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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저는 팀장 안 하고 계속 평사원 할래요

내 자리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보이나?

by Karel Jo Apr 14. 2025


어느덧 회계연도가 반년이 흐른 지금, 인사팀에서는 중간성과평가를 하라고 매일같이 재촉하며 팀장들을 압박하고 있다. 밑에 무려 4명이나 데리고 있는, 외국계 회사의 재무회계팀 치고는 꽤 많은 인원을 데리고 있는 나로서는 한 명당 한 시간씩만 면담을 해도 4시간 이상은 족히 걸리는 일이다. 


때문에 하루에 몰아서 하지 못하고 한 주에 적절히 시간을 배분해 그 주는 면담의 주간으로 만들곤 한다. 물론 그러다 보면, 보통 순차적 밀어내기로 순번을 정하고는 하나 으레 누가 먼저 첫 희생양이 될 것인가에 대해 팀원들의 두려운 눈빛도 읽을 수 있게 된다.




다른 글에서도 몇 번 다룬 내용이지만, 지원부서의 입장에서 KPI라든지, 한 해의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꽤나 가혹한 일이다. 수치화될 수 없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량적인 평가는 거의 불가능하고, 정성적 평가에 많이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달엔 세금계산서 누락이 1건도 없었습니다라든지, 회계감사에 이슈 없이 대응했다든지 그나마 눈과 자료로 말할 수 있는 업무들도 있긴 하지만, 아무 일 없이 마감을 끝냈습니다. 같은 걸로 업무능력의 경중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재무회계팀이 그러면 커리어적으로 아무런 미래가 없는 것이냐, 계속해서 남들이 세법과 상법에 무관하게 치고 온 사고를 마법같이 그들이 기대하는 대로 ‘회계적’으로 멋있게 풀어내는 역할만이 앞길에 끝없이 남아있는 쇠똥구리가 나의 미래냐,라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흔히, 회사에서 영업을 아버지에 비유하고, 재무회계를 어머니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나의 입장에서 재무회계는 ‘지독한 현실주의적 화가’에 가까운 존재다.


손익추정을 할 때나, 회사의 사업계획을 짤 때나, 어떤 프로젝트에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할 때나, 모든 결정사항에서 재무회계팀은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를 추상적인 언어로 풀어내기보다는, 1억 원을 지출한다는 가정 하에 1억 원 이상의 효익을 내는 것인지, 당장에 그렇지 않다면 어느 미래에 효용성을 볼 수 있는 투자인지 등,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 내에서 그를 수치화하길 원한다.


이게 극단적으로 심해지면 ‘이익 없는 곳에 투자도 없다’라는 이른바 허리띠 졸라매기, 또는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소극적 경영으로 빠지는 경우도 우리는 많이 봐 왔지만, 재무회계의 기본 입장은 언제나 ‘손실을 구체화한다’니까.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Commercial Finance라는, 영업조직의 영업활동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주로 진행하는 팀의 팀장으로서 수많은 결재라인에 들어가 그들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수치화된 언어로 회사의 입장을 대변한다.


내가 개발이나 제품에 대한 전문용어를 잘 모르듯이, 그들도 회계적 언어를 잘 알지 못할 것을 감안하여 누구나 알기 쉽게 이해하기 쉬운 예시를 들며 숫자를 언어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의 입장은 언제나 계산된 숫자를 근거로 허상을 담지 않았다.




중간평가를 할 때나, 팀원들과 1on1 면담을 진행할 때나 나는 이런 나의 현실이나, 내가 맞부딪치는 상황들에 대해 팀원들에게 가감 없이 공유하곤 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재는 자연스럽게 언젠가 그들의 미래의 목표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기에.


좋은 팀장은 자기 혼자서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후임에게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독하게 들어온 교육을 상기하며, 나는 팀원들의 업무 평가에 으레 몇 년 뒤엔 이런 일로 현재 업무가 발전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면서 이런 상황도 많이 생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부족한 부분을 이렇게 발전해 나가면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자주 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나의 이 조언을 듣는 팀원들의 눈빛에 긍정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팀의 가장 가까운 차석부터 막내까지, 다양한 연차에게 비슷한 목소리를 내어도 대답은 한결같이 ”저는 팀장님 밑에서 그냥 오래 평사원 할래요, 팀장 안 하고 싶어요 “라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요즘 꽤나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왜 팀장을 하고 싶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스스로가 옛날부터 팀장이 되길 원했느냐 하면 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직장 생활 초년생부터 팀장님들은 그 위치에서 가장 베테랑으로 자리 잡으신 분들이었고,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났으며 개중에는 성격적으로도 굉장히 귀감이 되는 모습인 분도 계셨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 또한 어른이었음에도, 그분들에게는 ‘진짜 어른’의 느낌이 진하게 났다. 어렴풋이, 그렇게 팀장이라는 존재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회사에서 입사 1년 만에 팀장님이 그만두시고 나에게 도전하라 하셨을 때, 그분께서 제안하지 않아도 나는 당시의 최고 선임이 나였기에 당연히 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아 있는 팀원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내 자신도 나를 스스로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고민하지 않았고, 도전했고, 팀장이 된 후 지금도 매일을 좌충우돌하며 어찌어찌 팀을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나의 이 모습이 너무 불안정해 보이는 걸까? 아니면 옆에서 보기에 너무 메리트가 없어 보이는 걸까? 궁금함에 하루 이틀 잠을 설친 나는 나중에 넌지시 팀원들에게 ‘혹시 왜 팀장이 되고 싶지 않니?’라고 물었고, 돌아온 대답은 굉장히 단순했다.


‘책임만 많고 즐거움이 없어 보인다’


조금은 아픈 말이었다. 뭐라고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일이 즐거운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틀림없이 내가 팀장이 된 이후로 나의 직장 생활은 그다지 즐겁지 않아 진 건 사실이다.


운 좋게도 팀장을 잘 이해해 주는 유대관계가 깊은 팀원들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다행인 일이지만, 피평가자와 평가자의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깰 정도는 아니었고 언제나 모순된 회사의 입장과 정책을 법카 하나 제대로 쓸 수 없는 팔다리 잘린 상태에서 입으로만 ‘미래가 있다’라고 호소하며 그들의 미래를 달래야 하는 입장, 그들의 눈에도 썩 좋아 보이는 건 아니었나 보다.




아직 직장 생활을 족히 15년 이상은 해야 하는 걸 감안하면, 몇 년간은 더 지금의 팀원들과 팀장으로서 같이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지금의 내 자리가 미래의 팀장 후보에게 매력적인 자리가 아니라 하면, 지금의 팀원뿐만 아니라 누구도 내 뒤를 잇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팀원들을 위한 중간평가였지만, 어쩌면 이를 통해 나 또한 내가 앞으로 해야 할 또 다른 수치화될 수 없는 중요한 과제를 하나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 자리, 그렇게 나쁘기만 한 자리는 아니야 ‘라는 말에 좀 더 힘이 실릴 수 있도록, 앞으로 더 많이 자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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