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아침 서울로 여행을 떠난다

현명하게 출퇴근 시간을 쓰는 경기도민의 자세

by Karel Jo


직주근접, 직장과 거주지가 근접해야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점에서 서울 집값이 절대로 떨어질 수 없는 이유, 그리고 서울의 대표 업무지구인 강남 접근성이 좋은 위성도시들의 집값도 떠받치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일 것이다.


나 또한 지금의 직장을 다니기 전까지는 걸어서 40분 거리에 직장이 있었다. 바꿔 말하면 차로 5분-10분 내외로 갈 수 있는 거리였고, 그 당시엔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함이라는 걸 느낄 새가 없었다. 5시 반에 퇴근하고도 6시면 이미 집에 도착해 간단히 손발도 씻어버리고도 시간이 남았으니까. 저녁이 있었다. 아주 길게.


서울로 직장을 옮긴 지금, 나는 용인 처인구에서 강남권으로 출퇴근을 한다. 아침 여섯 시 무렵 눈을 뜨고, 전날밤 둘째가 먹은 젖병을 씻고 소독기를 돌린 뒤 고진역 근처 정류장에 도착하면 7시 정도, 운 좋게 길이 막히지 않으면 신논현 근처에 1시간 정도 후에 도착한다. 그렇게 사무실까지 좀 더 걸으면, 약 1시간 반 정도의 아침 여행이 끝이 난다.




출퇴근 시간이 왕복 3시간이면 자진퇴사여도 실업급여를 청구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회사의 사무실 이전이나 부서배치, 부양가족 등의 사유가 있어야 하고 사유 발생 후 몇 개월 이내여야 급여청구가 안전하게 가능하다는 단서가 있긴 하지만, 사람이 백업이 있다는 건 항상 마음 놓이는 일이 아닌가.




왕복 3시간-4시간이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이미 하루의 20% 이상은 출퇴근에 쓰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솔직히 꽤 낭비라는 생각도 들기도 해서, 발상을 전환해 매일 버스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고 자주 행동하는 루틴 몇 가지를 공유해 볼까 한다.


1. 부족한 잠 보충 (주로 아침 출근 시)

: 서울까지는 보통 1시간이 넘게 걸리기에, 내가 타는 정류장 근처에서 빨간 버스를 타자마자 앉으면 50분가량은 충분히 잘 수 있었고, 이는 부족한 잠을 조금이나마 보충해 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세가 불편하긴 해도, 익숙해지다 보면 의외로 꿀 같은 시간이다. 보통은 나와 같은지, 신논현 근처에 가다 보면 사람들의 숨으로 창문이 빼곡히 새하얗게 물들어버린다.


2. 관심 분야 공부하기 (주로 저녁 퇴근 시)

: 아침은 솔직히 잠도 덜 깬 상태인지라 두뇌활동을 하기엔 적합하지 않지만, 이미 업무에 신경을 곤두세울 대로 곤두세우고 커피도 두세 컵 마신 이후인 퇴근길은 뇌를 식혀 줄 무언가가 필요한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을 보통 외국어 공부에 활용했는데, 인강보다는 태블릿으로 필사해 가며 공부하는 걸 더 선호했다.


3. 한 주에 하루 이틀 정도는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 버리기

: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며 치료의 시간을 견디던 때에 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해 주신 말은 하루에 조금이라도 좋으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라는 말이었다.


그 이후로 여전히 출퇴근 시간이 아까우니 꼭 뭔가를 하려 들긴 해도, 주에 하루 이틀 정도는 이어폰도 꽂지 않고 가만히 창밖을 보며 버스가 움직이는 대로 지켜보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시간은 잡으려고 한다고 잡힐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욕심 없이 대해보는 건 확실히 낯설지만 출퇴근이 길기 때문에 가능한 핑계 좋은 행복일지도 모른다.


4월부터는 사무실이 여의도로 이전하게 된다. 지금보다 30분이 더 추가될 상황인지라 진지하게 이직도 고려하고 실제로 몇 번 기회도 왔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되지 않았고 나 또한 아직은 현재의 조직에서 마무리짓지 않은 일들이 있어 나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 충분히 만족했을 때를 기약하며 일단은 다녀 보기로 했다.


행복회로를 돌려 보자면, 하루 여행시간이 1시간이 더 늘어난 셈이다. 길바닥에 시간을 버리지 않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조금 더 고민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고 생각해야겠지.


출근 후는 즐겁지 않더라도,
출근길은 마음 편하게 오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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