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딸처럼 빨리 커버린 둘째 이야기

흔들림 없어 자라주는 너에게 고마워하며

by Karel Jo


첫째 딸이 태어난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마 내가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일 것이다. 예정일은 2주나 넘게 남았던 날이었지만 3월 31일 아침 10시경, 나는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고, 아내가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들었다.


그때는 가진통이어서 금방 돌아왔지만, 언제라도 시작될 수 있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하여 나는 화급히 오후 반차를 쓰고 부장님, 이사님께 인사드리고 흥분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오후 네시쯤 되었을까, 아내는 진통의 간격이 일정해지면서 힘들어하기 시작했고,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출산가방을 챙기며 초조해졌다.


재무팀에서 일하는 특성상, 1일 자 생일은 꼭 피하고 싶었지만 첫째는 12시간의 진통 끝에 기어이 날을 넘겨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우리에게 와 주었다. 아내가 마지막 처치를 받을 동안 아버지로서 아이가 이상 없음을 서명하고 아이를 보던 그 순간 너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다. 이 아이가, 지금부터 우리가 책임져야 할 생명이라니.


둘째는 그런 첫째 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감흥이 덜 했던 건 사실이다. 일단, 첫째 때에 비해 팀장이 된 내가 업무에 훨씬 치여 세세한 상황을 그때보다 잘 봐주기 어려웠고, 첫째가 이미 자란 상태라 첫째도 신경 써야 하고, 무엇보다 이미 한번 겪은 일이라 그런지 아내도 나도 당연히 무섭고 긴장되지만, 여유로웠다.


오히려 예정일이 다가오는 때에도 나오지 않는 둘째를 보고 또 1일 자 아이를 볼까 봐 나는 약간 섬찟하였는데, 이대로 평생 재무팀을 벗어나지 않으면 두 딸 생일도 잘 못 챙기는 아빠가 돼야 하나 하는 고뇌를 하며 혹시 모르니 출산에 대비해 만약 주말에 출산한다는 가정 하에, 업무 분장표를 짜고 퇴근한 1월 말의 금요일에 둘째는 세상을 두드렸다.


나 시작한 것 같아, 어머님께 전화드려.


아내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고, 첫째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기에 나도 화급히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급히 집으로 와주길 부탁드렸다. 30분 정도 후에 어머니는 첫째를 다시 재워 주셨고 우리는 그 길로 집 앞 병원에서 그래도 이번엔 짧게, 하지만 힘들게 둘째를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이미 한번 겪은 일이기에 감흥이 그래도 덜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부모의 사랑은 자식에게 평등하다는 말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둘째의 통통한 탯줄을 자를 때에도, 아내가 후처리 하는 동안 행정절차를 마무리하던 그때에도 나는 울었다.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이 나에게 또 다가와서, 나와 함께 걸어 주겠다고 한 그 순간.


물론, 아이가 둘이 되니 컸지만 아직 더 자라야 하는 아이, 완전한 갓난아이 한 명, 돌봐야 할 사람이 세트로 늘어나니 생각보다 더 힘든 것도 사실이다. 말 못 하는 둘째가 칭얼대는 동안 첫째도 관심받지 못하는 자신을 항상 내세우게 되고, 조금 달래주다가 첫째에게 시선이 돌려진 순간 자연스럽게 넘어지는 둘째의 울음을 달래 주는 순간이랄지.


둘째를 낳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면서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덧 1년이 흘렀다고 한다. 솔직하게, 첫째 때보다 바빠진 나를 핑계로 관심을 덜 주게 되고, 아내에게 좀 더 많은 역할을 부탁하고 나는 전통적인 아버지상. 돈을 벌어오는 역할에 집중하다 보니 아이가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자조 섞인 농담으로, 남의 아이처럼 빨리 자란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시간에라도 최선을 다해 아내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과 추억을 새겨주기 위해 나름대로는 한다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왜 자식에게 더 해주지 못해 아쉬워하는지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비록 지난 1년, 둘째에 대한 기억이 많진 않더라도, 뭐 앞으로 더 쌓아갈 시간은 다행히 듬뿍 남아 있으니 아직은 괜찮지 않을까.


결혼하고 아이에 대해 고민하는 동료나 친구 부부들에게 나는 이따금씩 말하곤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람으로서 꼭 한번 겪어보면 좋은 일이라고.


나를 바라보며 1년을 열심히 살아준 내 둘째 딸, 네 발로 네 시간을 걷는 순간까지 앞으로도 아빠는 널 지켜줄 거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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