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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센터, 처음 말했을 때의 후련함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삶은 광고가 아니니까

by Karel Jo


나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너무 힘들어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이 들어 정신과를 방문하려 할 때의 가장 높은 진입장벽은 아무래도 '예약'이다. 정신과 특성상 사전예약이 없는 초진의 경우 일반 병원처럼 문을 열고 바로 의사 선생님을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나도 처음엔 그래서, 용기 내어 걸었던 근처 병원에서 우리 병원엔 진단과 검사를 진행하지 않으니 먼저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결과지를 갖고 방문해 주시면 그 후 예약 수속을 도와드리겠다고 했을 때 꽤나 당황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의 느낌으로 '복잡하다'. 아마, 그러면 안 되겠지만 이 약간의 문턱은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이름 모를 마음 아픈 이들을 위해 여담이지만 점점 낮아지면 좋겠다.


그러나, 매일 눈물로 점철된, 그러면서도 내가 슬퍼서 우는 건지 아니면 그냥 눈물이라는 체액 자체를 조절하는 기능이 사라져 버린 건지 알 길이 없는 채로 시간을 보내는 나에겐, 포기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근처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에 연락을 걸어 상담을 진행하고, 결과지를 받고 싶다고 얘기했다.


전화 너머로 따스하게, 안정적인 목소리로 언제쯤 오라는 안내자 분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처음 방문한 날에 나는 굉장히 의외로 쭈뼛거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위축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내심, 나 정도의 힘든 건 사실 힘든 게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이상소견을 발견할 수 없고, 단지 내 자신이 그냥 나약해서 나온 결과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불안감에 싸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소위 말하는 풀배터리 검사를 그때 받았던 것 같다. 당시엔 정확히 이게 풀배터리 검사라는 안내를 따로 해 주신 건 아니었지만, 기질검사 등 내가 따로 해야 하는 검사와 처음 방문했을 때 웩슬러 지능검사니, 로르샤흐 검사니 이런저런 검사만으로 시간이 꽤나 소요됐던 기억이 난다. 비용도 그랬고.




상담사님을 처음 뵈었을 때, 상담사분께서는 온화한 얼굴로 잘 오셨다는 말씀을 먼저 해 주시며 자리에 앉아 편하게, 힘든 점뿐만 아니라 지금 내담자분이 느끼시는 감정을 그냥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된다고 이끌어 주셨다. 사실, 평소에 자기의 내면을 솔직하게 말하는 건 가족에게도 꽤 힘든 일이라, 나는 처음에는 꽤나 단답형으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이런 느낌으로.


"내가 어렸을 적에~라는 문장에 '혼자 놀았다'라고 써 주셨어요. 혹시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그냥, 말 그대로.. 자주 혼자 놀았어요. 혼자"


상담사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폭을 넓혀 가면서 내 안에 쌓여 있는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고, 그러다 어느 순간엔 이런 때도 있었다. 내 스스로가 감정적으로 가장 동요했던 때.


"이렇게 힘드실 때 혹시, 그만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셨나요?"

"... 많이요"


아마 그때부터 나는 상담에서 점점 더 말을 길게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많이요'라는 말을 실제로 누군가에게 뱉고 나니, 감정적으로 참아 왔던 화, 슬픔, 인내 등이 한 번에 터진 기분이었다. 그 후부터는,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그래도, 남은 사람들 생각하면 못 하겠어요. 아내도, 자식도 그들은 죄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잠시 되뇌기만 했었다.


이야기를 들어주시던 상담사 분도 그때는 잠시 나와 함께 울어 주셨다. 그리고 먼저 이렇게 힘든 감정을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오늘 우리가 내담자분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거라면서 계속 이후 검사를 이어가셨다.


여러 검사를 오랜 시간에 걸쳐 받은 이후, 상담소 문을 나서며 그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무겁게 묶여 있던 마음의 짐이 조금은 덜어진 기분을 느꼈다. 어쩌면, 제일 가깝기 때문에 말하지 못한 힘듦이라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더 손쉽게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상담이란 게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걸까.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괜찮아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후, 결과에 따라 상담센터도, 정신과도 한동안 다니게 되었지만, 나는 첫 방문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은 둘 다 다니지 않지만, 만약 내가 그 문을 열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더 심해져 있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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