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부전증, 오랜 친구가 날 공격할 때

나를 살아가게, 무너지게 하는 애증의 동반자

by Karel Jo


기분부전증, Dysthymia, 또는 Persistent Depressive Disorder, 이른바 PDD란 주요 우울증보다 경미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우울한 마음을 갖고 있는 우울증의 한 형태라고 알려져 있다. 나 또한 스스로가 무너져 내렸던 2년 전에 우울증 상태를 진단받기 전까지는 나 스스로가 그저 기분의 높낮이가 그렇게 높지 않은, 특별히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은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다. 흔히, 타인이 나를 보며 평가하는 내 성격은 차분하고, 진중한 깊이가 있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가끔 염세적이거나 냉소적인 자신의 모습은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우울증의 한 형태라고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우울증이라는 건 보다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만 생각했기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그렇게 넘어가 버리기만 했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표현할 때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관용적인 자신이라고,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 어느 의미로든 자신의 주관과 호감을 배제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성향이나 능력이 비슷한 사람이라 놓고 볼 때 당연히 호감 가는 쪽을 더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을까.


호감이 가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나 스스로가 그다지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아닌지라 그게 어떤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경험상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구김살'이 없던 사람이었다. 반드시 집이 금수저 거나, 자기 자신의 능력이 워낙 출중하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집안 분위기 자체가 자기가 가진 것 내에서 만족을 느낄 줄 아는 환경에서 자라온 것. 다시 말해 감사할 줄 알고 자라온 사람들이 대부분 보편적으로 호감을 샀던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미루어보면, 나 또한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을 끊임없이 증명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에게 어떠한 칭찬이나 만족감을 느끼게 해 주지 못했던 옛날이었다. 대학교 때 학점을 잘 받았던 때에도, 장학금을 타던 때에도, 좀 더 잘할 수 있었고 더 노력했으면 이뤘을지도 모르는 다음 성취에 집착하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는 더욱 심해진 것이, 직장은 내가 성과를 낸 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었고, 당시의 내게 있어 그건 자신의 도전의식을 불태우는 데 아주 주효한 조건이었으니까.


성과가 그대로 인정으로 이어지던 그 시기에 나는 자신을 멈춰 세울 생각이 없는 끝없는 선로를 달리는 기관실만 남은 기차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진급 후엔 더 빠르게 다음 진급을 생각했고 프로젝트의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 더없이 분노하며 이직으로 그 화를 아낌없이 풀어내며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내게는 자기 평가를 굉장히 박하게 주는 버릇이 생겼다. 연초에 세운 개인 목표는 연말이 되면 하나도 달성을 못한 것이거나, 달성을 해도 간신히 해낸 정도지 원래 하려던 기대치의 반도 못한 것이다. 더 낫게 할 수 있었다 하며 자학적 평가를 했고, 내 팀장님들은 그런 나에게 그 정도는 아니라며 본인께서 생각하시는 평가와 위로를 받는 식으로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채워 왔었다. 지금은 나 또한 누군가를 평가해야 하는 팀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 위로는 담당 임원이 계시니 평가함과 평가받음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


그러다 보니 스스로는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를 부정해 왔던 모양이다. 나 자신도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을 리 만무하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타인의 호의 안에 깔려 있는 이면에 집착하게 되었다. 분명, 지금 나에게 잘해주는 것엔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무언가 부탁할 게 있거나 아니면 미래에 나를 이용하기 위한 포석을 깔아 두는 거라고.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냉소적인 내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기로 결심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이 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무기력함을 넘어 무감각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아내의 입을 통해 들었을 때였다. 22년 겨울 말 우리는 제주도로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점심을 먹으러 운전하던 나에게 조심스레,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지금 여행하는 거, 별로 즐겁지 않아?
눈도, 입도 웃고 있지 않아. 싫은 게 아니라 당신이 걱정돼.


그 말을 듣고 나니, 그 당시 몇 주간 주변에 사람이 있든 없든 때로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던 자신이, 조금의 자극이 모든 게 나를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여졌던 자신이 보였다. 그때 유난히 스스로가 고립되어 있었다고 생각했고, 모두가 뒤에서 내 험담을 얘기하며 앞에선 최고라고 얘기해도 뒤에선 어처구니없는 광대라며 비웃는 소리만 상상했다. 그리고 아내의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믿는 가족 앞에서조차 그런 모습이라면 분명 이건 정상이 아니고, 내가 망가진 거구나. 하고 진료를 결심했었다.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서 지금은 그 의심이 조금은 수위를 거두었지만, 완전히 치료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라는 사람의 성향 자체가 극도로 조심스럽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전히 아직은 조금씩, 나는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의 선의를 곧이곧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때로 그로 인한 고독감,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들마저 언젠가는 나를 저버릴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어두움 또한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고 하면 지금의 이 시간 또한 그저 묻어두기로 했다는 것. 지금의 이 생각은 정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정상인 상태로 결정하고 사고하지 않으니 이게 정상이 아니라면 그런 시기도 내 삶의 일부로 남겨두자.라는 마음으로 하루의 일기를 접어내고 있다. 언젠가 추억하는 때에 이 또한 그때에는 그랬었다, 하고 지나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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