기회가 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명절이 오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비행기표를 예약하는 일이다. 비록 지금 나는 우크라이나에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기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우리는 사실 명절이 되어도 명절날에는 모인 기억이 없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이게 조금은 쓸쓸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큰누나는 보통 명절 동안 제주도에 있다 왔고, 나도 그 기간을 빌려 짧게 처가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바다를 건널 일이 없는 작은누나라도 있는 게 조금은 다행일까. 아마 조카들도 명절날 삼촌, 이모에게 세뱃돈을 받을 기회가 없어 아쉬워할지도 모른다. 결국 나중에 다 주기야 준다만, 그때 그날에만 느낄 수 있는 감칠맛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우리 모두가 부모님을 명절에 충분히 모시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암묵적으로 합의된 것은, 바다 건너에 살고 계신 가족들은 마음먹고 찾아뵈어야 하지만, 가까이 사는 부모님은 대신 별 일이 아니어도 더 자주 찾아뵙고 더 자주 함께해 드리면 되는 거라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가끔 어머니가 전원생활을 그리워하시며 시골로 내려가서 마음 편하게 살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할 때에, 삼 남매 모두가 차로 2시간 이내라든지, 도 1개 이상을 넘어가는 곳은 안된다든지 하며 특별한 일이 없어도, 자주 찾아가서 점심 식사 편하게 한 끼 하고, 쇼핑 같이 하고 할 수 있는 지금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번 설도, 먼저 제주도에 가 있는 큰누나가 금요일쯤 돌아온다 하여 우리 가족은 긴 구정 연휴 동안은 잠시 서로를 잊고, 구정이 다 지난 다음에야 또 그렇게 다시 모이기로 약속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결혼한 날에 아버지는 아들 딸 덕분에 사돈 보러 물 건너갈 일이 많다고 좋아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약간은 신기한 형태의 가정인 것 같다. 비록 올해 설날도 안정화되지 않은 정세 때문에 나는 한국에 남아 처가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갈 날도 오겠지.
그래서 우리는 남들과 달리, 명절 당일보다는 명절 주간의 주말을 더 손꼽아 기다린다. 각자 배우자 가족들과 함께 한 그 해의 추억을, 온 가족이 모여 나누어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