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게 행하는 희생이었음을 깨닫기까지 너무나 오래 걸린 시간
예전에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이 해 주시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하거나, 감사해 본 적이 많지 않았다. 준비물을 사고 돈이 남으면 친구들과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고 항상 조금은 넉넉하게 넣어 주셨던 문방구값, 한 달 용돈이 으레 떨어져 갈 때면 언제나 슬쩍 통장에 입금되어 있는 교통비. 학생일 때는 결코 몰랐던 일이고 또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나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경제적 여력이 없는 학생이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학생의 본분인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고, 그 마저도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는 않고 단순히 어느 정도 보여주기식으로 적정 수준만 유지해 왔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 당시의 집안 사정은 나날이 더 심해져 갔기에 당장 집안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했던 나는 본디 학업을 좀 더 이어가며 박사학위의 미래를 그렸지만 그 꿈을 잠시 접고 취업하기로 결정했다. 강하게 부탁하지는 않으셨지만 은근히 그랬을 때 큰 도움이 될 거라는 분위기를 알고 있었고, 나 또한 이제는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도 깊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뒤늦게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별다르게 준비할 시간도 없었기에 이 회사 저 회사를 깊게 고르지도 않았고, 나는 그렇게 가장 빨리 입사할 수 있었던 평범한 중소기업에 입사하여 경영지원팀으로 직장 일을 시작했다. 벌써 십여 년도 더 흐른 일이고 그 회사에선 고작 1년밖에 일하지 않았음에도, 처음이란 기억은 그렇게 강렬한 것일까? 여전히 처음 동기들과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자며 회식에 얼근히 취했던 순간이라든가, 말로만 듣던 구조조정이라는 것을 한 분 한 분마다 전달했어야 하는 아픔이라든가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이따금씩 찾아와 감회를 새롭게 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반복되는 일의 힘듦, 그리고 중소기업인지라 월급이 많지는 않았으나 대부분의 월급을 생활비로 내보내 내 자신의 미래를 저축할 수 없다는 점 등이 몹시 서글펐는지, 비가 조금 내리던 가을날에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한 마디를 내뱉어 버리고 말았다.
나도 공부하고 싶은 것 참고 계속 일하는 건 좋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일하면서 버텨야 해요? 정확히 시간이라도, 남은 돈이라도 이야기해 줘요.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바라지도 않잖아. 나도 내 미래를 그릴 수만 있게 해 달라고.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걸 참아내기엔 너무 철이 없었고, 그때 어머니 또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지났어야만 했다. 어찌 되었든 그 후 며칠 뒤에 부모님은 나를 불러 이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아주 적은 금액만 남았으며 그 정도는 남은 사람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그때 하시던 일을 접고 잠시 다시 현장에 나가실 거라는 말을 해 주시며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준비해도 좋다는 말씀을 해 주시고 내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정말 고맙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며 나를 위로해 주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결과론적으로 나는 박사학위에 대한 꿈을 접고 직장인의 삶을 이어갔고, 그러다 결혼도 하고 지금에 이르러 두 딸의 아버지가 되어 나 또한 누군가의 부모님으로 매일을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나는 때때로, 내가 어렸을 때 왜 부모님이 뭔가를 자꾸 해주시려고 했는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치기 어린 눈으로 바랬던 그 무엇인가는 모두 부모님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이뤄주셨던 어려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알아챈 고마움을 갚을 길이 없어 항상 마주칠 때마다 용돈이라도 더 드리고, 좋은 음식이라도 더 한번 사 드리려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핑계일지도 모르겠으나, 나 또한 나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식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 그 자식의 기대감을 채워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멀어짐을 택하는 아이러니 속에 때로는 괴롭고, 때로는 자신에 대한 환멸감도 깊어지곤 한다. 이번 주는 부모님을 모시고 근사한 식당에 가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주말에 어딘가 놀러 가고 싶다는 딸아이를 거절하지 못해 또 그렇게 시간을 미루고, 그렇게 미루는 시간 속에 우연히 어떻게든 때가 닿아 마주치게 되면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것이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을 뵈며 그렇게 또 슬퍼지게 된다. 그러면서도 오랜 시간을 또 같이 있기는 그간 멀리 한 시간이 그토록이나 어색한 것인지, 다음에 또 올게요. 애들 힘드니까 슬슬 가야겠어요 하고 말하며,
그렇게 그리워하며, 멀어지는 시간에 익숙해지는 게 자식으로서는 과연 당연한 일인 걸까.
부모님 당신들 또한, 자식이란 나의 기대감을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피해 왔던 시간이 있으셨을까.
비록 그래도 자주 사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때때로 안부도 전하며 통화도 드리지만 직접 만나서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음을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전할 수 있을까. 하지만 여전히 십여 년 이상은 서로의 시간이 허락되어 있다고 믿는다. 몇 년 전에 아버지가 급성 뇌졸중으로 입원하셨을 때부터 체감되어 온 부모님과의 이별은 지금 당장에라도, 사람의 일이란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고 되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으로, 통상적으로라는 핑계 아래에 넉넉한 시간이 남아있을 거라고 그렇게 불안을 감추며 오늘을 또 보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