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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아닌, 당신 스스로를 위해 일하라

건강한 팀장과 팀원의 관계에서 고뇌하는 초보 팀장이

by Karel Jo


"팀장님, 말씀하신 자료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드렸어요."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봐 왔던 부장님들의 모습과 달리, 팀장의 위치에 올라왔어도 나의 기대치와는 달리 기존에 하던 일에 관리 업무만 단순히 더 추가되었을 뿐, 거기에 약간 내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전결권이 조금 늘었을 뿐 여전히 실무는 내 책상 위에 매일 끊이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아마, 예전에 비해 슬림해진 조직 규모 탓도 있을 것이고, 예전 대리병에 걸릴 법한 나이대들이 전부 차부장급으로 올라온 탓도 있을 것이다. 2025년의 팀장이란, 보통 그 조직에서 일을 제일 스마트하고 속도 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장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모든 일을 다 쳐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팀장이 실무를 놓지 않고 디테일을 보기 시작하면 그 팀은 보통 팀장이 없으면 안 된다는 원맨팀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따라서 나도 인원이 자리 잡은 후에는 본사에 보내야 하는 별다른 복잡성을 요구하지 않는 리포트, 주로 실적이나 계정별 증감에 대한 내용은 팀원에게 처리를 맡기고 있다.




팀원들과 1 on 1 면담을 진행하면서 내가 가장 관심 깊게 물어보는 일은 현재의 일에 부담을 받고 있거나, 요새는 타 부서와 협업에 크게 어려움이 있는지 등을 물어보기보다는, 주로 앞으로의 미래에 중점을 두고 면담을 풀어나간다. 이를테면, 다음 업무분장에 맡겨 주었으면 하는 업무가 있냐든지, 내년 즈음엔 이런 업무를 하게 될 테니 미리 관련 분야를 공부해 두라든지 말이다.

실무를 최전선에서 뛰는 현업의 입장에서야 현실을 들어주는 게 더 낫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건 필요하면 그때그때 상황에서 풀어주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 잘 묻지 않는다. 현실을 가볍게 두드리는 건 쉽지만, 미래란 무겁게도, 가볍게도 쉬이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가 아닌가.


그럴 때마다 꽤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나도 실무급 레벨에 있을 때 많이 고민했고, 팀장이 된 지금도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문제다.


제가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뭘 할 수 있는지부터 감이 안 잡혀요.



사실 나도, 지금의 위치 다음은 임원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심 마음으로는 만년 팀장으로, 만년 중간관리자로 일하다 은퇴하고 싶다는 욕망 속에 지내면서도, 다음 레벨로 넘어가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매일 고민하게 된다. 뭔가, MBA라도 따야 하나? 재무회계에서 입증할 수 있는 경력이나 자격증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다른 업종으로 경력을 확대해 볼까? 등등.


그렇기 때문에 저런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팀장의 입장에서 팀원이 충분히 잘해주고 있다는 말을 해주면서 한 가지 강조하는 말이 있다. 바로 '팀장이 아닌 너 자신'을 위해 일한다면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낼 거라고.




실무급 레벨에서는 보통 자기가 만드는 자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만드는 게 대부분이다. 그 레벨에서 일을 잘한다는 자료를 그래서 들여다보면 많은 정보들이 굉장히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다. 방대한 로데이터를 버튼 몇 개를 이리저리 클릭해 결과값을 예쁘게 볼 수 있는, 그러나 '함축적'이지는 않은 자료들.


그래서 내가 하는 조언의 마지막엔 항상 그런 말이 뒤따른다. 네가 하는 일은 내 일을 덜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너의 생각을 충분히 공유해 주고 이해시켜주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이다.


일례로, 지난달 대비 이번 달의 품질 비용이 상대적으로 증가했다고 치자. 자료 정리를 부탁한다고 하면 대부분 지난달의 비용계정과 이번 달의 비용계정을 정리해 피벗테이블을 돌리거나, 표 형식으로 정리해 간단한 요약 페이지로 엑셀이 구성될 것이다. 대부분은 그 정도 선에서 자료 만들기를 마무리하게 된다.


나에게만 통용되는 방식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대부분 그렇게 마무리된 자료를 받아 보며 거기에 팀원의 생각을 넣어 이야기하라고, 때로는 그런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을 던진다. 비용 증가는 어느 부서에서 기인한 건지, 이 프로젝트로 나간 비용이면 앞으로 몇 달간 추이가 비슷할 것 같냐든지.


복잡하게 들리지만, 간단하게 풀어내자면 업무란 상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의 생각을 담아야 하도록 주어진 일이라는 말이다.


간단한 자료 정리라 할지라도, 그 자료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구와 확인하며 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만든 자료와, 단순히 있는 서식에 복사해서 붙여 넣기로 끝낸 자료는 질문을 던졌을 때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위치에서 고민하고 흔들린다면, 자기가 해온 일들을 한 번씩 되짚어 보며 얼마나 거기에 내 생각과 주관을 담고 일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고민을 덜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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